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선전포고(1)
“오붓한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위중한 사항이라서…”
“알았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
움찔!
따지듯이 물어보자 살짝 주눅든 전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두 가지 소식을 모두 가지고 왔습니다.”
“좋아. 어차피 기분은 잡쳤으니까 나쁜 소식부터 지껄여 봐.”
“라프텔에서 변고가 발생했습니다!”
“라프텔이 어디야?”
“예전에 래리님께서 밤낚시를 가셨던 장소입니다.”
루시타가 귀띔해주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아, 거기? 우리 바깥양반이 엄청나게 커다란 용 한 마리를 낚아 올렸던 장소 맞지? 그나저나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지만 이 인간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오늘은 친구 분들과 함께 등산 겸 사냥 모임에 참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년설로 유명한 코코마운틴으로 원정을 떠나서 2박 3일 등정 일정을 잡으셨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이놈의 남자들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철딱서니가 없다니까? 허구한 날 낚시 아니면 등산, 사냥이라니? 그 애송이가 두 눈을시퍼렇게 뜨고 살아서 우리를 위협해 오는 이 엄중한 시국에 말이야. 지금 놀러 다닐 정신이 있대?? 에휴, 이래서 내가 늙는다. 늙어.”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대신해서 당신의 영원한 배터리인 이 루시타가 곁에 있는 게 아닙니까?”
“후후후후. 고마워. 하여튼 낭만적이라니까♡”
“크흠, 크흠, 크흠.”
두 사람이 무드를 잡기 시작하자 전령이 헛기침하면서 눈치를줬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무슨 문제가 일어났다는 건데?”
“네! 말씀하신 바로 그 라프텔 호수를 중심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정 오염이 퍼져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반경 50km가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으며 감염된 몬스터가 속출! 인간, 동물을 가리지 않고 전염시키며 걷잡을 수 없이 피해 규모를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보고를 듣고 있던 돌로레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심각한 문제인 것같은데?”
“제가 듣기에도 그렇게 들리는군요.”
“이건 도대체 누가 책임을져야 하는 거야?”
“…”
일단 중대한 사항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마치 남의 일처럼 태평하게 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자 전령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곁에 있었던 루시타가 침착하게 조언을 했다.
“일단은 지역의 담당자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시죠.”
“아, 그래. 지역의 담당자가 누구지?”
“아, 네! 그렇지 않아도 라프텔의 영주인 코리 남작이 2천의 군대를 이끌고 진화에 나섰습니다만 5만이 넘어가는몬스터 군단과 조우. 대패하여 20여개가 넘는 촌락이 궤멸당하고 도시 레반젤마저 함락당했다고 합니다! 현재 남작은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함께 헤위웍스 요새에 고립되어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5만이라니? 뭐가 그렇게 많아??”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에 깜짝 놀란 돌로레스가 되물어 봤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한 대상 중 일부가부정 오염에 전염되어서 몬스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명확하게 인간을 향한 적대 의사를 드러내고 있어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전염이라니 그게 뭐야? 좀비라도된다는 거야??”
“아, 네. 조금 다르기는 합니다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좀비는 약하잖아?”
“네. 기본적으로 시체가 되살아는 것에 불과한 최하급 언데드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발생하는 부정 오염은 살아있는 생물을 흑화黒化시켜서 신체능력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약간이나마 지능을 보유하고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장에 있는마물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로 보인다고…”
“뭐야 그게? 정말로 성가신 문제잖아!! 하아. 하필이면 재수도 없지. 꼭 일이 터져도 남편이 없을 때 터져요!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정말. 어쩌면 좋을까? 루시타아아아앙~~~!”
어깨를 흔들며 어리광을 부리자 보다 못한 메이드장이 그녀를 대신해서 앞으로 나섰다.
“몬스터의 약점은 파악했습니까?”
“네? 아, 네!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화염 속성과 신성 마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격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제들과 마법사를 최대한 많이 동원해야 하겠군요.”
“바깥양반을 불러서 해결하라고 할까?”
돌로레스가 물어보자 고개를 저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마님. 만약에 그렇게 조치하셨다가는 래리님께서 친정을 나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라프텔로 가장 빠르게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거점은 바로 여기. 오르드리니까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시급을 다투는 문제라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전령이 슬그머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루시타가 매서운 표정으로 노려보자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마님.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량의 마법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인원을 도대체 어디에서 차출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선발하냐니. 그거야 당연히…아!”
돌로레스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동상 건설에는 그렇지 않아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마님. 공사 일정이 여기에서 더 늦어지는 것을 바라시지는 않겠죠?”
“당연하지! 내가 깜빡하고 그 생각을 못 했네. 역시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루시타밖에 없다니까?”
“아,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아, 아닙니다!”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리던 전령이 급하게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문제는 세경가들에게 위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르드리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커딩가와 루디아브 가문에게 일임하시면 별다른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루디아브 가문은 제니아 최고의 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가문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측근들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지. 언제 다시 부려먹겠어? 역시 자기는 똑똑하다니까?”
“과찬이십니다. 그저 사랑하는 마님을 위해서 조그마한 지혜를 궁리해보았을 뿐입니다.”
“말도 예쁘게하지♡”
“크흠, 크흠, 크흠.”
달아오른 두 사람이 다시 달라붙으려고 했지만 헛기침으로 재차 주목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까 좋은 소식도 있다고 했지? 만약에 지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도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내용이 아니면 각오하라고.”
“무, 물론입니다! 마님에게는 틀림없이 낭보라고 생각되어서…그것도 화급을 다투는 사항이라…”
“알았으니까 우물쭈물하지 말고 말해!!”
짜증을 내면서 신경질적으로 외친 돌로레스였지만 이어지는 전령의 보고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눈동자가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뭐라고??”
“말씀드린 대로…아스트라세 가문의 가주인 루돌프 자작이 사망했습니다! 현재 국경 관문에 운구행렬이 도착하여 출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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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우우우-
쿵! 쿵! 쿵! 쿵! 쿵! 쿵!쿵! 쿵!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수의 나팔과 팔콘 전사들이 두드려대는 기치 창검이 규칙적으로 대지를 진동시킬 때마다, 굳게 닫혀있는 관문을 지금 당장 개방하라는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이 국경 수비군에게 전달되어 왔다.
아니, 실재로도 국경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두 명의 무장은 엄청난 죄책감과 중압감에 짓눌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젠장, 벌써 2시간째 저러고 있다고 더프. 오르드리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은 거야?”
“인내심을 가지게. 라이너 경. 윗선의 허락도 없이 국경을 개방했다가 나중에 어떤 문초에 시달리려고…”
“아스트라세 가문의 문초는 두렵지 않고? 제기랄.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것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야? 애초에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라고 예외 규정이 존재하는 거잖아. 검문 결과는 깨끗했고 아르고스 라인으로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붙잡아 두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이 말에 더프라고 불린 무장은 어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무,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저들은 애초에 허락도 없이 제니아를 뛰쳐나간대역 죄인들이 아닌가?”
“글쎄. 내가 기억하기로는 래리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이런 지령을 내린 돌로레스님께서 나중에 얼마나 우리를 감싸주실 것 같아?”
“그, 그건…”
“하아. 이래서 어설픈 중간직은 라인을 잘 타야 한다고 하더니.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우리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30분, 30분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통과시키도록 하세.”
“30분이라…망할!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 되겠네. 저기에 서있는 상주의 표정을 보라고. 우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 이미 찍힌 게 틀림없어. 빌어먹을 이 짓도 오래 하지는못하겠군.”
그의 말처럼 운구행렬의 선두에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랜달은 봉두난발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흘리며 핏발선 눈동자로 국경 요새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