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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화 〉결자해지(8) (241/429)



〈 241화 〉결자해지(8)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호칭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이때 당시에 혁명 정부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기 일보 직전.

자신들이 선동한 민중들에게 자신들을 끌어내려 질까  노심초사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주의 사상에 심취한 운동가들이 내각 곳곳에 포진하면서 그들과 여론의 눈치를 동시에 살펴야만 했다.

승리를 위해서 귀족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다행스럽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딱 하나의 후보를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헨리 폰 크라이머.

오늘날 앵커리지 공화국에서 슈퍼 히어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의 등장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S급의 무장, 김나지움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10년 동안 야전 지휘관으로 활동하면서 걸출한 전과를 올린 실적까지.

게다가 전직 수도방위군의 부사령관이었던 그는 시위대와 군대가 대치했을 때, 상부에서 내려온 무력 진압 명령에 항명하고 오히려 그들을 왕궁 앞 광장까지 안전하게 호위했다는 전력까지 있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충분히 합격 목걸이를 쥐여줄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후일담은 파비오 상인 연합을 더욱 설레게 했다.

왜냐면 앞선 조치로 왕실의 분노를 사서 사형집행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혁명 정부가 들어주면서 범죄자들과 함께 덩달아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귀족이라는 이유로 가택 연금 조치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를 알아본 일반 시민들이 옹호해주면서 분노한 민중들에게 저택이 불태워지거나 재산을 빼앗기는 등의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진정한 군인.

게다가 자신들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이 오히려 호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깔끔한 스토리텔링까지.

혁명 정부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채용이 결정되었다.

헨리 또한 풍전등화에 있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제안을 수락.

남은 문제는 귀족이라면 질색을 하는 시민운동가들과 일반 민중을 설득하는 것뿐이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었던 파비오 상인 연합은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작업에 착수했다.

세계 최초의 미디어 공세라고 일컬어지는 대대적인 언론플레이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이 정치 선전에 동원한 비공정의 숫자만 무려 2000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공화국의 하늘에 뿌려진 전단지만 50억 장이 넘어간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여론전에 힘을 쏟아부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내용의 무려 60%가 헨리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도배가 되었다.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 위대한 구세주의 등장!

-독재자들의 압제에 맞서는 고고한 투쟁가!

-스스로 귀족의 지위를 내려놓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민중 혁명에 투신한 시대의 양심.

-위대한 헨리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등등.

듣기만 해도 낯뜨거워지는 선전 문구를 보다 못한 그가“나는 광대가 아니라 군인이다.”라면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말을 들은 기자들은

-헨리 장군,“나를 혁명 정부의 광대 취급하는 적들에게 진짜 군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겠다!”라면서 자신만만한 포부를 밝혀…

라는 날조 내용으로다음날의 메인 기사를 장식하며 오히려 여론몰이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민중의 반응은 폭발적(좋은 의미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수도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외국의 연합군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귀족이고 나발이고 제발 누군가가  위기 상황을 해결해달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부 급진적인 운동가들은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왕정 타도를 외친  아느냐?”

 강한 반감을 드러냈지만 대부분은 어쩔  없는 현실이니까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대세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헨리는 역사상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온 국민의 성원(=중압감)을 받으며 전쟁터로 향했지만 결과는 설마 했던 기적의 대역전 승리.

불과 일주일 만에 수도의 코앞까지 들이닥친적의 연합군을 대파해서 단숨에 수백km 밖까지 후퇴시켜버리는 놀라운 전과를 냈다.

당연하지만 이 보고를 들은 혁명 정부와 민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파비오 상인 연합은 창고를 개방해서 음식을 풀었고 시민들은 바깥으로 나와서 축제를 열었는데 폭죽을 터트리고 밤새도록 음주가무를 즐기며 사흘 밤낮을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다.

그리고 이날을 헨리 장군의 기념일로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사실, 이 승리는 기적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냐면 이미 승리할  있는 조건이모두 갖춰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가 총사령관에 임명되기 전에 군을 지휘한 사람의 이름은 포비.

파비오 상인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장사꾼으로 평생을 전당포 운영과 고리대금업에종사했으며, 태어나서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남의 멱살  번 잡아본 적이 없는 선량한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이 지휘하는데 군대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혁명 정부는 이런 조처를 해놓고도 자신만만했다.

왜냐면 총사령관 따위는 누가 되어도 상관없이 수도에 있는 자신들이 직접 모든 현황을 기록하는 보드판을 만들어놓고,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적절한 물자와 군대를 적재적소에 투입하기만 하면 알아서 승리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총사령관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얕잡아 본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결과는 연전연패.

포비는 군사들에게 돌격을 외칠 때는 가장 안전한 후방에 숨고 도망칠 때는 누구보다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선두에 서는 지휘관의 한심한 미덕(?)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 한심함에는 적들조차도 당황할 지경이었는데.

하루는 적군 몇몇이 우스갯소리로 밤중에 늑대 울음소리만 내어도 전군 후퇴를 명령하는 게 아니냐고 떠들어대다가, 호기심에 “아우우우우~!!”하고 울었더니 정말로 진지를 버리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버리더라는 일화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왜냐면 퇴각하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연합군이 따라잡지 못할정도로.

가뜩이나 다국적군으로 지휘체계가 통일되지 못한 상태였던 데다가 후퇴하는 공화국 군대를 따라잡으려고 강행군을 거듭하는 바람에, 보급선은 길어지고 군대는 사방에 흐트러져서 점령지 관리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다.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한, 두 번뿐.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후퇴를 명령해버리는 포비의 신묘한 전략(?) 때문에 마치 허공에다가 신나게 주먹질을 해댄 것처럼 제풀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 피로감이 론데니움을 목전에 두고 절정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기가 떨어지고 지친 것은 공화국 군대도 마찬가지였지만 보급선이 짧은 데다가 비공정으로 병력 교체도 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적의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던 상태.

지금 공격하면 무조건 승리하는 생각에 현장의 지휘관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포비에게 명령을 내리라고 협박했지만, 그는 용감하게(?)저항하면서

“평민 군대가 귀족 군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라고 외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분노한 현장 지휘관이 혁명 정부에 투서를 보낸 것이 바로 이 시점.

그리고 현장에 도착한 헨리는 지휘관들에게 상황 보고를 받기가 무섭게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전군 돌격 명령을 내려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마치 꽉 막힌 동맥 경화가 해소되는 것 같은 오르가즘.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환상의 태그 플레이가 이루어낸 눈부신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리가 없었던 혁명 정부와 민중들에게 헨리는 그저 빛.

위기에 빠진 자신들을 구원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자체로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베스팔 대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전투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으며 훗날, 사료를 연구하는 학자 몇몇이 생각보다 대단한 승리가 아니었다며 슬그머니 소신 발언했지만 그것마저도 신성 모독이라며 물매를 맞을 정도로 헨리는 바로 그날,신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혁명 정부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처럼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당시에 헨리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 론데니움 시민 비율이 99%.

차기 정권 수반으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70%가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의견을 보냈다.

파비오 상인 연합으로서는 두 번째 조사 내용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정치에 뜻이 없다는 사실은 검증이 끝난 데다가 토사구팽을 논하기에는 급한 불만 간신히 진화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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