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H이벤트)오프 더 레코드(3)
당연하지만 이번 인터뷰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리한은 제니아를 넘어서 왕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의 인물.
앞서 벌어진 두 개의 사건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대중들의 관심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언론이라면 이렇게물이 들어올 때는 빠르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자신들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먼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자진해서 요청해 오자, 얼마나 신이 났는지 뉴스 속보로 공개 일정까지 떠들어놓은 상태였다.
그게 취소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자신들의 책임으로???
소냐에게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후계자니이이이이임!!”
쿵!
자존심과 체면을 모두 버리고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그녀.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천한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오냐오냐해주시니까 정신들이 단체로 가출했었나 봐요!! 제발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미천한 저희에게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오오오!!”
“…소냐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러시는 모습도 별로 보기 좋지는 않군요. 좋게 말씀드릴 테 얌전히 떠나주십시오.”
“아이고, 후계자님! 저희가,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리한은 한숨을 쉬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여러분에게는 이미 많은 혜택을 드렸습니다. 장담하지만 왕국의 어떤 귀족과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이렇게 격식과 절차를 따지지 않는 자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기본도 지키지 못할 줄이야. 아무래도 배려가 지나쳤던 모양이군요.”
“읏….”
“어, 어떻게 해요? 선배?!!”
파냐가 안절부절못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에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너무 방심했어. 프로답지 못하게 이런 실수를 하다니…’
후회가 막급했지만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냐만큼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며 마지막까지 매달렸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감사하고 은혜로운 말씀 가슴 깊숙이 새기며 반성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딱 한 번만…네? 딱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오오~”
“아니…”
철면피를 깔고 뻔뻔하게 애교를 부리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리한이었지만, 그것을 보다 못한 샐리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시는데 굉장히 옹졸하시네요. 겨우 말실수 하나 때문에 이러는 것은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쩨쩨하지 않아요?”
“자기?!!”
“미, 미쳤어요? 선배님?!!”
간이 부어서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당돌함에 기겁하는 일행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세게 나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말리지 마세요! 어차피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 툭 까놓고 말하자고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 같은 위선자는…”
“저에게 뭐라고 하시기 전에 본인의 행동부터 돌아보셨으면 좋겠군요, 겜빗 양.”
문제는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도 전에 반격을 당해버렸다는 것이었다.
“히끅?!”
아직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태.
그의 입에서 자신의 성姓이 나오자 당황해서 딸꾹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설마 그런 조잡한 변장으로 제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보아하니 영결식장의 일로 앙심을 품고 계시는 모양인데, 죄송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이러면 이러실수록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더 뚜렷한 자기 주관과 확신이 생기는군요.”
“큭…”
정체가 드러난 상태에서 모습을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샐리는 순순히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눈치를…”
고오오오오오오!
“죄송하지만 이제부터 질문하는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제가 될 것 같군요. 그것도 온건한 방식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갑자기 변해버린 리한의 분위기.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를 뿜어내자 당황한 소냐 일행이 뒷걸음질을 쳤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여, 영문을 모르겠네요. 갑자기 왜…”
그는 뒷짐을 지고서 차양으로 가려진 창가로 가까이 다가갔다.
“여러분 중에 눈썰미가 좋은 분이 있다면 제 신변의 호위가 지나치게 허술한 것을 알아차린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겜빗 양.”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죠?”
뜨끔한 지적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켕기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팔짱을 끼면서 맞받아쳤다.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말이 너무 어려웠습니까? 제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들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암살자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악!
차양을 올리기 무섭게 소냐 일행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창문 바깥에서 펼쳐지는 끔찍한광경.
그곳에는 암살자로 추측되는 시체들이 유리 한장 너머의 가까운 거리에서 거꾸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놀라지 말고 자세히 보십시오. 낯익은 얼굴이 아닙니까? 모두 영결식장에 참석했던 래리 파벌의 사람들입니다. 부하의 보고에 따르면 당신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고하는데 말입니다.”
“뒤, 뒤를 따라왔다니…”
“저희는 모르는 일이에요!!”
사색으로 변한소냐 일행이 격렬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부인했다.
“모르시다니 그것참 공교롭군요. 정말이라면 대단한 우연이 아닙니까? 암살자들이 여러분과 제가 인터뷰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몰래 미행했을까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그건…”
당황스러운 것은 그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눈치가 빠른 샐리는 번뜩이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앞서 말했다시피 리한이 인터뷰 제안을 하자 방송국에서는 그에 관련한 뉴스를 속보로 내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며칠,몇 시, 몇 분에 어디에서 한다고 떠들어대지는 않았지만, 그가 크레센트 문에 있을 거라는 사실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
만약에 그 방송을 사나그에 숨어서 리한을 제거할 기회만 엿보고 있는 래리 파벌의 암살자들이목격했다면 자신들을 감시하고 미행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건 오해…”
“하지만 이것 자체는 대수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면 처음부터 여러분을 미끼로 사용해서 사나그에 남아있는 쥐새끼들을 끌어내 일망타진하려고 했으니까요. 보다시피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설마 경비가 허술해 보였던 이유는 전부 함정이었다는 건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셀리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다니 연기가 대단하시군요. 제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면 깜빡 속았을 겁니다, 겜빗 양.”
“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을 이렇게 몰아세우다니…”
“그건 이제부터 두고 보면 알게 되겠죠.”
“네???”
“란란, 린린! 지금 당장 세 사람의 신체를 샅샅이 수색하도록 해라. 조금이라도 수상한 물건이 발견된다면 지체없이 나에게 가져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신체수색? 겨우 그까짓 것이 비장의 수단이라는 건가요? 좋아요! 어디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꺄아아악?!”
리한의 명령을 듣고 코웃음을 치던 그녀는 뭔가를 알아차리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단.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물건 하나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역시 당신이었군요. 란란, 린린! 지금 즉시 포박하도록 해라!!”
“아이아이써!!”
“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장도 없이 남의 신체를 멋대로 수색하다니…꺄악! 거, 거기는…아흑♡ 잠깐만요! 알겠습니다. 제가 문제가 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는데 오해가…”
“찾아냈습니다, 주인님!!”
은밀한 장소에서 동전 크기만 한 매직 아이템을 발견한 란란이 쪼르르 날아와서 그것을 리한에게 넘겨주었다.
“녹음장치. 그것도 통신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고가의 물건이로군요. 이것을 사용해서 별궁의 경비 사정을 암살자들에게 알렸던 겁니까?”
“그러니까 오해라니까요! 저는 그냥 녹음만 몰래 하려고 했을 뿐이지. 통신 기능이 있는 이유는 가문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물건이라서…”
“녹음이라고요? 도대체 무엇을 몰래 녹음하려고 했다는 겁니까?”
“그, 그건…”
궁지에 몰린 샐리는 소냐를 바라보며 도움을 바라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당황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상사도 마찬가지.
“자, 자기. 후계자님에게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면서 험담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것을 꾸미고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암살이라니…”
“말도 안 돼!! 미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 끔찍한 일을 생각할 수가 있어요?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