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짧은 H이벤트 포함)축제가 아니라...(4)
만약에 리카노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었다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절치부심했을 것이다.
왜냐면 식민지 경쟁은 자기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파벌 전체에서 지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렸다.
“리카노가 측근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이렇게 떠들어댔다고 하더군. 자신이 저지른 단 하나의 실수는 처음부터 제국파를 선택하지 않은 거라고 말이야.”
“그것도 사라님이 가르쳐주신 건가요?”
“그래. 그녀 덕분에 공화국파의 내부 사정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었지. 북방 3가의 결속력이라는 게 얼마나 얄팍한지도 알았고 말이야.”
리한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하자 카밀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리카노 방백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정말로 제국파로 넘어가겠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술에 취해서 떠들어대는 헛소리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너도 말하지 않았느냐? 거기에 나를 향한 질투심이 더해진다면 충분한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이야. 소위 말하는 열등감이 폭발한다는 거지.”
“…”
그의 말대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그문트도 마찬가지야. 녀석도 겉으로는 천년 가문의 후계자를 환영한다느니 어쩌느니 떠들어댔지만, 리카노와 마찬가지로 신진 세력이 떠오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도량은 없지. 하물며 녀석은 이 파벌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하나 있지 않느냐?”
“이번에도 역시 사라…크레이그 방백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카밀라는 그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런디의 배신으로 잠시 내부 단속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겠지만 녀석은 텔파이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버리지 못할 거야.”
지그문트는 사라가 파벌에 들어오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했다.
단순하게 천한 출신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크레이그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가 텔파이프 정복에 성공한다면 로체스 가문은 델링거 왕실을 넘어서는 독보적인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야심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공화국파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은 우리 파벌의 힘이 막강하니까 함부로 이탈하거나 야욕을 드러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리카노가 전향해버린다면? 방백의 숫자로만 보면 4대 2. 아니 자신까지 전향한다면 3대 3이 되어버리는거다. 그마저 하나는 자신이 흡수해버릴 테니까 오히려 2대 4로 역전한다는 계산도 나오고 말이야.”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지만 카밀라는 팔짱을 끼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전부 억지스러운 가정에 불과해요.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아예 캐시 방백도 배신한다고 그러시죠?”
“아니.억지는 네가 부리고 있겠지.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녀는 공화국파에서 유일하게왕세자와 베리우스 후작 양쪽 모두와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게다가 왕국 최강의 북방군이 그녀의 영지 지척에 있어. 파벌에 소속되어 있는 방백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배신하지 않을, 아니. 하고 싶어도 못 할 입장이라는 말이지.”
리한은 그렇게 반론하면서 그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찰싹!
“꺄흑!”
“그리고 계속 경고하지만 쓸데없이 본질을 흐리지 마라. 엉덩이가 두 배로부풀어 오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으으으으으.”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빨개진 둔부를 어루만졌다.
“좋아요! 백번 양보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쳐도 전부 후계자님이 개입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꼬여버린 거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세요?”
“책임감? 하하하하하! 지난 수백 년 동안에 남의 나라에 내정 간섭을 해온 주제에 잘도 적반하장으로 떠들어 대는구나. 애초에 이 나라 왕실을 형편없이 약화시켜버린 것은 너희 앵커리지 공화국의 내정 간섭이 원인이 아니냐?”
“무, 무슨 소리를 하윽?!”
그가 다시 한번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지 마라. 너희는 항상 그랬지. 겉으로는 자유진영의 리더요,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행세하면서도 정말로 다른 나라가 잘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어. 오직 분열과 혼란으로 약체화시켜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괴뢰상태가 되는 것만을 바랬지. 도대체 이 나라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인재들을 얼마나 제거해왔지?”
“아니에요! 저희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대의명분을 위해서…”
“그만! 예쁜 얼굴, 예쁜 입술로 말도 안 되는 더러운 변명을 지껄이지 마라. 너희의 정책은 실패했어. 이나라의 꼬라지를 봐라! 중앙의 기득권은 타락했고 지방의 군벌들이 이렇게 제멋대로 설쳐대고 있지 않느냐?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나 때문이라고? 이 나라의 귀족들이 한심해져 버린 것은 모조리 너희 책임이 아니냐!!”
“…”
신랄한 비판에 카밀라는 입을 다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를 제국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쓸모없는 기득권과 지방 군벌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단 하나의 절대자에게 복종하는 완벽한 중앙집권 국가로 탈바꿈하는 거야. 플랜 A? 플랜 B? 그 따위 망상은 모조리 집어치워라. 너희가 고를 수 있는 계획과 파트너는 오직 하나밖에 없어. 나머지 가능성은 전부 지워버려라!!”
“!!!”
완전히 본색을 드러낸 리한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호통을 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꼬리를 말아버리고 말았다.
부르르르
지금까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두려움의 체화.
리한이 오팔 왕국 전체를 자신이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공포와 전율로 떨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지만, 카트리나는 오히려 이런 그의 모습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핥으며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마왕을 바라보는 것처럼.
꿀꺽.
“마, 만약에 저희가 후계자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신사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변사체로 만들어버리는 수밖에 없지. 애초에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지를 잊어버리지 마라. 나는 아직 이 파벌을 제국에게 팔아넘길 수 있어. 너희를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를 고마워하도록 해라.”
부르르르르-
살짝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했지만 리한이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만약에 지금 상태의 그가 정말로 독하게 마음을 먹어버리면 두 방백이 이탈해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피해를 앵커리지 공화국에게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T-7자체를 해체해버릴 수도 있는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존재.
지금 그를 거스르는 것은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아, 알겠습니다. 후계자님이 원하시는 플랜은 저희 조직의 최우선 방침으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하게 말로 하는 약속만으로는 부족하지. 너희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데 말이야.”
“그러면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리한은 손가락으로 카밀라를 가리켜 보였다.
“일단은 너야. 얌전하게 내 여자가 되도록 해라. 피임도 용서할 수 없어. 얌전하게 내 아이를 임신해라.”
화끈!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달아올랐다.
“그,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하윽?!”
“거절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니까♡”
철썩, 철써철썩, 철썩철썩철썩철썩!
“하지만 저도 마음의 준비라는 게…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하으으으윽♡”
“싫어. 내 여자가 되었으니까 내가 안고 싶을 때 안을 거야. 그리고 너도 자발적으로 기쁘게 안겨 오도록 해라. 이미 쾌락을 알아버린 마당에 언제까지 내숭을 떨 거냐?”
“으으으으으.”
뺨을 부풀리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낑낑거렸다.
“둘째. 너희 조직의 수장인 임프레스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을 넘기도록 해라.”
“?!! 그, 그분의 존재를 어떻게…”
“하하하하! 필름이 조금 끊어지기는 했던 모양이구나. 술에 취해서 네가 네 입으로 직접 말해줬는데 말이야.”
“정말로 건방진 암캐로군요. 감히 내가 했던 질문을 잊어버리다니…”
“히이이익! 죄, 죄송합니다. 여왕님!!”
“…”
여전히 카트리나를 더 두려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리한은 기분이 살짝 언짢아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한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야. 사실상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똑바로 들어라.”
꿀꺽.
“아, 알겠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카밀라도 긴장하면서 주의 깊게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리한의 마지막 요구 사항을 들은 그녀의 눈동자가 지금까지 하고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리고 말았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그럼 농담이겠느냐?”
“하, 하지만 그건…”
“비용은 걱정하지 마라. 누구 덕분에 아주 부자가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임프레스와 연락할 수단을 넘겨준다면 그녀하고 직접 담판을 짓도록 하지.”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입맛을 다셧다.
“차양 너머의 여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굉장히 기대되기도 하고 말이야. 후후후후후후후. 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부르르르르-
행복 100%의 즐거운(?)웃음소리에 카트리나를 제외한 모든 여성이 공포에 질려서 움츠러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