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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화 〉(H이벤트 포함)월하정인, 그리고 결의(4) (227/429)



〈 227화 〉(H이벤트 포함)월하정인, 그리고 결의(4)

자초지종을 캐물어 보니 그가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이유도 루돌프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마,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느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대답하겠지. 아무래도 매가 부족한 모양이야. 일단 고문을 통해서 솔직하게 만들어놓고 다시 한번 물어보도록 하지.”


“정말입니다! 애초에 저는 친구도 없는데…”

“거짓말입니다, 도련님. 오늘 낮에  동생이 이 남자를 자신의 친구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리나 양?!”


예상하지 못한 고자질에 당황하면서 외쳤다.

“초장부터 장난질이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거짓말이 아닙니다! 랜달과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손에 꼽을정도로 적어서…”


“아예 없는 것과 적은 것은 땅과 하늘 차이지. 이런 기만자 녀석.”

“자, 잠시만기다려 주십시오. 불에 달군 부지깽이만은, 부지깽이만은…끼요오오오오옷?!!”


치이이이이이익!!


“추운데 따듯해지니까 좋지?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도 나고 말이야.”

“아, 악마! 끄아아아아아악!! 잘못했습니다. 흐어어어엉! 죄송해요,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용서해주세요.”

눈물과 콧물, 몸에서 쏟아져 나올  있는 체액은 모조리 쏟아내면서 용서를 비는 시바레 백작.

“더러운 사내새끼를 고문해도 별다른 보람이 없군. 쓸데없이 눈살만 찌푸려지고 말이야. 이제 솔직해질 생각이 들었느냐?”


그는 잔상이 생길 정도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후계자님!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만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직도 입이 가볍군. 솔직하게 말해서 딱히 듣고 싶은 말은 없었어. 아까 네가 한 말이 사실이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다시 고문해 주지.”

“당신 그냥 고문을 하고 싶은 거…끼요오오오오옷?!”


다시 한번 엉망진창으로고문당했다.

“훌쩍, 훌쩍. 크흐흐흐흑. 도, 도대체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뭐예요?”

“사내새끼가 질질 짜지 마라. 고문이 부족한 것이냐?”

“히이이이익?! 아, 아닙니다. 닥치고 있겠습니다!!”


드디어 고분고분해진 모습을 보아하니  괴롭힐 필요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경솔한 태도나 행동거지를   살짝 허당끼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본 결과 평범하지 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시바레 백작.

“역시 그냥 제거해버리는 편이 나을까?”


리한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표정이 사색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아니 저희가문은 래리님이 아니라 후계자님을 지지하고 있는 세력입니다!”


“그래서?”

“그, 그래서라니…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이야기인데요.”

“네가 고문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반감이 생겨버렸을 것이 아니냐? 역시 위험 요소는 미리미리 배제해놔야지.”


“…??? 네? 아, 아니.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닌데. 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지만 서순이 이상한 말에 시바레는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0에서 무엇을 곱하더라도 0에 불과하지 않느냐? 피라미 같은 너희 게밋 가문이 우리 편에 가세해봤자 지금 국면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는다는 소리다.”

“…후, 후계자님께서는 저희 가문의 이름을 알고 계시는군요???”


“제니아의 모든 귀족 가문을 외우고 있다. 적어도 이름 정도는 말이야.”


“그러면 그냥 살려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어차피 이쪽으로 붙으나 저쪽으로 붙으나 아무런 영향력을발휘할 수가 없는데…훌쩍. 그냥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쭈그리고 있을게요.”


시바레는 말하는 도중에 서글퍼졌는지 울먹거렸다.

“그렇게 존재감이 없으면 그냥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려도 되잖아.”


“악마입니까? 당신은!!”

하지만 다음 순간에, 사냥감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처럼 행동하던 리한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가문이 아니라 네가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에게 증명해 보여라.”


“…네???”


“조금 전에 이리나가 뀌띔으로 가르쳐 주더군. 듣자 하니 랜달이 너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라고 평가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살고 싶다면 네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라.”


“저 자신의 가치…”

“그래. 쓰기에 따라서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면 너를 채용하겠다. 성과에 따라서는 시골 귀족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부귀영화와 출세를 맛보여주지.   싫다면 다른 소원이라도 상관이 없다. 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들어주도록 하마.”

꿀꺽-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상당히 솔깃한 내용이었는지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킨다. 그리고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지. 지금부터 로프를 자르도록 하겠다. 땅에 부딪혀서 머리가 깨지고 싶지 않으면 네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해줄 수 있는지 외치도록 해라.”

그렇게 말한 리한은 주저 없이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투두두두둑-

톱질하듯이 로프를 잘라나가자 꼬아놓은 줄이 하나씩 튕겨서 떨어져 나가며 삼나무에 거꾸로 묶어놓은 시바레가 거칠게 출렁거렸다.

그의 머리에서부터 땅까지의 거리는 대략 2m.


귀족에게 대수로운 높이는 아니었지만, 내력을 봉인 당해서 금강투합체를 사용할 수가 없는 데다가 땅이 돌처럼 단단하게 얼어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떨어진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잘난 머리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이렇게 몰아세우시면 제대로 생각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서 빨리 머리를 쥐어짜 내란 말이다!!”


“쥐어짜 내라니 그게 무슨 억지스러운…”


“자, 이제 마지막 가닥만 남았다.”

“히이이이익?!”

투두두두두두두둑!!

리한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숨에 로프를 잘라 버렸다.


그것과 동시.

“저, 저에게 맡겨주시면 커딩가 가문을 회유해 보이겠습니다!!”

후우우우우웅!

탁!


시바레의 머리가 지면에 닿기 일보 직전에 리한의 손에 사로잡히는 로프.

“그것 봐라. 하려면  수 있지 않느냐?”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아, 아니. 일단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꺼낸 말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다각도로 검토해 봐야 하는 문제라서…”

“그러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는 소리군.”

“어디까지나 제 뇌피셜입니다. 가능성이 있다고만 했지 실제로는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아얏?!”

쿵!


줄을 놓아버리자 머리가 가볍게 지면에 부딪혔다.

“주절주절 시끄럽다. 이리나! 랜달에게 연락해서 녀석을 데려가라고 해라. 여기로 직접 오라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혼자서 상주 노릇을 하느라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한 랜달이 소수의 팔콘 전사들과 함께 얼음 채취구역에 도착했다.

“랜달!”

“시바레!! 하하하하,  녀석. 아까는 불쑥 찾아오더니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이야. 그나저나 몰골이 정말로 엉망진창이구나. 그러게 왜 눈치도 없이 누님의 오붓한 시간에 훼방을 놓아서…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몰라? 하여간에. 쯧쯧쯧쯧?! 누, 누님?!”

고오오오오오오오!


끼리끼리 논다고 하더니 눈치가 없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녀석을 데려가서 며칠 동안 조용히 연금軟禁해 두어라. 어느 정도 편의를 봐주는 것은 허락하지만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는 녀석이니까 감시를 늦추지 말고. 친구라고 봐주지 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도련님. 솔직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장래의 매형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커헉!!”


그렇게 까불다가 이리나에게 걷어차였다.

“시바레.”


“네, 네! 후계자님.”

자신을 묶는 포승줄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다가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리한은 그에게 텐트에서 가지고 나오는 통 하나를 안겨주었다.

“네가 잡은 빙어들이다. 가지고 가서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먹어라.”

대충 봐도 3~40마리는 되어 보이는 숫자.

“저는 괜찮으니까 두 분이 드십시오. 어차피 먹으려고 잡은 게 아니라 재미로 낚아 올린 녀석들이니까 사죄의 의미로 받아주시면…”

이 대답에 리한의 표정이 사납게 찌푸려졌다.

“재미로 낚아 올렸다고?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녀석이로군. 게다가 눈치도 없어.”

“…네???”


“내가 네놈의 목숨을 재미로 가지고 놀면 참으로 즐겁겠구나? 역겨운 소리 지껄이지 말고 자신이 거둔 생명에 책임을 지도록 해라. 그게 먹이사슬에 위에 서 있는 존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단호하기 이를 데가 없는 태도에 그는 마지못해서 통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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