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4화 〉선전포고(4) (214/429)



〈 214화 〉선전포고(4)

****

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은 무엇일까?

정답은 텔레포트다.

5서클의 순간 이동 마법.

이동 좌표를 입력해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도착할  있는 공간 마법의 정수.

하지만 이 마법이 불러일으키는 사회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이보다 편리하고 실용적인 기술은 없을 테지만 만약에 범죄에 이용된다면 그야말로 악용될 소지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이 세상에 안전한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게다가 호시탐탐 민주주의의 등불을 꺼트리려고 하는 전제국가의 주구들이 전쟁에  마법을 사용한다면 국경 경계를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후방에 모습을 드러낸 적의 대군이, 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자유 세계의 수도 론데니움을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찌  발을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류여 걱정하지 말지어다.

우리는 최소한 어둠 속에서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무분별한 공간 이동 마법의 남용 위협에 노출된 와중에도 이것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희망의 불빛이 오래된 옛 땅, 제니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아르고스 라인.


잊혀진 시대에 세계를 지배했다고 하는 위대한 마도 제국이 남긴 유산이다.


이미 상층부의 외교 교섭의 성과로 우리 잘레스 학파는 오팔 왕국의 마법사들과 함께 이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합의를 했다.

만약 이 탐사가 결실을 맺어서 아르고스 라인의 기술력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공화국은 이 혼란스러운 공간 이동 전쟁에서 적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토 방위에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주는 혁신적인 초계 기술을손에 넣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인류를 위해, 국민을 위해, 자유 세계의 시민들이여 부디 세계를 위해서 우리가 성공하는것을 빌어주기를 바란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이번에도 정답을 찾아낼 테니까.

****


탁!


에윌루드는 피식 웃으면서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써진 책을 닫아버렸다.


아마도 앵커리지 공화국 잘레스 유파 소속의마법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수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저자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지만,그는 그런 수고조차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버릴 것으로 분류하여 내려놓았다.

“더러운 사기꾼 새끼. 하여간에 옛날 사람들은 호들갑이 심하다니까.”


 책이 쓰여진 것은 신서력 2세기 중반.

세계 곳곳에 마탑이 건설되어서 교육 환경이 안정되어 유파를 졸업하는 5서클 마법사들이 범람하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 마법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아주 유명한 음모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무분별한 공간 이동 전쟁의 서막]이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굉장히 그럴듯한 이론.


원하는 좌표를 입력하기만 하면 세상의 반대편이라도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텔레포트 마법이었으니, 실체를 모르는 일반 대중이 두려움에 빠지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실제로도 이 음모론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당시에 공화국 정부는 공간 이동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엄청난 특별 예산을 편성하여, 잘레스 학파에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주 유명한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공간 마법의종류는 크게 4가지.

5서클 마법 블링크, 마찬가지로 5서클 마법인 텔레포트, 7서클 마법인 매스 텔레포트.


그리고 마법 구조물(Magic structure)를 기반으로 3서클 이상의 마법사 1천 명이 동원되어서 마법 술식을 구성해야만 개방할 수 있는 워프 포탈까지.

블링크는 최대 100m를 이동할 수 있는 단거리 마법으로 기본적인 영창 시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마력문을 몸에 새긴 배틀 메이지는 무영창으로 연발할 수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배틀 메이지라는 이름에걸맞은 빠른 속도전을 선보일 수가 있지만, 무장들이 그것을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이 기술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현대전은 전술 마법의 일종으로 일정 반경 이내에 적의 통신을 무력화시키는 마력장을 펼치는데, 이때 함께 사용할 수 없는 마법에 공간 이동 마법이 포함된다.


그래도 이것뿐이라면 적의 마력장 바깥에서 초장거리를 이동할  있는 텔레포트 마법을 활용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왜냐면 텔레포트 마법은 마력문으로 발동할 수 있는 무영창 마법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법을 영창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20분.

소모하는 마력도 거리에 따라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영창 중간에 이동할 장소로좌표를 찍는데 순간에 목표 지점에 텔레포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있는 전조前兆 증상이 발생한다.


엄청난 발광發光현상과 마력 응집 현상.


10km 바깥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데다가, 조금이라도 기감을 가지고 있으면 눈치를 채기 싫어도 챌 수밖에 없는 마력을 뿜어내기 때문에 상대편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텔레포트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하물며 매스 텔레포트나 워프 포탈 같은 대규모 전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상대편에게 무조건 발각된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 공간 이동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방해하는 방법마저도 너무나 쉬웠다.

얼마나 간단하지 마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정도.


그냥 그 자리에 상대방이 이동할 수 없도록 커다란 장애물 하나를 가져다 놓으면 되었다.


그러면 텔레포트 마법은 안전하지 못한 이동으로 인식하여 자동으로 취소되어버린다.

물론, 이런 단점을 고려하더라도 텔레포트 마법이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육상과, 지상, 공중까지 포함해서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었으며 실제로 전쟁 중에는 뇌물을 줘서 미리 포섭한 적의 영지에 대규모군대를 공간 이동 마법으로 전이시켜서 적의 후방을 급습,결정적인 승리를 거머쥔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반대로 함정을 놓고 자국 영토에 깊숙이 끌어들여서 고립시킨 다음에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어서 전멸시킨 사례도 수도 없이 많았다.


획기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기존의 인프라 만으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해서[무분별한 공간 이동 전쟁의 서막]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무시수시한 사건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특정 단체가 독점하고 있는 전문 지식이었기 때문.


게다가 이러한특별 예산 편성 자체가 완전히 눈먼 돈이 생기는 것이나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가, 기자, 마법사, 각계각층의 학자들이 결탁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다.


“이래서 일반 대중들에게 권력을 주면 안 돼. 나랏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천한 것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해?”


화르르르륵!

그렇게 중얼거린 에윌루드는 손가락을 튕겨서 사기꾼이 쓴 책을 마법의 불꽃으로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환기를 위해서 마차 창문을 열었다.


지이이이이이이이잉-!


 순간,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하며 아름다운 글레셜레이크를 감싸고 있는 백색의 도시. 사나그가 그의 시야로 들어왔다.

웅성웅성

바깥 상황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모두 크레센트 문으로 향하는 조문 행렬.

하나같이 자신들의 지역에서 힘 좀 쓴다는 저명인사들이 찾아온 것이었지만, 겨우살이 가지를  뒤로 새긴 은빛 로브를 휘날리는 루디아브 가문의 마법사들 앞에서는 하찮은 중생들에 불과할 뿐이었다.


“길을 비켜라! 루디아브 가문의 가주. 에윌루드님께서 행차하신다!!”

우르르르르르-


선두에 있는 병사가 목청을 높이기 무섭게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허겁지겁 좌우로 물러서는 사람들.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고 뱉어내는 숨조차 조심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세경가를 향한 존경과 선망,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 에윌루드를 유쾌하게 만들어줬지만, 어느 무리에나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는 투덜이들이 존재하는 법.

그리고 그는 그런 자들의 이야기를 輯音집음 마법으로 몰래 엿듣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하지만 그것은 그가 기대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젠장, 이것으로 벌써 2번째로군.]


[조금 전에는 주홍 기사단이었는데 이번에는 겨우살이 마법사들이라니…이럴 줄 알았으면 서둘러서 올 것을 그랬지. 설마 이렇게 인파가 몰릴 줄이야.]


‘주홍 기사단이라고…?’


“멈춰라!”


불길한 내용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그렇게 외쳤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에윌루드! 거기에 있는 것은 에윌루드가 아니냐!!”

‘젠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