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짧은 H이벤트 포함)축제가 아니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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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오후.
제니아령, 왕국의 3대 도시로알려진 오르드리의 한 별장 저택의 앞마당에서 어린 소년 하나가 눈을 가리고 시녀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짝짝짝!
“이쪽입니다. 도련님 박수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오세요!”
“속지 마세요!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악한 마녀 렌치입니다. 반대쪽이에요. 저를 찾아내시면 오늘 간식은 달콤한 마들렌을 구워드리겠습니다!”
“마들렌!!!”
귀가 쫑긋해지는 소리를 듣고 쪼르르 달려가던 아이는 잔디 위에 조그마한 돌부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발이걸려버리고 말았다.
기우뚱!
“앗?”
“꺄아악! 도련님!!”
덥석.
바닥에 얼굴이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재빠르게 몸을 날린 시녀의 활약으로 가까스로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아얏.”
하지만뒤이어 흘러나오는 아이의 신음에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 어디 다치셨어요?”
허둥지둥 살펴보다가 손등에 난 작은 생채기를발견하고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절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의 안대를 들어올린 아이는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면서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살짝 긁힌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오히려 폴리야말로괜찮은 거야? 나를 받아내느라고 바닥을 뒹굴어 버렸잖아.”
“소녀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일 도련님! 하지만 제안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위험한 놀이는 하지 말도록 해요.”
“에이, 겨우 이까짓 상처로 너무 호들갑이잖아…”
위이이이이이이잉-!
데일이 너스레를 떨면서 대답하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동자세로 놀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양이 가면의 집사가 앞으로 걸어 나왔고 양손에 들고 있던 통신 마도구를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마, 마님…”
이 모습에 공포에 질린 폴리가 오들오들 떨면서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엄마?”
지이이이이잉-
다음 순간에 그들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거대한 통신 화면.
모래사장으로 보이는 장소에는 빨간 원피스 수영복 차림에 다리를 꼬고 있는 돌로레스가 선베드에 누워서 자몽 주스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선탠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인 그녀.
통신이 연결되기가 무섭게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조용히 들어 올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누가 감히 우리 아슈킬 가문의 귀한 후계자님을 다치게 했지?]
쿵!
“주, 죽여주십시오! 마님!!”
“아니야. 엄마! 정말로 별일 아닌데…”
[어머나? 데일,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오랜만에 봤더니 몰라보게 늠름해졌구나.]
“오, 오랜만이라니. 점심에 연락하고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잖아?”
[그래. 겨우 그 시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 엄마한테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질러대고 있지 않니?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기 이를 데가 없구나. 이제 다 큰 데일에게는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야. 훌쩍.]
코끝을 찡하며 우는 시늉을 하자 깜짝 놀란 소년이 펄쩍 뛰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라니까?”
[정말? 그러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당연히 엄마지!”
순식간에 래리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이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질문해 왔다.
[고맙구나, 아들아. 그렇다면네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하찮은 계집애하고 엄마 중에는 누가 더 좋으니?]
“그, 그건…”
당황한 아들이 살짝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이럴 수가! 이렇게 간단한 질문을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다니 역시 그 아이를 엄마보다 더 좋아하는모양이구나?]
“아니야, 엄마!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뿐이야.”
[흑흑. 어흐흐흑. 정말이니? 훌쩍.]
돌로레스는 두 눈을 가리고 꺼이꺼이 우는 시늉을 하다가 슬그머니 손가락사이를 벌리면서 그렇게 되물어봤다.
“정말이야. 폴리보다 엄마가 천배, 만배, 훨씬 더 좋아!!”
[휴우,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나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한단다. 아들. 그러니까 숨기지 말고 네가 입은 상처를 보여줄 수 있겠지?]
“그, 그건…”
그때까지 자신의 손등을 뒷짐으로 숨기고 있던 데일이 노골적으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슬그머니 폴리를 곁눈질하자 간절한 표정으로 제발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결국에는 돌로레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등을 내밀어서 화면너머로 확인시켜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현기증이 난다는 것처럼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면서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아아아아- 세상에! 어떻게이런 일이. 우리 가문의 후계자에게 이렇게 흉측한 상처가 나버리다니. 어흐흐흑!]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데일의 말처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눈에 띄지도 않는조그마한 생채기에 불과했지만, 돌로레스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다급하게 화면 너머에 있는 치료사를 호출했다.
[크라테스 경! 거기에 있죠? 크라테스 경!!]
“부르셨습니까? 마님.”
[제발 우리 아들의 상처를 보살펴주세요. 흉이 지지는 않겠죠? 아니, 나을 수는 있을까요? 선생님.]
“으음?! 이 상처는!! 끄으으응. 허허허. 이것 참, 제가 치료사 노릇을 해온 지도 3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부상은 처음이로군요. 허허허허. 후계자님에게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네???”
당사자의 눈동자가 동그래졌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주거니받거니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아아아! 역시나…어쩌면 좋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님. 이 크라테스. 일천한 솜씨로나마 신명을 당해서 천년 가문 후계자님의 상처를 씻은 듯이 말끔하게 고쳐드릴 것을맹세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크라테스 경.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드릴테니 우리 아들을 구해주세요.]
“어, 엄마….”
주책스럽기 이를 데가 없는 팔불출 느낌이 다분한 촌극이 펼쳐지자 데일은 말도 못 할 정도로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하지만 크라테스는 조금도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상처를 치료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단순하게 알콜 솜으로 환부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는 것뿐이었지만, 마치 환자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수술을 집도하는 것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구슬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쓸데없이 진지한 분위기 때문에 데일조차 자신이 정말로 커다란 부상을 당한 게 아닐까 덜컥 겁을 집어 먹어버렸을 정도였다.
“휴우,성공했습니다. 마님.”
[정말로 감사드려요. 크라테스 경.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흐으으윽.]
“과찬이십니다. 천년 가문 후계자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좋아요, 그럼. 이제는 볼일이 끝났으니까 물러서도록 하세요.]
“네, 마님!”
손가락을 튕겨서 치료사를 자신의 시야에서 치워버린 돌로레스는 턱을 괴며 자몽 주스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데일을 바라보면서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흉터가 남지 않는다니 정말로 다행이로구나. 아들아.]
“응, 엄마.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래, 그래. 그러면 이제 그 쓸모없는 아이를 죽여버리렴.]
순간적으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할 수밖에없었다.
“마님!!!!”
절규하는 폴리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현실 세계로 끌려 나오는 데일.
[어우, 시끄러워. 완전히 시조새가 따로 없네. 무슨 여자아이가 황소 달구지처럼 시끄럽다니? 누가 저 빌어먹을 년의 입을 당장 막아버리렴.]
“마님! 제발 용서해주세요, 마님!! 마님이이읍! 으으으읍, 읍읍, 으으으읍!!”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하인들이 다가와서 신병을 구속하고 재갈을 물려버리는 바람에 바닥에 엎드려서 발버둥밖에 칠 수가 없었다.
[후후후후. 정말로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 한 마리가 따로 없구나. 무엇을 망설이고 있니? 데일, 어서 저 빌어먹을 년을 네 손으로 죽여버리렴.]
“하, 하지만 엄마…”
[왜 하지만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걸까?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
부르르르르-
데일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격렬하게 떨렸다.
“그,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는 침을 삼키며 용기를 내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 대단한 상처도 아니고 폴리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으면 더 크게 다쳤을 거야. 게다가 나한테 항상 친절하게 대해줬어. 매일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주고 잠이 오지 않으면곁에서 노래도 불러줬단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모두 겁많은 아이의 상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너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시키는 대로 할게.”
[후후후후.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요즘 월환쌍극의 초식을 열심히 수련한다고 했지? 귀영수라고 했나? 엄마에게 성취를 보여주도록 하렴.]
“…알았어.”
마치 꼭두각시가움직이는 것처럼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자신의 시녀에게 다가가는 데일.
하인들에게 양팔을 붙잡혀서 다시 한번 무릎이 꿇려진 그녀는 아이와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미안해, 폴리. 네 말대로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렇게 위험한 장난은 하지 않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