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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5화 〉(H이벤트 포함)월하정인, 그리고 결의(2) (225/429)



〈 225화 〉(H이벤트 포함)월하정인, 그리고 결의(2)

“어머니?”

“도련님은 가문의 은인이야. 그래서 우리 일가 모두가 그분에게 충성을 맹세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어. 그건 바로 내 딸의 행복이야. 만에 하나라도 도련님이 너를 불행하게 한다면, 그래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렴.”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지만 도련님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물론, 그래야지. 그래서 오늘 밤을 허락해주는 거야. 하지만 열  물속은 알아도 한 길의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아니란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도련님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니?”

“그것은…”


오필리아의 질문에이리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말대로 리한은 변했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던 3년 전의 모습 하고는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에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은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리나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필리아는 그런 딸의 고민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피식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괴롭힌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어머님”


“모든 일에 반드시 정답을 찾아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깨에 힘을 빼고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도록 해. 가끔은 실패를 해도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아스트라세 가문의 일원이자 내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편이라는  알지?”

이마를 맞대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울먹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장난기와 태연함으로 애써 포장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딸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심정이 어찌 가벼울 수 있을까 .

“…물론입니다, 어머님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듯하기 이를 데가 없는 어머니의 애정이 이리나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귓속말에는 홍당무로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엄마는 예쁜 손녀를 원해♡]



****

마음은 조급했지만 어째서인지 별궁으로 향하는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는 생각에 우왕좌왕하다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버린 그녀.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가리키고있었다.

“너무 늦어버렸어. 벌써 주무시면 어떻게 하지?”

다급한 마음에 허둥지둥 별궁 앞으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막상 문을 두드리려고 하니까 다시 겁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불이 꺼진 적막한 저택의 모습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이형의 괴물처럼 보일 지경.

꿀꺽-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간신히 노크에 성공했다.

똑똑똑똑!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무슨 일이지?”

용기를 쥐어짠 결과가 허무하기 이를 데가 없자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냉정해지자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위화감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별궁이 이상하게 조용해.’

밤이 늦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수는 있지만 24시간 저택을 관리하는 집의 요정들까지 반응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커다란 저택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몇몇 구역에 야간 조명을 밝혀두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꺼져 있어서 별궁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설마 도련님의 신변에 무슨 문제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리한에게 적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아스트라세 가문의 파수꾼이 지켜주는 크레센트 문에서는 그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100% 안심할  있는 보증 수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리나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바보 같아. 도대체 무엇을 들떠 있었던 거야? 도련님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분의 달콤한 속삭임에 이렇게 해이해져서…’


그에게 안기려고 예쁜 치장을 하고 나왔다.


지금, 이 순간이 칼날 위에 올려져 있는 위태로운 평화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검과 갑옷을 버리고 여자를 선택해버린 것이었다.

스스로의 한심함에 눈물이 흘러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렇게 후회하는 시간조차도 사치스러운 낭비에 불과할 뿐이었다.

휘오오오오오오!!

이리나의 손아귀로 차가운 북풍의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차가운 얼음의 검신을 만들어 내었다.

척!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련님. 지금 바로 구하러 가겠습니다!!”


벌컥!


그리고 그 외침과 동시에 눈앞에 문이 열렸다.

“?!!”


“미안하군. 샤워하느라고 조금 늦어져 버리고 말았다.”

조금 전의 각오가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태연하게 샤워 가운과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리한이 마중을나왔다.

동시에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이리나의 머릿속.

“무, 무, 무, 무, 무사하셨군요. 도련님!”

“당연히 무사하지. 하지만 걱정해줘서 고맙군. 귀여운 녀석.”


“오, 오, 오늘 밤은 달이 아름답네요!!”

“무슨 소리냐? 네가 훨씬 더 아름다운데.”

“하으으으읏?!”

시바레 백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느끼한 멘트를 대수롭지 않게 뱉어내는 그였지만 발휘하는 효과와 파괴력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가  말도 단순한 작업 멘트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왕국 최고의 미인 중에 하나로 유명한 이리나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한껏 꾸미고 찾아왔는데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달의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은은한 달빛에 빛나는 새하얀 머리카락은 요정의 실타래처럼 아름다웠고 눈썹은 살며시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보였다.


내추럴한 화장은 사랑스러운 본홍색 입술을  탐스럽고 도드라지게 만들었고 은은한 백합 향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향수도 뿌린 모양이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후드와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아래 가슴이 파인 하늘색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밀회를 하려고 찾아온 신비로운 눈의 여왕님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리한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이리나에게 추근거리기 시작했다.

“후후후후. 나를 위해서 이렇게 꾸미고 나오다니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는군.”

“이, 이, 이, 이건 어머님께서…”


“역시 장모님이야. 하지만 부모님 핑계를 대는 것은 용서할 수 없군. 어서 죄송하다고 빌면서 수청을 들지 못하겠느냐, 이년!”


“슈, 슈청?!”

목소리가 꼬부라져서 나왔다.

“그나저나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기세등등하게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냐? 그렇게 흉흉한 무기까지 만들어내고.”

리한의 지적에 얼굴이 빨개져서 얼음의 검을 등 뒤로 감췄다.


“그, 그게…별궁이 너무 조용해서 도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알고…”


“후후후후. 걱정도 태산이로군. 뭐, 신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대비책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제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드려야 했는데…”


“누가, 누구를?”

“제가 도련님을…”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네???”


“이제 슬슬 도련님이 아니라 서방님이라고 부르거라. 아니면 지아비도 괜찮고 말이야. 낭군님, 오라버니, 달링, 허니. 등등등 달달한 호칭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 주인님이나 아빠라고 불러도 되고 말이야.”

“아,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아니잖아요?!!”

빨개졌으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었다.


“기분만 내자는 거야. 기분만…하지만 그 호칭이 신경쓰이는 모양이군. 후후후. 자, 사양하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보렴. 귀여운 이리나.”

“그만두세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도련님을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이리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매섭게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사르르 흘러내리면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피식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후후후…꺅?!”

리한은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그러면 슬슬 시작해 볼까?”


꿀꺽-


드디어 올 것이 와버리고 말았다.

“무, 무엇을 하시려고…”

“무슨 짓을 할 것 같은데???”


“모, 모릅니다. 물어보지 마세요, 변태…”

“변태라니 너무하는군. 아빠는 슬퍼요. 흑흑.”

“적당히 해주십시오.”

이리나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차가워졌다.


그런 반응에 피식 웃어버린 리한은 그녀를 데리고 의상실로 이동했다.


“여기는 왜…?”


“뭐처럼 예쁘게 차려입었는데 미안하지만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도록 해. 지금부터 외출할 예정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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