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폭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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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폭로.
쾅!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아스트라세 가문이 미쳐도 제대로 미쳤군.감히 저런 조작 영상으로 천년 가문을 음해하려고 하다니!!”
영상은 이미 정지된 상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흥분한 무장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핏대를 세웠다.
그들 모두가 래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혈기 왕성한 귀족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모시는 주인은 창백한 안색으로 주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샐리는 이 상황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종이에요, 선배님! 어서 빨리 카메라를 돌리세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 언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요!!”
“아니. 하지만…”
“이런 겁쟁이! 2번 카메라! 지금 당장 객석에 있는 래리님을 비추세요. 사소한 표정 변화, 손가락 떨림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6번 카메라! 아스트라세 일가와 함께 있는 가면의 남자를 주목하도록 하세요. 그 사람이야말로 이번 사태를일으킨 배후가 틀림없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하실 거예요, 말 거에요?”
[알았어! 일단은 상부에서 중단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1초라도 길게 송출해 볼게.]
“그렇게 나오셔야 우리 카메라 감독님이지!!”
스텝들이 흔쾌히 동참해주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주변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녀석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찍지마, 씨발! 찍지마! 성질 뻗쳐서 정말, 카메라 찍지마!!”
“천한 녀석들이 주제도 모르고 귀족의 일에 참견하려고 하다니 모조리 치도곤을 당해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읏…”
“죄, 죄송합니다.”
아무리 무기를 들지 않았다고 해도 무장의 협박을 일반인들이 감당할 수는 없다.
서슬이 퍼런 살기를 버티지 못하고 꼬리를 내리는 스텝들.
샐리는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물러나야 하는 거야?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는데…’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일 뿐.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지만 가면을 쓰고 있던 수수께끼의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언론이 아니었다.
쾅!
“촬영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영결식장의 모든 출입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
서광이 비치는 것처럼 눈부신 빛이 어두컴컴한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은빛 물결을 이루는 팔콘 전사들이 실내로 우르르 진입했다.
“반역이다!”
“아스트라세 가문이 반역을 일으켰다!!”
“이런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완전히 포위당하는 형세가 되어버리자 흥분한 래리파의 무장들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면서 그들과 대치했다.
비록 무기는 없지만, 수적인 우위와 전투력은 그들이 앞서는 상황.
“팔콘 전사들이여!!!”
“충忠!!”
채채채채챙!!
“큭…”
하지만일사불란하게 검을 빼 들며 진형을 갖추는 집단의 위세에는 위축당해서 슬금슬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말고 촬영을 재개하도록 해라. 걱정하지 않아도 방송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멈추지 못해. 누구라도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당황한 스텝들이 더듬거리면서 자신의 역할로 돌아갔다.
하지만 샐리는 그가“누구도”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설마 아스트라세 가문에서 방송국 스튜디오까지 장악한 거야?’
원래대로라면 돌로레스가 압력을 넣는 순간에송출이 중단될 것이 틀림이 없었기때문에 그때까지 한 장면이라도 더 내보내자는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샐리는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수수께끼의 가면 남자를 노려보았다.
‘역시 계획범죄야.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우리를 이용할 속셈이라면, 우리 쪽에서도 철저하게 이용해주지.’
“어, 어, 어, 어쩌면 좋아. 자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있잖아!”
“제발 한심한 소리 집어치우고 고독한 늑대의 야성을 일깨우세요, 선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어떻게 정신을 차려? 이제야 겨우 30년 할부로 오르드리에 집 하나 마련했는데~~”
“역시 돈 때문이었잖아. 이 인간!”
한심한 소녀의 모습에 그녀가 분노의 샤우팅을 날리는 사이에 장내의 긴장감은 점점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었다.
“충의로 이름이 높은 아스트라세 가문에서이게 무슨 황망한 작태란 말이오? 정녕 이성을 잃어버렸소? 감히 천년 가문을 중상모략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제니아의 모든 가문을 이렇게 겁박하다니! 그것도 그대들을 위해서 찾아온 조문객들을 말이오!!”
“옳소, 옳소!!”
“지금 당장 무기를 내리고 물러서시오!!”
래리를 대신해서 측근인 버질이 소리를 높이자 여기저기에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가세해 왔다.
하지만 팔콘 전사들을 지휘하는 투구의 남자는지지 않고 대꾸해 왔다.
“흥! 이성을 잃어버린 자들이 누구인지는 이쪽에서 물어보고 싶군!”
“뭐라고?”
“언제부터 래리 총사령관이 천년 가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말인가? 이 세상에 그렇게 불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정당한 후계자인 리한 폰 아슈킬님밖에 없을 것이다!!”
“무슨?!”
“터무니없는 궤변을…”
“뚫린 입으로 감히 내 말이 틀렸다고 부정할 수 있느냐? 네놈들이 정말로 당당하다면 어찌하여 유언장이 뒷부분이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난동을 피운다는 말이냐?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두렵느냐? 두렵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이처럼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한다는 말이냐!!”
“닥쳐라!!”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더러운 반역자 주제에!!”
“갈喝!!!!!”
콰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악!”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를 사자후로 제압해버린 남자는 쓰고 있던 투구를 단숨에 던져버렸다.
“누가 감히 나를 반역자라고 부른다는 말이냐? 10년 전부터 이 루돌프의 주군은 하늘을 우러러서 오직 리한 도련님 한 분밖에 없었노라!!!”
웅성웅성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태연스럽게 정체를 밝히자 장내는 걷잡을 수 없이 소란스러워졌다.
[저, 정말로 루돌프 자작이잖아?]
[말도 안 돼! 나는 시체를 봤어. 틀림없이 죽은 모습을 확인했는데…]
눈치가 빨라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앞선 조문 과정에서 그의 시체까지 목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놀라움과 경악이 교차하는 사이.
“…가, 가주라는 작자가 이런 소동을 일으키다니…”
“송사리는 닥쳐라! 내가 질문하고 싶은상대는 네가 아니다. 래리 총사령관!! 그대에게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측근 뒤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와서 똑바로 해명하시오!! 그대가 눈뜬장님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알고 있었을 테지? 돌로레스가 암살자들은 고용해서 도련님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것도 3년 전과 이번…무려 두 차례나 말이오!!”
“!!!!”
웅성웅성!
이번에 던진 말의 파장은 앞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3년 전이라면 설마?테세트 평야에서 일어난 그 비극이…]
[하지만 그건 종말의 마수들에게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어?]
[…안전한 후방에서 갑작스럽게 말이지. 처음부터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사건이기는 했어.]
[말도 안 돼. 그때 죽은 병사만 수천이 넘잖아? 그리폰 사건하고는 비교할 바가 아니야. 살해당한 가신의 숫자만 수십이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아니, 돌로레스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천년 가문의 안주인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자니까 말이야.]
아주 작은 빵부스러기가 떨어졌을 뿐이지만 귀족들이 정답에 도달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면 한 여자의 권력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얼마나 삐뚤어졌는지를 세 살배기도 알고있었기 떄문이다.
그녀가 죽은 후계자를 두려워해서 현상금을 걸고 제니아를 봉쇄해버렸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외부와 출입이 제한되면서 교역량도 줄어버렸기 때문에 엄청난 경제 손실을 제니아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분담해야만 했다.
“주, 주군…”
루돌프의 질문에 래리에게 충성을 맹세한 무장들까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본인 스스로 해명에 나서야 하는 상황.
그는 마지못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