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짧은 H이벤트 포함)축제가 아니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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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40분.
느긋하게 볼일을마친 리한은 일행과 함께 당당하게 카밀라의 개인실을 걸어 나왔다.
때마침 분주하게 하선 준비를 하고있던 T-7 에이전트들.
요주의 대상이었던 그를 자신들의 구역에서 발견하게 되자 다급하게 비상소집을 걸었다.
삐이이이익!
두두두두두두!
아니나 다를까 스미스를 필두로 하는 검은 정장의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순식간에 일행을 둘러싸 버리고 말았다.
“네놈이 여기를 어떻게…”
“일개 에이전트 나부랭이가 건방지게 나불거리는군.”
꿈틀.
“뭐라고?”
“그만, 그만!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에이전트 스미스.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님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제정신입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허겁지겁 사이에 끼어든 카밀라가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닥치세요!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무례한 태도도 소임 상 눈감아 드렸지만, 이제부터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직속 상관은 누구입니까?”
“뭣?!”
“대답하세요. 에이전트 스미스. 당신의 직속 상관은 누구입니까?”
“카, 카밀라님이십니다.”
매섭게 다그치자 마지못해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알아들었다면 후계자님에게 정식으로 사과드리세요. 어서!”
“…죄송합니다. 후계자님.”
눈썹을씰룩인 스미스가 두꺼운 입술을 깨물며 고분고분 허리를 숙였지만, 리한은 코웃음을 치면서 다가와 그의 턱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마주쳤다.
“말로만 하는 사과는진정성이 없지.”
“무슨…윽?!”
뻑!
스미스의 시야에서 불똥이 튀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리며 부어오르는 자신의 뺨.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서 턱을 움직여보자 덜그럭거리는소리와 함께 부러진 어금니가 씹혀버리고 말았다.
“퉤.”
그는 그것을 핏덩어리와 함께 뱉어내었다.
“이번에는 몰랐으니까 이 정도로 용서해주마. 하지만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다시는 나에게 기어오르지 마라.”
“스미스 요원.”
“며, 명심하겠습니다.”
눈을 깔면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잘 있어라. 카밀라. 조만간에 다시 보도록 하지.”
“히끅! 네, 네! 알겠습니다. 후계자님. 부디 건승하시어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허리를 깊이 숙이는 정중한 배웅을 받은 리한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요원들을 매섭게 째려보자, 마지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좌우로 흩어지면서 탄탄대로가 열렸다.
가벼운 본보기를 보여주고 난 후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기선 제압.
아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T-7의 요원들에게 상하 관계를 완벽하게 각인시킨 그는 정복자처럼 당당한 보무로 일행과 함께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직후.
긴장된 분위기가 풀어지기가 무섭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카밀라가 허둥거리면서 스미스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했어요. 스미스씨! 뺨은 괜찮으세요?”
“그래. 별 것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그런데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째서 저 녀석이 네 개인실에서 으스대며 나오는 거냐?”
“그, 그게 사실은…저희가 만든 시나리오에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져서…”
“대대적인 수정이라니? 설마 플랜 C를 말하는 것은아니겠지?”
“그, 그건 아니에요…”
이 대답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또 녀석을 이 파벌의 수장으로 추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자는 그 터무니없는 계획을 추진하는 줄알았지.”
“…”
“뭐지? 왜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냐?”
“사실은 그게…”
카밀라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자 붉은 피부의 스미스가 흙빛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뭐??? 녀석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모자라서 아예 이 나라의 국왕으로 만들겠다고? 그건 플랜 C보다 한술 더 뜨겠다는 소리가 아니냐!!”
“쉬이이이잇! 목소리를 낮추세요. 스미스씨. 아무리 여기에 우리밖에 없다고 해도 그렇게 공공연하게 떠들어댈 이야기는 아니라고요!”
“아, 알았다. 하지만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도 유분수지 녀석의 어디를 믿고…”
“참고로 이 계획은 후계자님이 엠프리스를 독대하고 난 후에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작전입니다.”
“…뭐라고??”
주르르르륵-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겹쳐버리자, 스미스가 착용하고 있던 선글라스가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그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바깥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내 버리고 말았다.
“어머? 의외로 인상이 선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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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르르르륵!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친 3단 변신 합체 로봇은 지상 최대 마술쇼의 대미를 장식하고 불길 속에 사그라지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9시 50분.
무대 주변은 인산인해.
처음에는 단순히 무료함을 참지 못해서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4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장시간의 공연에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공연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른 함선들까지 접근해서 도개교를 연결해버릴 정도였다.
“아무래도 보통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숙연한 분위기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리고 있는 사람들.
그 순간.
화염 속에 타들어 가고 있던 3단 변신 합체로봇이 뼈대만 남은 앙상한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마지막 인사를 해왔다.
[나중에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미리 말해 두겠습니다.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여러분!]
그러자 봇물이터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꺼이꺼이 울면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안 돼에에! 제발 일어나. 3단 변신 합체 로봇!! 이런 게 마지막이라니 싫어어어어!!!]
[크흐흐흑. 내 생애 최고의 마술쇼였네. 아니,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공연이라고 해야 마땅하겠군. 브라보!!]
[으으으윽. 장인이 만들어낸 물건에는 혼이 들어간다고 하더니…그는 비록 감정이 없는 골렘에 불과했지만 마지막까지 진정한 엔터테인먼트였어요. 훌쩍.]
[앵콜, 앵콜, 앵콜!!! 꺼흐흐흑. 어째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인가. 다시 한번 일어서서 빛나는 무대를 보여주기를 바라네. 그렇게 해준다면 내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어! 그러니까 제발…어흐흐흐흑!]
“…”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 고양 상태에 일행들은 모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3단 변신 합체 로봇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활약을 펼친 모양인데요? 주인님.”
“당연하지. 녀석의 활약 덕분에 T-7의 보안 체계도허술해지지 않았더냐? 그리고 최후의 변신이라는 것은 원래 이런 법이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 열혈 로봇 서사의 국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그런 건가요?”
이번에는 카트리나에도 살짝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이었는지 그렇게 되물어 보았다.
“이 명품을 만들어낸 제작자는 남자의 로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어렴풋이 생각하기는 했지.”
“하지만 아깝지 않으세요? 두 번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저런 훌륭한 코스튬을 이렇게 일회용으로 소비해 버리다니…”
“도구는 도구답게 사용하고 사라질 때가 가장 행복한 거야. 쓸데없이 애지중지하며 창고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썩어가게 하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낫지. 녀석은 자신의 서사를 훌륭하게 마쳤다. 그리고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애도해주고 있지. 이보다 더 행복한 결말이 어디에 있다는 거냐?”
“…지금 울고 계시는 건가요? 주인님.”
“아니, 비가 내리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주인을 커다란 가슴에 품으며 위로해줬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루시는 1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대체 이것들은 지금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거야? 햇빛이 이렇게 쨍쨍한데…”
잠시 후.
복받쳐 오르는 아까움을 가까스로 추스르는 데 성공한 리한은 다시 냉철한 원래 모습으로 들어와서 그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3단 변신 합체 로봇은 이제 없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 불씨가되어서 영원히 살아갈 거야. 그의 거룩한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여기에서 걸음을 늦추지는 않겠다. 아스트라세 가문의 전함을 호출하고 모든 인원을 소집하도록 해라. 우리는 이제 제니아로 떠날 것이다!!”
“존명!!!”
퍼퍼퍼퍼펑!
하늘로 신호탄을 쏘아올리는것과 동시에 폭스 하운드가 일제히 각기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을 확인한 리한은, 선수로 향해서 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강의 모습을 망막에 새겼다.
이제 몇 시간만지나고 나면 이 강은 두개의 지류로 나누어지게 된다.
하나는 왕도 로즈풀로 직행하는 뱃놀이의 최종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또 하나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제니아의 푸른 대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갈라지는 길은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는 법.
승리를 위한 글로리 로드로 다가서면서 리한은 점점 욱씬거리는 강동가 강해지는 흉터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로 중얼거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애쉬. 네 녀석이 그토록 매달리고 있는알량한 평온 따위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산산이 부서지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