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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화 〉선전포고(3) (198/429)



〈 198화 〉선전포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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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그는 제니아의 남서 지방에 위치한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아스트라세 가문이 통치하는 군사,경제, 문화의 통합 허브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글레셜 레이크라고 불리는 호수를 도시 전체가 초승달 형태로 감싸고 있으며, 수원을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북쪽 끝단에 해발 120m의 조그마한 산을 발견할 수 있다.

동화 속의 세상처럼 사시사철 쏟아져 내리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장소.

 산세를 따라서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성이 바로 루돌프 일가의 본거지인 크레센트 문이다.

전형적인 중세시대의 석조 구조물로 중후한 멋을 한껏 뽐내고 있지만, 수성守城은 고려하지 않은 개방적인 형태와 내부 곳곳에 연무장과 수련장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크레센트 문의 특색을 정말로 잘 나타내주는 것은 온대기후에 해당하는 사나그와는 대조적으로 언제나 영하의 온도를 유지하며 눈이 내리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유는 성의 중앙 홀에 떠있는 달의 눈물이라는 불가사의한 수정 때문.


아슈킬 가문의 7대 가주인 알폰소 백작이 아스트라세 가문을 자신의 세경가로 삼으면서 하사해 줬다는 기물奇物중의 기물이었다.

덕분에 크레센트문은 따듯한 지역에 속해있으면서도 설영빙천공을 수련하기에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가문 대대로 신성시해서 억만금으로도 교환하지 않겠다며 애지중지할 정도.

실제로 달의 눈물이 가져다주는 축복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일단, 글레셜 레이크 자체가 크레센트문의 눈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로 만들어진 호수다.


게다가 이 장소의 물은 청정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달고 시원하기로 유명했으며, 설영수라는 이름으로 외부에서는 제법 비싼 가격에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팔리고 있었다.

거기에 아스트라세 가문이  일부를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줬기 때문에, 사시사철 눈과 얼음을 채취할 수가 있었고 도시의 공동 냉장고로서도 유용하게 활용이 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달의 눈물이 가져다주는 축복이야말로 영주님이 하사해주는 은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이런 기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사나그에서 아스트라세 가문이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보통 무武를 추구하는 가문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을 당연시하며 약자를 쓰레기 취급해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대대로 세경가의 지위를 누리며 강력한 무장을 배출한 아스트라세 가문도 예외 없이 이런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지난 수백 년 동안에는 검으로 흥한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속담에서 잘 도망쳐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설영빙천공 자체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무공이었기 때문에 정무를 보는 것도 대대로 객관적으로 잘 처신을 했던 것이다.


소위 정파, 정도라고 불리는 원칙은 기사도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서,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붙을 정도로 떠들어대는 법.


그리고 아스트라세 가문은  고리타분한 원칙을 비교적 잘 실천해 왔다.


게다가 크레센트 문의 축복인지는 몰라도 가족을 최고로 생각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덕분에 상속 문제를 둘러싸고서 형제자매들이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것도 다른 가문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정치적인 기반과 지지기반 모두가 반석 위에 단단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안정된 사회가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


게다가 현재 가주인 루돌프는 지도자로서 특출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무장으로서의 능력과 정무적인 감각 모두가 견실하다는 평가다.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공정한 치세로 사나그에 번영을 가져오면서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외지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달된 것이다.

[말도 안 돼! 틀림없이 헛소문이겠지.]

[그렇고말고. 우리 영주님이 어떤 분인데 그런 일을 당하시겠나?]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것처럼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법.

게다가 그 내용도 잠잠해지기는커녕 점점 구체적인증언과 살을 덧붙이면서 업데이트를 거듭하자, 시민들도 점점 동요하면서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자네 소식 들었나? 크레센트문에 계시는 오필리아 마님께서 오늘 아침에 비보를 전해 듣고 혼절하셨다고 하네.]


[뭐? 그럼 정말로 영주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린가?]


[아마도 그런 모양일세. 쯧쯧쯧쯧. 딱하시기도 하지.]

[그렇지 않아도 제니아 전체가  사건으로 떠들썩하다고 하더군.]


[운구 행렬이 왈카스를 넘었다는 말도 있던데?]


[말도  돼! 거기라면 여기에서 반나절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가 아닌가? 빌어먹을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나도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모양일세. 일각에서는 래리님께서 내린 비밀 지령을 수행하다가 이렇게 되셨다는 말도 돌아다니고 있네만…]


[돌로레스가 아니라 래리님께서? 허허허허. 정말, 기가 막히는군. 제니아가 어떻게 되려고 이렇게 뒤숭숭한지. 말세야, 말세!]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소문으로 점점 침통한 분위기로 변해나가는 사나그.

그리고 이것은 상주가 이끄는 운구행렬이 도시의 입구에 도착하면서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관을 발견한 순간에 한 노인이 어쩔 줄 모르며 고장난 기계처럼 연거푸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어흐흐흐흑! 우리 영주님. 남아있는 불쌍한 사모님과 자녀분들은 어떻게 하라고…]

[으허허허헝. 영주님. 우리를 이렇게 저버리고 가시면 안 됩니다. 영주니이이이임!!]


평범한 여인과 중년 남자의 외침이 이어지자 슬픔이 전염되는 것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오열하다가 바닥에 쓰러져서 실신하는 사람까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 행렬이 천천히 크레센트 문을 향해서 나아가는 동안에 수천, 수만의 군중들이 몰려들어서 거리를 메웠다.

누가 소집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운집하는 사람들.

경비대가 출동하기도 전에 은퇴한 군인들이 낡아빠진 병장기를 털고 달려와서 군중의 질서 유지와 치안 활동에 힘을 보탰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헌화가 쌓여서 도로의 모습을 바꿔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추모의 분위기는어린 딸의 손을 붙잡고 나온 자작 부인과 운구 행렬이 만나는 순간에 절정으로 치닫게 되었다.

“여보!!!!”


“아빠아아아아!!”

절규하며 달려오는 두 사람.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랜달, 이리나! 가만히 있지 말고 이 어미에게 뭐라고 말 좀 해주렴. 우리 남편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어머님…”


상주들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관을 열어주세요. 제 남편을 볼 수 있도록…”


자작 부인의 명령에 팔콘 전사들이관의 상부를 개방하자 차디찬 주검으로 변해서 염까지 끝내, 수의로 감싸고 있는 루돌프의 모습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소생 마법으로도 되살릴 수가 없을 정도로 그는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잖아요. 여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는데…어흐흐흐흑! 이제 우리 일가가 누구를 의지하며 살라고…”

“아빠, 일어나! 아빠아아아아!!”

슬픔에 가득한 모녀의 절규로 장내가 눈물바다로 변해버리면서 사나그 전체가 초상집으로변해버리고 말았다.

지이이이이잉-

그리고  모든 과정이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영상기록장치로 녹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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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 행렬이 크레센트문에 도착한 직후.

안치실로 이동한 랜달은 부하들을 돌아보면서 축객령을 내렸다.

“잠시 아버님을 보내드리기 위해서 가족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모두 바깥으로 나가라!”


“네, 도련님!”


팔콘 전사들과 시종들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고 우르르 빠져나갔다.


“흑흑흑흑,여보! 이렇게 말도 없이 가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아빠! 일어나아아아아!!”


상복을 곱게 차려입고 관에 매달려 있는 모녀는 여전히 눈물을 쏟아내면서 곡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연기는 그만하셔도 됩니다, 어머님. 그리고 코제트.”

“어머, 그러니?”


“오랜만이야, 언니. 그런데 아빠는 정말로 괜찮은 거야? 진짜 시체로 보이는데??”


기막을 펼친 이리나가 말하기 무섭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색을 바꾼 두 사람이 멀쩡한 모습으로 질문해 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그 문제를 해결할 분도 모시고 왔어. 랜달?”


“네, 누님.”


대답한 그가 교묘한 장식으로 위장된 관의 장치를 건드리자, 철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랫부분이 서랍처럼 튀어나오면서 그 속에 숨어있던 사람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이군요, 오필리아 부인과 코제트 양. 두 분 모두 예전보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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