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화 〉(H이벤트)오프 더 레코드(2)
[집에 복을 불러오는 동양의 요정들이야. 그쪽 지방에서도 흔한 존재는 아니고 계약까지 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고 하던데 역시 아스트라세 가문이라고 해야…]
하지만 설명이 끝나기 전에 리한이 등장하는 바람에 아웃 오브 안중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꺄아아아아악! 후계자님!!”
마치 아이돌을 목격한 사생팬처럼 비명을 지르는 파냐.
덕분에 샐리는 물론이고 소냐까지 아연실색해버리고 말았다.
“미쳤니, 막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얘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이라서 터무니없는 실수를…”
책임자인 그녀가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연거푸 사과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는지 유쾌하게 웃으면서 넘어갔다.
“하하하하하!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니아의 여성들하고는 다르게 활기찬 모습이보기 좋군요. 방송국 직원 대부분이 공화국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녀도 그쪽 태생인 모양이군요.”
“네? 아, 네! 맞아요. 오호호호호! 역시 교양있는 분답게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주시다니 정말로신사다우시네요. 저희 막내가 이렇게 홀딱 빠져버린 것도 이해가 간다고 할까. 어머, 호호호호호호!!”
“아이, 참! 피디님도 무슨 소리를…헤헤헤.”
‘쟤는 대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실실 쪼개는 거야?’
팔푼이가 따로 없는 후배의 모습에 샐리는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현재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는 상태.
리포터 역할을 맡았다면 당당하게 정체를 드러내고 인터뷰로 리한을 몰아세울 수 있었을 테지만, 카메라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예 눈에 띄지 않도록 뒤에서 조용히 증거를 수집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것.
질문지 작성에는 미리 손을 써뒀기 때문에 인터뷰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그가 로가를포섭하려고 한다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을 테지만,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후배가 눈곱만큼도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너무너무~멋있으세요♡♡♡”
토끼귀를 쫑긋거리면서 몸을 베베 꼬아대는 파냐.
황홀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발정기가 틀림없다고 샐리는 악의적인 왜곡을 덧붙였다.
“후후후후. 너무 지나치게 띄워주시는 바람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응접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후계자님께서 직접 안내를 해주시다니?”
“어머머머, 세상에! 자상하시기도 하셔라. 오호호호호호!! 역시 배포가 남다르시네요.”
‘아주 쌍으로 지X을 한다. 진짜.’
창피함을 모르는 두 사람의 아부에 부끄러움은 카메라맨의 몫.
촌극 같은 상황에 입맛이 씁쓸해지는 샐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무거운 짐들을 고쳐 맸다.
콕콕!
“꺄악?!”
옆구리를 찔리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린린이 손을 벌리고 있었다.
“들어줄게, 손님.”
“네? 하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요…?!”
지이이이이잉-
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요정의 마법을 사용해서 풍선처럼 가볍게 띄워 올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뭐라고 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애가 무리하면 안 돼.”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애한테 아이 취급을 당하다니?! 아니. 실제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을 테니까 괜찮은 걸까???’
살짝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종종걸음으로 일행을 따랐다.
잠시 후.
타닥타닥.
장작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 가는 벽난로가 아늑하게 느껴지는 응접실.
좌부동 자매가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리한은 호위 하나도 없이 그녀들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마주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지 못했어. 아무리 아스트라세 가문의 앞마당이라고 해도 그렇지. 낮에 그런 짓을 벌여놓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어도 괜찮은 거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아니면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는 그림자 호위라도 데리고 있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샐리였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촬영 세팅에 열을 올리는 사이.
홍차 한 잔을 소리 없이 우아하게 비운 리한이입을 열었다.
“스텝 한 분이 굉장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군요.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지 않고 있다니…”
“푸흐흐흐흡!! 콜록, 콜록, 콜록!! 아, 쟤, 쟤는 너무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워낙에 그 뭐냐, 모, 못생겼거든요! 후계자님에게 보여드리기 워낙에 누추한 몰골이라서…아, 물론.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저는 괜찮다고 했는데…호호호호, 오호호호호호!!”
“네??? 선배의 외모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편 아닌가요? 설마 그렇게 자존감이낮으신 줄은 몰랐네요. 힘내요, 선배님! 세상에는 얼굴이 다가 아니에요!!”
빠직-
‘이것들이 도대체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소냐는 나름대로 둘러대 주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외모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샐리는 기분이 팍 상해버리고 말았다.
특히나 아예 대놓고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며 동정하는 파냐는 밉상 그 자체.
“아…그렇군요. 외모때문에…크흠. 세상은 얼굴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미처 배려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힘내십시오, 짚신도 제짝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이제는 리한까지 자신을 위로해오자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가 나버리고 말았다.
‘아오, 진짜! 증거수집이고 나발이고 그냥 여기에서 시원하게 정체를 까버려??? 이래 보여도 내가 얼굴 하나로 9시 뉴스의 메인 앵커 자리까지 제안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내가 작정하고 꼬시면 10분 내로 홀라당 넘어올 주제에…’
어차피 속마음은 들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있는 대로 투덜거리는 샐리.
하지만 카메라 앵글을 조정하며 리한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외모를 몰입해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기지배처럼 곱게 생겼어? 19살인데 16살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미소년이라니…변태스러운 중년 귀족들이 자신의 애인으로 삼을 만한 타입이네. 흥, 웃는 모습은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호감을 느끼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붕붕 흔들어내는 그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카메라 앵글을 조절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자신도 모르게 몰입해버리고 말았다.
‘피부하고 머릿결이 나보다 좋은 것 같아. 저 기다란 속눈썹이며 여자를 홀리는 도화살 눈매.끄응! 어딘가에 틀림없이 못난 구석이 있을 거야. 얼굴에 있는 불꽃 흉터는 제외하더라도…어디냐, 어디냐?!!’
“…기! 자기!!!!”
“꺄악?! 서, 선배님?!”
“아니. 사람이 도대체 뭐에 홀려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거야? 촬영 준비 끝났냐고 몇 번을 물어봤는데 도대체 뭐에 정신이 팔려서…”
“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보지 마세요!!”
인상을 찌푸린 소냐가 카메라를 확인하려고 하자 재빠르게 화면을 양손으로 가렸지만, 이미 리한에게 클로즈업되어 있는 모습을 들켜버린 후였다.
“어이구~ 뭐에 빠져서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나 했더니. 설마 자기까지 후계자님에게 빠져버렸던 거야?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고 했더니…”
“뭐에요, 선배!! 설마 저하고 라이벌이었던 거예요?!!!”
“아니야!! 누가 저런 무례한 남자를…”
씰룩-
“무례?”
리한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다시 한번 대형사고를 쳐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성진의 표정이 사색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후계자님! 얘가 마음에 병이 있어서 헛소리를…남들하고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을 뿐이니까 제발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자, 어서 빨리 잘못했다고 빌어!!”
털썩!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소냐의 재촉에 샐리도 허겁지겁 무릎을 꿇으면서 사과했지만 그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흠…한 번은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니 아무래도 제가 제니아 방송국을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군요. 제 딴에는 굉장히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네? 그, 그 말씀은 설마…”
“죄송하지만 인터뷰는 여기에서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서 와주셨으면 좋겠군요.”
설마 했던 사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소냐는 안색이 파래지다 못 해서 노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