소설리스트

〈 260화 〉(H이벤트)MOON WORK(1) (260/429)



〈 260화 〉(H이벤트)MOON WORK(1)

****

어두컴컴한 방.

끼이이이익-

메이드장인 루시타는 완전히 박살나서 뼈대밖에 남지 않은  유리문을조심스럽게 밀쳐 열었다.

잘그락- 잘그락-

절뚝거리는 발걸음 소리에 맞춰서 으스러지는 파편들.

썩어도 준치라고 C급 무장이 부리는 히스테리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다.

“…조금은 진정하셨습니까?”

“지이인정? 하하하하하! 아무리 독한 술을 마셔도 가라앉지를 않뉸뎨 지금 진정이 되겠어?”

한 모금밖에 남지 않은 술병을 흔들어 대면서 그렇게 말하는 돌로레스.

방 전체가 엉망진창이지만 그녀의 몰골도 만만치는 않았다.

봉두난발에 흐트러진 옷차림.

눈동자는 토끼처럼 빨갰고 입에서는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인상이 구겨질 만한 모습이었지만 루시타는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면 추스르실 때까지 물러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가지마!!”

우뚝!

돌아가려는 메이드장을 멈춰 세운 돌로레스는 비틀거리며다가가서 그녀의 가슴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도록 얼굴을 붙잡아서 돌렸다.

“…안대도 제법 어울리는데?”

“당신이 만들어주신 사랑의 훈장이 아닙니까?”

루시타는 영결식 방송을 보고 미쳐서 날뛰는 그녀를 진정시키다가 다리를 다치고 오른쪽 눈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미쳐서 날뛰는 돌로레스 때문에 다친 사람만 수십여 명.

만약에 그녀가 나서지 않았더라면이 숫자는 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역시 자기는 멋져♡지금까지 조련한 애첩 중에서도 가장 완벽하다니까?”

“…”

 소리를 들은 루시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렸기 떄문에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습니다.”

“후후후후. 눈에 뻔히 보이는 아첨은 이제 그만. 치료사는 뭐라고 그래? 전부 고칠 수 있대?”

“회복 마법을 사용하면 다리는 물론이고 뭉개진 안구도 재생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치료를 받지 않은 거야?”

“제 몸은 저의 소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다치게 하는 것도 고치는 것도 모두 당신이 결정하실 일이니까 지시를 따르기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네. 이런 사랑밖에 모르는얼간이 같으니라고. 후후후후후.”

상상을 뛰어넘는 고지식함에 놀라는 돌로레스였지만 싫지는 않았는지 웃음을 터트리면서 적잖이 누그러지는 모습이었다.

“웃어주시는 모습을 보니까 보람이 있군요. 크흠, 이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언제까지 추태를 부릴수는 없지.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 빌어먹을 후계자 녀석을 쓰러트려야 하니까.”

으드득-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이를  그녀가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복안은 있으십니까?”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제기랄, 월주 녀석! 도대체 어쩌다가 일을 이렇게까지 망쳐버린 거야? 육미호 님은 계속 부재중이라고 연락도 되지 않고 말이야. 제국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이렇게 나를 찬밥 취급하다니…”

현재 테르할 제국과 은요호 기관은 T-7의 폭로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제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로레스의 악재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래리님께서는 연락이 없었습니까?!”

“그 인간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쨍그랑!

홧김에 집어 던진 술병이 벽에 부딪혀서깨졌다.

그러고도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는지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모든 연락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어. 스톰 가드에 곰처럼 틀어박혀서 말이야!”

“직접 찾아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벌써해보려고 했지! 그런데 그 인간…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에는 아주 단단히 작정했나 봐. 병사들에게  명령을 따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어. 자신의 근처로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야!!”

“그건…정말로 심각하군요.”

“그렇지?!”

호가호위라는 말처럼 돌로레스의 힘과권력은 래리의후광을 등에 업고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물론,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의 어머니인 데다가 미래의 백작부인이라는 타이틀을 여전히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첨꾼들은 여전히 그녀를 따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래리의 추상같은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를 정도로 충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성향은 오르드리의 중앙 광장에서 일어난 시위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연하지만 영결식장의 폭로가 방송된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돌로레스의 명령으로 방송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녀에게 가장 커다란 반감을품고 있었던 오르드리의 시민들은 곧바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후계자를 복권하고 돌로레스를 처벌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내려진 명령은  가지.

돌로레스는 감히 자신을 규탄하는 어리석은 민중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보다 한참 늦게 래리로부터 시위대를 내버려 두라는 통신이 진압군 사령관에게 도착했다.

그 결과.

잠시동안 수백 명이 죽는 대형참사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병사들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지 않고 철수해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조치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왜냐면 시민들이 두 번 다시는 시위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겁을 먹은 것도 아니었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제풀에 지쳐서 돌아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불에 기름을 부어버린 것처럼 어설프게 자극한 상황.

분노한 시민들은 다음날 더 많이 몰려나와서 상점을 약탈하고 관공서를 습격했으며 그린벨트의 경비병들을 집단으로 둘러싸서 구타했다.

단순한 시위에서 그칠 수 있었던 일이 폭동으로 발전해버린 것이었다.

이런 보고를 들은 래리는 재차 명령을 내려서 시민들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최대한 온건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통제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데다가 이미 공격을 당하고 있는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양쪽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기만 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휘관 하나가 돌로레스가 머무르고 있는 아시에스타 궁전 앞 광장을 개방해버리는 바람에, 시위대가 담벼락 바깥까지들이닥쳐서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 대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냐! 감히나에게 저따위 망발을 지껄이다니…지금 장당  무엄한 폭도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처형해라!!]

[죄송하지만 따를 수 없습니다. 래리님의 명령입니다.]

[뭐야?!!]

분노한 돌로레스가 길길이 날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병사들은 오히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깨소금이라는 반응이었다.

나중에 가서야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래리의 오른팔, 레스터 장군이 시위대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그녀의 무력 진압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해버리면서 오히려 사태에 끼어들지 말라고 선을 그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누렸던 돌로레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자신의 손발이 모조리 묶여버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천년 가문의 백작 부인인 내가! 하찮은 무지렁이들에게 이토록 심한 모욕을 당했는데도 가만히 참고 있으라니! 그게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라는 작자가 내린 명령 때문이라고?!”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뿐이 아니야. 이제는 온 세상이 다 나를 무시하고 있어! 저 빌어먹을 아스트라세 가문은 말할 것도 없고. 커딩가, 루디아브, 투크 가문에다가 심지어는 하찮은 방송국 놈들까지 내 명령에 따르지 않아. 어떻게 감히 나를…나를!!!”

분노한 그녀가 루시타의 상의를 있는 힘껏 움켜잡으면서 부르르 떨자 머리를 토닥거리면서 진정시켜줬다.

고립무원, 사면초가.

현재 돌로레스의 심리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방이  적이야. 이제는 잠을 자는 것조차 무서워서 침대에 누울 수도 없어. 누군가 몰래 잠입해 들어와서  목을 그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루시타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실은 저에게 현재의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이 하나 있습니다.”

우뚝-

“정말?”

예상하지 못한 솔깃한 이야기에 돌로레스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대번에 반색했다.

“무, 무슨 방법인데???”

하지만 다음 순간에 흘러나온 말은 그녀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제니아의 봉쇄를 해제해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