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7화 〉선전포고(2) (197/429)



〈 197화 〉선전포고(2)

더프는 이 소름 끼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새, 생각해보니까 30분은 너무 긴 것 같군. 앞으로 10분만 더…”


고집을 꺾으며 한발 물러서려는 순간에 헐레벌떡 달려온 전령이 사령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오르드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어서 연결하도록 해라!!”


지이이이이잉-


반색한 두 사람이 명령을 내리자 곧바로 전담 병이 마도구에 마력을 불어넣어서 통신 화면을 열었다.


쿵!

“사모님을 뵙습니다!!”


[루돌프가 죽었다고?]


무릎을 꿇는 그들에게 다짜고짜 질문해오는돌로레스.

“네, 그렇습니다!”

[시신을 직접 확인한 거냐?]


“네, 저희가 함께 규정대로 검문 절차를 진행했고 아르고스 라인에도 아무런 이상이 포착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런  같더라.]

우뚝!

“스, 스스로 아르고스 라인에접속해서 확인하신 겁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닙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정색하면서 손사래를 치는 라이언이었지만 그녀의 회신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자신들은 물론이고, 오르드리에서 24시간 아르고스 라인을 감시하고 있는 전탐병들조차 믿지 못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얼마나 의심이 많은 거야? 젠장.’

[알겠어. 그렇다면 지체없이 통과시키도록 해.]

“…바로말입니까?”


[검문 절차를 진행했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며?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아니, 그게…상주인 랜달님께서 사모님과 통신 연결을 희망했습니다. 중요한 요구 사항이어서 보고에 포함했는데 전령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싫어.]


“…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두 사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듣자 하니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화가 잔뜩 났다며? 게다가 우리 남편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제니아를 나섰다가 임무 중에 사망했다고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렇게 성가신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지만 세경가의 차기 가주를 그렇게 홀대하시는 것은…”

[그러니까 부재중이라는 것으로 하자고 했잖아! 귀가 먹어버린 거야? 어디 한적한 곳으로 발령을 받아서 재활 치료라도 받을래?!]


“아, 아닙니다! 명령하신 대로 조치를 하겠습니다!!”

[알았으면 됐어. 이번에는 특별히 용서해 줄게. 끊어.]


지이이이잉-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통신을 종료해버리자 사령실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쿵!


동시에 라이언이 책상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이런 빌어먹을! 뭐가 명령하신 대로 조처를 하겠습니다냐?! 이럴  알았다면 검문 절차가 끝나자마자 통과시켜줘야 했어. 우린 망했다고!!”

“진정하게!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우리가 취한 행동은 틀리지않았네. 사모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래서 뭐?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한 결과가 이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이 멍청아! 너도 지금 하는 꼬라지를 봤잖아? 우리는 지금 버려진 거야. 애초에 저년은우리가 어떻게 되어도 1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사, 사모님에게 저년이라니…”

“씨팔! 어차피 전부 끝장나게 생겼는데 무슨 말을 못 해? 사모님께 물어봐야 한다는 이유로 세경가의 운구행렬을 2시간이나 지체시켜버렸어. 그런데 이제 나가서 뭐라고 변명할 거야? 상부에 문의를 해봤더니 부재중이시라네요. 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저쪽에서 예, 알겠습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대로 얌전히 떠나드릴 테니까 수고하세요. 이러고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씨팔, 나 같아도 우리 부모님 운구행렬이 이렇게 지체된다면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겠다. 아스트라세 가문이 뉘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그만해.”


징징대는 소리에 더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 지금 그만이라는 말이 나…”


“나도 욕 나오니까 제발 그만하라고!!!”


“뭐, 이 새끼야?!”


서로에게 지지 않고 고함을 지르자 순식간에 사령실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아버리고 말았다.


관문의 책임자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내분이 일어나버리자 상대를 향해서 거친 욕설을 퍼부어대며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질 뻔했지만, 이렇게 싸우느라 아스트라세 가문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화를 억누르면서 관문부터 개방하기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감정이 상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제대로 합의하지 못했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서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마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관문을 지키는 모든 인원이 양쪽으로 나열해서 허리를 90도로 접으면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이런 영접에도 불구하고 상주인 랜달의 표정은 북풍한설처럼차갑기 이를 데가 없었다.

“…돌로레스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느냐? 통신 연결은 어떻게 되었지?”


“그, 그것이…”

“여러 번 연락을 시도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부재중이셨습니다.”

우뚝.

휘오오오오오오-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에 관문을 지키는 모든 병사가 몸서리를 칠 정도로 매서운한기가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부재중이셨다?”

꿀꺽.

‘이, 이것이야말로 소문이 자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설영빙천공의 신위!’

‘제대로X됐다.’

상황이 거대한 X가(이) 되어버렸음을 직감한 두 사람의 얼굴에서 남아있던 핏기가 깨끗하게 사라져버리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너희들이 관문을 개방할 수 없는 이유로 내세웠던  사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일단 명령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어떤 회선으로 연락을 드려도 답신이 없어서…컥?!”

“겨우 그거 하나를 확인하지 못해서 아버님을 이런 장소에서 2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감히 우리아스트라세 가문을 우롱하려는 것이냐?”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쩌저저저저저적!


랜달의 살기에 더해서 팔콘 전사들까지 빙공을 사용하며 내력을 끌어올리자 병사들의 입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입김과 흘러내리는 땀까지 얼어붙어 버리기 시작했다.


눈보라까지 몰아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두 사람.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이제 와서 관문을 개방한 이유가 무엇이냐? 절대로 열지 말라는 당부가 떨어졌다면 하루가 됐든, 1년인 됐든, 천년이 됐든!! 우리가 망부석이 되어버릴 때까지개방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새하얗게 변해가는 안광에 머릿속까지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기다리시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서 저희의 재량으로…허어어억?!”


“닥쳐라! 도대체 언제까지 더러운 거짓말을 쏟아내려는 것이냐?! 똑바로 말해라. 누구였느냐, 누가 너희에게 이따위 지시를 내려서 운구행렬을 가로막았냐는 말이다!!제대로 이실직고한다면 적어도 적어도 고통스럽지 않게 단칼에 끝장을 내주마!!”


이성을 잃어버린 랜달이 차디찬분노를 쏟아내자 모든 것이 틀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눈앞이 캄캄해져 버리고 말았다.


‘젠장,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가버리는구나. 아무런 잘못도 없이 줄타기 하나를 잘못해버려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면서 오만가지 회한과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고정해라, 동생아. 화가 난 것은 알겠지만 아버님의 영전 앞이다. 게다가 우리 모두 누가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이들을 처벌해봤자 무의미한 괴롭힘에 불과해.”


천사의 음성이 그러했을까.

솔직히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말투가 차가웠지만,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같은 단아한 목소리에 상복 차림의 검은 베일 속으로드러나는 아름다운 얼굴의 맵시가 두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누님…”

‘랜달님에게 누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설마저분이 소문으로만 듣던 빙면 설화?’

빠르게 머릿속의 인물 사전을 검색해서 매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성공했다.


“狡兔狗烹교토구팽. 두  모두  말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충성을 바칠 가치가 없는 상대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잡아먹힐 뿐이니까요.”

“며, 명심하겠습니다.”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리나님!!”


“가자.”

“…알겠습니다. 누님.”


그녀의 말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한 랜달이 뒤쪽으로 신호를 보내자 운구행렬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관문을 통과해 제니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스트라세 가문의 통치하는 사나그까지 남은거리는 앞으로 이틀.


그 사이에 세경가의 가주 루돌프 자작이 죽었다는 소문이 제니아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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