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돌발 H이벤트)winter is cumming(6)
충분히 우쭐거리게 해줬으니 이번에는 살짝 쓴맛을 보여줄 차례였다.
4번 공은 아슬아슬하게 실패.
성공할 수 있었고 성공해도 상관없었지만 너무 추켜세워지는 바람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9번 공을 리한이 약삭빠르게 가져가면서 게임 자체를 내줘버리고 말았다.
포켓에 넣은 숫자만 보면 지젤이 6개로 훨씬 앞섰지만 나인볼은 결과가 전부.
하지만 초보에게 이런 상황이 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후후후후. 처음부터 이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읏, 으으으으. 그, 그렇군요. 추, 축하드립니다. 후계자님!”
마지못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않았다.
“어때? 이만하면 룰도 알았겠다. 한 게임 더 해보겠느냐?”
“네, 잘 부탁드립니다!”
‘완전히 빠져들었군.’
지금까지 내숭을 떨며얌전한 척 하고 있었지만 지젤이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은 이미 프로파일링을 통해서 파악해놓고 있었던 사안.
리한은 태연하게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 더 승리를 빼앗아 갔다.
“…”
고오오오오오오오!
‘엄청 화났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패배에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불꽃 같은 오오라를 뿜어내었다.
뚜벅뚜벅
“앗, 저기…”
“제가 대신 배치하겠습니다!”
심판인 린린을 밀어내고 자신이 대신 나인볼을 세팅하는 지젤.
[그냥 내버려둬라.]
[네!]
룰 위반이지만 리한은 그렇게 지시하며 지쳤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크흠. 잠깐 진정하고 쉬었다가…”
“쉬다니요? 이렇게 불이 붙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어서 한 게임 더 합시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이렇게 언성을 높이지 않았을 테지만 보아하니 숭부욕이 불타올라서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휴우, 보아하니 성이 풀릴 때까지 어울려줘야 되겠군. 좋아. 하지만 규칙 하나를 추가하겠어. 란란!”
“네, 손님!”
손가락을 튕기자 바 테이블로 쪼르르 달려간 란란이 데킬라 두 잔과 소금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한 잔씩 마시는 거야. 물론, 내력을 사용해서 취기를 몰아내는 것도 금지.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다음 게임에 응하지. 어때?”
“좋습니다!!”
호기롭게 수락하는 지젤과 함께 잔을 부딪쳐 원샷하고 손등에 소금을 얹어서 핥아먹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데킬라가달게 느껴진다.
마스터 코어에게 언제나 보호를 받고 있는 리한은 따로 취기를 몰아내지 않고 몇 잔을 마셔도 아무렇지 않지만, 그렇지 않아도 잔뜩 흥분해 있던 그녀는 높은 도수의 알콜이 체내로 들어오자 단숨에 취기가 도는 모양이었다.
‘당겼으니까 이번에는 살짝 풀어줘 볼까?’
리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처음 세 판보다 치열한 승부를 연출하며 연속으로 게임을 내줬다.
딱!
떼구르르르-
“만세!! 이겼다, 또 이겼다!!!”
9번 공이 아슬아슬하게 포켓에 들어가자 지젤은 만세를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젠장! 하필이면 마지막 순간에 미스가 나버리다니…도저히 안 되겠어. 한 판 더해!!”
“에에~ 아까는 쉬러 가고 싶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여기에서 그만해도 상관이 없습니다마아안??”
취해서 살짝 풀어진 눈으로 뒷짐을 지면서 얄미운 말투로 도발해 왔지만, 리한에게는 오히려 귀여운 애교로 보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급하게 손바닥으로 가렸다.
“흥! 게임 스코어는 3대 3으로 똑같잖아.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한 판만 더 어울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제 몇 번을 싸워도 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만.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청출어람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후후.”
“뭐야? 이런 건방진 녀석. 좋아, 어디 한 번 해보자!”
지젤이 도발에 짐짓 분노한 것처럼 연기하면서 단숨에 데킬라를 털어 마셨다.
‘이제 슬슬 마시는 게 부담스러워 지겠지?’
아니나 다를까 술잔을 잡는 손이 살짝 멈칫했지만 승부욕이 제대로 불이 붙은 그녀는 질 수 없다는 듯이 호기롭게 원샷을 했다.
하지만 이번 대결의 승리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리한이 가져갔다.
동전 던지기로 선을잡고서 브레이크샷을 날린 직후.
1번 공은 포켓에 들어갔고 다음 최소 볼인 2번이 9번과 거의 나란히 붙어버리고 말았다.
나인 볼의 규칙에 따르면 수구가 때린 간접 타구가 9번 공을 쳐서 포켓에 밀어 넣으면 그대로 승리.
그는 이 상황을 고스란히 연출했다.
지젤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딱 두 번의 샷만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패배를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하하하하! 어떠냐? 이게 바로 실력 차이라는 거야.”
“크으으으읏! 마, 말도 안 됩니다! 이런 결과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렇지 하필이면 처음부터 그런 배치가 되어버리다니 사기잖습니까?!”
물론,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지만 리한은 능청을 떨었다.
“후후후후. 그러니까 운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부정해도 결과는 결과야. 깨끗하게 승복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앞으로 딱 한 판만!아니, 두 판만 더 어울려주십시오!”
“추하게 왜 이래?”
얄밉게 떨쳐냈지만 아쉬운 쪽은 지젤이었기 때문에 절박해 보일 정도로 매달리면서 애원해 왔다.
“제발 부탁입니다. 후계자님도 이렇게 끝나는 것은 바라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제바아알~”
어울리지 않게 애교까지 부리는그녀.
“뭐 좋아. 처음부터 성이 찰 때까지 어울려주겠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추가 게임이니까 새로운 규칙을 추가하도록 하겠어.”
“좋습니다!”
“…급한 것은 알겠지만 일단 내용이 뭔지는 들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아, 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성급했군요.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지금부터 게임에서 지는 사람은 옷을 하나씩 벗는 거야.”
우뚝!
예상한 대로 당황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오, 옷을 말입니까?”
“그래. 이런 패널티가 있어야 승부에서 져도 지금처럼 투덜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승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벗는다고 해도 처음에는 보타이나 양말 한 짝 정도가 될 텐데 그 정도 노출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할 조건도 아니잖느냐?”
“…드, 듣고 보니까 그렇군요.”
‘그래. 후계자님이 말씀하신 대로야. 앞으로 두 판을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 정도 노출은 오리나 님이나 나디아 님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겠지.’
‘…라고 지금쯤 생각하고 있겠지. 후후후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모습에 리한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조금 더 멀쩡한 정신 상태였다면 절대로 수락하지 않았을 옷 벗기기 게임.
심지어 최대한 빠르게 벗기려고 복장마저 일부러 이렇게 지정했다는 것은 꿈에도 알아차리지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또 있습니까?”
“진 사람에게 벌칙이 있으니까 승리한 사람에게는 보상이 있어야지.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거야.”
“소원이라면 어떤 종류의…”
“너무 과도한 요구는 NG. 간단하게 어깨10번 주물러주기 같은 것으로 하지?”
“흠, 그 정도라면…”
“좋아. 그러면 바로 다음 게임을 시작하자고!”
수락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재빠르게 다음 게임을 시작해버렸다.
이미 그녀가 당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
게다가 오팔 왕국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속담 중에는“게임을 즐기려면 가짜 돈이라도 걸어라.”는 말이 있다.
내기가 걸리자 게임 자체의 몰입도가 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딱!
떼구르르르르르-
“아싸!!!”
스코어를 7대 7로 만들고 신이나서 방방 뛰는 지젤.
“크윽. 이렇게져버리다니…”
리한은 분한 표정으로 보타이를 벗어던졌다.
“후후후후! 당연한 결과입니다. 일단 어깨를 20회 주물러 주십시오, 아아~ 정말로 시원하군요. 이게 바로 승리의 미주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입니까?”
“것 참, 완전히 기고만장해지셨군. 두고 보자, 다음 판에 본때를 보여주지.”
“솔직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보십시오. 하지만 어떨까요? 이번 판에는 거의 건드리시지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그녀는 다음 판과 다음 판과 다음판을 거짓말처럼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하하하하하! 사필귀정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보고 말하는 거겠지. 기분이 어떠신가? 패배자.”
빠직!
“이이이이이익! 조, 좋습니다. 다음! 다음 게임을 부탁드립니다!”
리한의 도발에 관자놀이에 십자로가 솟구쳐오른 지젤이 양말 한 짝을 벗어버리면서 그렇게 외쳤다.
“아니, 아직 벌칙이 남아있잖아. 승자의 소원을 들어줘야지.”
“알겠습니다. 지난 판에는 저하고 똑같이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죠? 이번에는 뭡니까??”
“흠…그렇다면 눈싸움 1분은 어때?”
그는 살짝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