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0화 〉(H이벤트)예상하지 못한 성과(3) (180/429)



〈 180화 〉(H이벤트)예상하지 못한 성과(3)

“그런데 이실라가 들어가기에는 상자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


멈칫


기대감으로 잔뜩 들떠 있었던 그녀가 순간적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몸을 전부 집어넣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체만 적당히 들어가시면 뚜껑이 체형에 맞춰서 자동으로 형태를 맞출 거예요.”

“그런가요?”

“뭐야? 히끅. 고향에서 유행하는 물건이라더니. 왜 이렇게 헤매는 거래? 히끅~”

“너, 너무 오랜만이라서 잠시 헤맸을 뿐이라고요! 요령만 알면 저도 이런 문명의 이기 정도는 간단하게 다룰 수 있거든요?”


“아니. 요령을 모른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인데…윽?!”

퍽!

티오가 눈치 없는 소리를 하자 카트리나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복부를 때려서 입을 다물어버리게 했다.

“호호호호! 오랜만이니까 그러실 수도 있죠. 호갱, 아니, 이실라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네, 인간으로 치면 무릎 위까지만 넣어준다는 느낌으로요. 그리고 양손을 뒤로 쭉 빼서 상자의 턱 위에 손목을 걸쳐 주세요. 아주 좋아요. 베리 나이스!!”

“어, 저기…자세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요??”


“이제 닫겠습니다♡”

“자, 잠깐만요?잠깐!!”

덜컹!

푸슈우우우욱-!!


철그럭- 철그럭-

다급한 외침을 무시하고 상자를 닫아버리자, 뚜껑의 접촉 라인이 이실라의 신체 굴곡을 따라서 자동으로 맞춰지더니 순식간에 자물쇠를 걸어서 그대로 밀봉해버리고 말았다.


바깥으로 양손과 꼬리만 빠져나와 있는 그녀.

인간으로 치면 벽에 손발이 끼어버린 것처럼 옴짝달싹도 수가 없는 자세로 묶여버리고 말았다.

“후후후후후. 그러면 우리는 우리대로 다음 우승자를 선출하기 위한 거짓말쟁이(다우트)게임을 시작해 볼까요?”


“히끅! 히히히히. 조아써~!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1등을 차지할 거라고~!”


“네, 카밀라님.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시기를 기원할게요. 아, 슬슬 술기운이 떨어지시는 것 같은데 제가 지금 만든 오리지날 폭탄주 블렌드. 알콜 도수 85%의 칵테일을 선물해 드릴게요.”

“오오오오! 눈치가 빠른데. 하하하하하!! 꿀꺽꿀꺽. 히끅! 조아써~ 다, 달려보자꼬오~!”


부르르르르-

‘악마다 이년.’


‘어떻게 엘프의 탈을 쓰고서 이렇게 사악할 수가 있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주정뱅이의 입에 술을 쏟아붓는 모습에 자매들은 공포에 질려서 몸서리를 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되는 거짓말쟁이 게임.


“어뤠에에에? 방금 마신  때문에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데~~??”


“후후후후. 천장이 아니라 실링팬이랍니다. 뭐가 뭔지 구분하지 못하실 정도로 취해버렸군요♡”

“아하, 그렇구나아아. 아앗~ 카드를 떨어트려버렸쪄. 히끅! 어쩌면 좋아??”

“제가 주워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루시 언니. 지금 내시는 카드에 미리 다우트를 선언하도록 할게요. 지금 어디에서 몰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시려고 수작질을 부리시는 거예요?”

“아, 아니야! 나는 그냥 게임은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정말, 밝히시기는♡ 이런 음란한 암퇘지 같으니라고.”


“커헉?!”


다른 누구도 아닌 카트리나에게 들은 소리였기에 루시는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고 그대로 침몰해버리고 말았다.


“우으으으응. 뭐를 내야 하지?”

“저 같으면 아무거나 내겠어요. 어차피 누구도 다우트를 선언하지 못할 텐데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 없고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조아써~ 히끅! 헤헤헤. 냈다! 아우우웅. 그런데…너무 취해서 어지러워.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않아서 술기운을 조금 몰아내야 할 것 같은데…이상해.어째서 내력이 모이지 않는 걸까아?”

“그거야 방금 드신 폭탄주에산공독과 미약을 풀어 넣었으니까요. 정말, 술기운을 몰아내시려고 하다니. 반칙이잖아요. 요런 깍쟁이♡”

이제는속일 생각도 없이 대놓고 말하고 있었지만 카밀라는 그녀의 애교에 오히려 멋쩍은 듯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렸다.

“헤헤헤헤. 미안, 미안. 그런데…히끅! 아까 전부터 이실라의 꼬리가정신 사납게 왔다갔다하는데. 히히히히. 이상해에~ 도대체  저러는 걸까아아??”


쿵쿵! 쿵쿵쿵쿵! 쿵쿵쿵!!!

쿵쿵쿵쿵!

그녀의 말대로 상자 속에서 튀어나온 라미아의 꼬리는 채찍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벽과 바닥을 맹렬하게 두드려대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열심히 태그를 하면서 바깥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

그야말로 절규에 가까운 몸부림이었기때문에 엄청난 비명을 질러대고 있을 게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방음 성능을 자랑하면서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없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평범하게 처녀를 잃어버리고 있을 뿐이거든요.”

“아아앙. 그렇쿠나아~ 응? 처, 처녀??”

이번에는 주정뱅이도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빨리 마지막 카드를 내서 게임을 끝내주세요. 다음에는 카밀라님께서 처녀를 잃어버릴 차례니까 미리 기대해 주시고요♡”


“으, 응. 알았져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잔뜩 취한 카밀라는 이미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사고능력이마비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결국, 생각하는 포기해버린 그녀는 마지막 카드를 털어버리는것으로 절대로 이겨서는 안 되는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

시간을 조금 되돌려서 상자 안.

“으으으응. 아무리 힘을 써도 손과 하반신을 꼼짝할 수가 없네요. 그렇다고 힘을 줘서 부숴버렸다는 다음 사람이 이용하지 못할 텐데.”

카트리나의 농간으로 꼼짝하지 못하게 묶여버린 이실라는 곤란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안이 너무 어두운 것 같은데 조명이라도 있었으면…”

쿵!

이런 말을 하기가 무섭게 천장에 불이 밝혀지면서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리한이 그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맛?! 내 취향의 멋진 남자.”


“안녕하십니까? 마드모아젤. 제 이름은 리한 폰 아슈킬이라고 합니다.”


“아, 네. 정중한 인사에 감사드려요. 저는 이실라라고 합니…아니, 잠시만요? 레이디스 룸에 왜 남성분께서 들어와 있으신 거죠? 게다가 리한님이라면…”

“후후후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속은 레이디스 룸과는 별개의 공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저는 천년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라 상자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존재. 사랑(물리)의 요정일 뿐이니까요.”


“어머! 그렇다면 납득이 가네요…가 아니라, 지금 대체 무슨 얼척없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어서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비명을 지르겠습니다.”

“쳇. 간단하게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군.”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드모아젤. 하지만 부디 그런 행동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뭐처럼 로맨틱한 순간을 망쳐버리면 안 되잖습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한 발자국 이동해서 앞으로 다가왔다.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다, 다가오지 마세요! 왜 이렇게 가까이 오시는 거예요?”

“내부가 좁아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드모아젤. 그나저나 대단히 아름다우시군요. 구름처럼 뭉실뭉실한 머리카락이며 살구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그리고 달걀형의 얼굴에 갸름한 턱선까지.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가 빚어낸 매력의 산물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따, 딱히 칭찬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흥!”


새침하게 외치며 고개를 돌렸지만 딱히 칭찬을 들은 것이 싫지는 않았는지 얼굴이 살짝 붉은색으로 상기가 되었다.

“아아- 저를 외면하시다니 가슴이 찢어져 버리는 것만 같군요.  아름다운 녹색의 강에 연회의 장소에서, 은막의 축복에 휩싸여 하늘에서 내려온 별과 같은 운명을 마주했것만…사랑스럽고도 무정한 이여. 어찌하여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거부한단 말인가?”

리한이 갑작스럽게 가성을 내면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앗!  대사는 베르디의 기사가 호수의 소녀에게 속삭여주는 전설의…”

“후후후후.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고전 문학은 읽으면 읽을수록 풍취가 있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어머!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으시네요!! 사실은 저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작품인데 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모르더라고요. 하여간에 이상한 일레트? 일렉트로? 같은 음악만 주구장창 불러대지를 않나…”

‘효과 만점이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실라는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참고로 리한은 고전 문학을 읽어본 적도 없고 취미도 아니었다.


다만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시절에 교과서에 나온 대목을 떠올려서 적당히 말했을 뿐.

그녀가 고전 문학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카트리나와몰래 연락을 취해서 알아낸 핫 리딩(hot reading)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

리한은 신나서 떠들어대는 그녀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슬그머니 턱을 붙잡으면서 뜨거운 눈동자로 시선을 마주쳤다.

“저도 동감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딱 어울리는 대사가 아닙니까?”


“엣, 아, 아니. 그, 그럴지도 모르지만…”

“운명을 거부하지 마시오. 호수의 소녀여.”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입술을 포개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