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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화 〉선전포고(3) (213/429)



〈 213화 〉선전포고(3)

그렇게 대답한 이리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성명서와 함께 도련님이 양도한 증거자료가 대륙 각국의 정상들에게 배부되었습니다. 데피리스 교단과 마탑에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후자야. 당연히 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지.”

두 조직모두 혈마법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데피리스 교단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3년 전에 영토분할 협상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것은 마탑도 마찬가지.


현대 사회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힘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으며 국가에 얼마나 많은 마법사가 소속되어 있는지를 문명화의 척도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만약에 이들이 집단 파업이라도 해버린다면 사회 시스템 전체가 마비당하는 것은 한순간.

물론, 어지간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왜냐면 데피리스 교단하고는 다르게 마탑은 단일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도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제자들은 유파를 총괄하는 마스터(스승)에게 충성을 바친다.


하지만 그것도 졸업을 인정하는 5서클 전까지만 해당이 되었다.

이너서클로 들어갈 생각이 아니라면 그때부터 유파를 나와서 자신의 길을 자유롭게 걸어갈  있었다.


물론, 졸업한다고 해서 학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20시간의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사유재산도 가질 수 없는 비참한 노예 신세를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졸업을 목포로 아득바득 노력을 쏟는다.

마탑은 이런 유파를 총괄하는 마스터들이 설립한 대학교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목적은 마법 연구.

유파가 다르다고 해도 성질이 비슷한 마법은 연구에 따라서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마탑이라는 모임의 장을 만들어서 학술 교류와 토론, 공동 연구 등을 진행하고자 함이었다.

따라서 뚜렷한 구심점은 없고 유파마다 성향도 다른 데다가 설립한 지역에 따라서는 국가에서 소속되어서 정부의 하위 기관처럼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제국이 두려워할 정도로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들이 딱 하나 공동으로 합의하여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사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금지하고 있는 금단 마법에 손을 대는 것이었다.


이 리스트에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혈마법.

이외에도 시체를 이용하는 사령 마법이나 주술사들의 저주 같은 것도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를 했다.

우스운 점은 악마의 힘을 빌리고 그들을 사역하는 흑마법은 유파의 힘이 너무 막강해서 어쩔 수 없이 용납해주고 있다거나, 심각한 마법 오염을 일으키는 전략마법에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로남불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런 사안에 일치단결하여 공동으로 힘을 합치고 있었다.

그리고  영향력은 테르할 제국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마탑이 영향력을 행사할  있는 마법사가 전체 숫자에 70%에 육박한다고 한다.

만약에 이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다면 제국이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일 터.


물론,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국제사회와 교단, 마탑을 적으로 돌리며 혈마법사를 포용할 리가 없었지만, 한동안 상당한 클레임에 시달리면서 화가  그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상당히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T-7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군.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말이야. 제국의 반응은 어떻지?”


“처음에는 부인했습니다만 증거자료가 너무 명확해서 지금은 조사중이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아마 저녁쯤에는 뭔가 성명을 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상당히 갈팡질팡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겠지. 적당히 이용하다가 버릴 생각이었던 하청 조직이 이렇게 성가신 문제로 불거질 줄은 몰랐을 테니까 말이야. 뭐, 결국에는 꼬리를자르고 적당히 무마하려고 하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해. 계속 당하기만 하던 T-7이 간신히 칼자루를 잡았으니까 말이야. 엠프리스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 틈에 은요호 기관을 향해서 총공세를 퍼붓겠지. 자신들의 영향권 내에 암약해 있는 하부 조직을 궤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말이야.”

“…”

이 말에 이리나는 살짝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 그러지?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아닙니다. 확실히 말씀대로라고 생각하지만 일이 너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은요호 기관이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실은…그렇습니다. 도련님께서 넥타르를 일망타진하신 작전은 더할 나위 없이 신속하고 깔끔했다고 생각하지만, 뱃놀이에서는 상당한 소란을 일으켰으니까요. 정보가 새어나갈 여지는 충분하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미리 대처했다면…”


 말을 들은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후후. 실패할 리스크가 컸다면 T-7이 거래에 응하지 않았겠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걱정하지 마라. 사실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손을 써둔 것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은요호 기관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어. 제국의 마녀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비대한 조직을 그렇게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리한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안락의자를 뒤로 눕혔다.

현재 오팔 왕국에는 엄청난 양의 가짜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어서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허무맹랑한 내용이지만  가지 사안은 은요호 기관에게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 왕국에 있는 모든 정보라인이 과부화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주의를 돌리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사살도 모른 체.

처음에는 폭스하운드와 휴크 남작에게 지시해서 시작한 연막작전이었지만 이제는 카밀라에게 위탁해서 T-7이 관리를 맡았다.

그 성과는 단순하게 뱃놀이 사건의 진위를 숨기는 것만이 아니라 은요호 기관이 파벌 관리를 소홀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단적인 예로 돌로레스가 갑작스럽게 야월과 연락이 끊어진 이유를 문의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의 없게 대처한 것이다.

그들에게 야월의 주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종적을 감췄다는 소식은 가짜 뉴스 중에서도 신빙성이 낮은 것이었다.

다양한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종류의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던 혈마법사 문제가 터져버린 것이다.

은요호 기관이 발칵 뒤집혀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더 큰 일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가짜 뉴스 하나가 진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T-7이 이용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소재다.


음지에 활동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암약 단체가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취약점.

그곳을 정확하게 공략당해버렸으니 은요호 기관은 당분간 상당한 수세에 몰릴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리한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제니아를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는 이 모든 내용을 며칠 전에 독대한 T-7의 수장 엠프리스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차양 너머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당신은 정말로 무서운 분이로군요. 부하들이 어째서 그렇게 죽이라고 아우성을 치는지 이제야  것 같습니다. 당신의 신분만 아니면 우리 조직으로 스카우트하고 싶을 지경이군요.]


[굳이 스카우트하지 않아도 같은 편으로 친하게 지내면 되지 않습니까?]

[후후후후. 같은 편이라. 죄송하지만 이 잔인한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도 동맹도 없습니다. 적어도 인간 세상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이쯤 되니까 궁금하기는 하군요. 당신이 과연 어디까지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성립된 동맹.

“실망하게 하면 안 되지. 미녀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도련님?”

뜬금없는 리한의 말에 이리나가 고개를갸우뚱했다.

하지만 그는 설명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수많은 유명인사가 조문을 위해서 몰려오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정말로 헤어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그녀가 답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힘들고 피곤한 일은 전부 랜달에게 떠넘기도록 해라. 명색이 상주니까 그 정도 노릇은 해야지. 밤에는 일찍 쉬어라.”

“후후후후. 물론입니다.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쯧쯧쯧쯧. 하여간에 눈치가 느리군. 밤에 일찍 쉬라는 말은 몰래 빠져나와서 나에게 오라는 소리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밀하게.”


“그, 그건…읍?!”

당황하는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루크 장군이 했던 충고를 기억하고 있지?”

무엇을 떠올렸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기,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마음의 준비는 밤이 되기 전까지 충분히 해놔라. 이제는 기절해도 봐주지 않을 거야. 밤새도록 네가 누구의 여자인지를 온몸 구석구석에 새겨주도록 하겠어.”

“그, 그런…♡”

부르르르르-

손가락으로 뺨을 쓸어내리자 신체가 부르르 떨렸다.

“대답은?!”

“꺅?! 아, 알겠습니다!!!!”


엉덩이를 찰싹 때리자 엄청난 하이톤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이리나는 좌부동 자매와 함께 별궁에서 절대로 잊을  없는 성스러운 밤을 보내게 되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

리한은 채음보양을 했고 이리나는 설영빙천공의 성취를 높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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