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H이벤트)개와 늑대와 사간(10)
하지만 말투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얼굴 자체는 본인이 주장하는 나이가 어색하지 않았다.
펑퍼짐하게 느껴질 정도로 풍성하게 웨이브를 그리며 흘러 내려오는 연보라색의 머리카락.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호한 실눈을 하는 있었지만, 루시의 분노에 당황하면서도 미소를 잃어버리지 않고 커다란 가슴을 끌어안는 모습에서 묘하게 연상의 매력이 느껴져 왔다.
뾰족한 귀와 뺨 주변에 돋아나 있는 비늘. 그리고 뱀의 하반신.
스르르르륵-
하면서 끄트머리가 갈라진 새빨간 혓바닥을 빠르게 내밀었다가 거둬들이는 그녀.
하지만 리한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여성의 상반신과 뱀의 하반신이 만나는 경계가, 얇은 티팬티 한 장으로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일 중요한 부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니. 이런 부조리(?)한!!’
분노한 그는 카트리나의 배에 고속으로 글자를 새겨나갔다.
[저 팬티 아래의 내용물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인해라, 확인해라, 확인해라, 확인해라, 확인해라.]
부르르르르-
“하으으읏?! 아잉♡ 주인님도 참. 아무리 궁금하셔도 그렇지. 어떻게 초면에 그런 것을…응키야앗?! 아, 알겠습니다. 물어볼게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응흐으읏?!”
“???”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그녀를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크흠! 그나저나 이실라님은 후작 각하께서 선단 호위를 위해서 고용한 용병이 아니신가요? 예의 사건으로 라미아 여러분 전체가 근신 처분을 받은 줄 알았는데…”
예의 사건이라는 박카이 때문에 라미아 용병 전체가 무력화되었던 일을 뜻했다.
덕분에 베리우스는 물론이고 공화국파 귀족 전체가 분노해서 그녀들을 모조리 처분해야 한다고 날뛰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선처가 있었다.
“원래는 그랬는데 루크 장군님께서 용서해주셨습니다. 비록 한순간이라고는 해도 선단의 수중 호위가 무력화된 것은 저희의 잘못이지만, 이종족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용병을 기용한 것은 지휘관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상황 자체가 워낙에 특별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불문에 부쳐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영감…아니, 장군님께서 현명하게 결정을 내리셨군요.”
“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희는후회하지 않습니다. 비록 가짜였다고는 해도 생명의 어머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기쁨과 영광에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이 발언은 살짝 소름이 돋는 내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냐면 넥타르의 습격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라미아 용병 전체가 박카이를 도와서 적으로 돌아섰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가짜가 아니라 진짜 언다인이었다면 지금쯤 그녀들 모두가 뒤를 쫓아서 호위를 이탈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실라님. 지금 당장 팬티를 벗어주세요.”
“…네?”
예상하지 못한 요구에 그녀는 잠시 멈칫하면서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성기가 어떤 형태로 되어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뱀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정체를 밝혀주세요!!”
“야. 갑자기 너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취했냐??”
“언니는 잠깐 빠져있어요.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란 말입니다!!”
“뭐???”
루시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카트리나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에이. 역시 유행에 뒤처지셨네요. 요즘 여자 모임은 나체 파티가 기본이라고요. 쓸데없는 치장과 허례허식이 가득한 파자마 파티 따위로는 이제는 우정을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 말입니다! 여윽시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태어난 모습이 제격이라고 할 수가 있죠!!”
“유행?! 시, 시대의 흐름?!! 화, 확실히 듣고 보니까 설득력이 있는 말씀이로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특정한 단언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실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팬티 끈을 풀려고 했지만 다시 한번 자매가 훼방을 놓았다.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그리고 너도 동작 그만. 카밀라! 어째서 너까지 벗으려려고 하는 건데???”
“히끅! 시져시져~ 나도 우정 할래~~그리고 답답해~~”
“이런주정뱅이가!!”
앙탈을 부리면서 훌렁훌렁 벗어던지려고 하자 허둥지둥 달려가서 급하게 뜯어말렸다.
그야말로 올해의 어머니라고 불려도 될만한 자상한 행동.
하지만 리한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루시 녀석이 하나하나 훼방을 놓는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쯤에서 계획을 다음 단계로 이행시킨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트리나에게 신호를 보내자 이번에는 그녀가 커다란 가슴을 흔들어 대면서 앙탈을 부렸다.
[아이이이잉♡ 벌써 제 차례가 끝나는 거예요? 시져시져~ 주인님의 물건은 제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허리를 흔들어 사정을 재촉했지만 리한은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위로해 주었다.
[하라면 해라. 빌어먹을 암퇘지.]
[너무해! 하지만 그런 점이 좋아♡]
****
잠시 후.
술잔이 오가며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자,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서 평범한 미라 복장으로 갈아입은 카트리나는 커다란 수레를 끌며 레이디스 룸으로 돌아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커다란 보물상자.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사이즈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주목이 쏠렸다.
“이게 뭐야?”
눈이 반쯤 풀려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카밀라.
“술자리 게임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포상이에요♡”
“포상?”
“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상품이 들어있으니까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진짜로? 와이~ 뭘까나, 뭘까나??”
“후후후후. 보물상자라니 풍취가 있군요.”
“뭐가 수상한데…”
“아무런 트릭도 속임수도 없습니다. 언니. 의심스러우면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흠, 아니. 됐어. 설마 아니겠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루시는피식하면서 웃어넘겼지만, 거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아챈 티오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은 설마…]
[알아챘으면 닥치고 계세요.]
[으으으으으으.]
예상했던 대로 그것은 3단 변신 합체 로봇의 2번째 변형이었다.
이름하여 미믹 폼.
원래는 던전을 탐험하는 모험자들이 절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몬스터지만, 이 물건은 장인이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해서 재탄생시킨 획기적인 어덜트 코스튬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열어봐도 돼??”
“아쉽지만 그렇게는 안 돼요. 상자를 개봉할 권리는 승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니까요.”
“에에에에- 치사해, 치사해. 좋은 것을 혼자서 독차지하는 법이 어디에 있어??”
“후후후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품은 모든 사람이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빨리 열고 싶으면 게임에서 승리하시면 됩니다.”
“무슨 게임을 하려고 그러는데?”
루시가 흥미를 보이면서 물어봤다.
“간단하게 술자리 게임이나 카드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좋은 생각이라도있으세요?”
“그래? 그러면 크툴루 죽음마저 죽을지도?나 디 아더스: 세븐 샌즈 같은게임은 어때? 아니면 입문자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안티쿠 같은 게임도 일단은 가지고 있는데…”
“좋아요. 일단은 가볍게 마피아 게임으로 분위기를 띄우죠. 하다가 질리면 포커나 가지고 놀고요.”
“이예이~~마피아 게임이다!”
“…쳇.”
슬그머니 자신의 마이너한 취향을 커밍아웃했다가 상처를 입은 루시는 구석에 쪼그려서 땅바닥에 원을 그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첫 번째 마피아 게임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하자 대번에 의기양양해졌다.
“하하하하하하! 봤느냐? 나의 실력을…약하군. 인간들이여 이 도시는 우리 뱀파이어 패밀리들이 지배하겠노라!!”
“이럴 수가. 우리의 공동체가 저런 사악한 흡혈귀 마피아 따위에게 무너지다니…”
“이게 다 카밀라 때문이잖아. 경찰이 술에 취해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다니면 어떻게 해?”
“히끅! 시, 시끄러워요! 국가가 있어야 비로소 국민이 있는 거라고요! 감히 국가의 권력에 토를 달다니 체포에요, 체포! 게다가 책임 소재를 따지면 의사가 제일 문제였다고요. 치료비를 그렇게 부당하게 물리다니 양심을 어디에 팔아먹은 거예요??”
“네? 하, 하지만 카트리나님께서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역시 네년이 배후에 있었냐?!”
“후후후후.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언니. 저는 단지 부당한 폭력에 희생당한 선량한 시민일 뿐이었는데요?”
“웃기고 있네. 세상에서 선량하다는 말하고 제일 거리가 먼 년이…”
배신과 음모,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다이나믹한 마피아 게임이 아닐 수가 없었다.
“크흠, 크흠. 어쨌든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은 나 혼자니까 보물상자는 먼저 개봉하겠어. 불만은 없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여성이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를 궁금해하는 가운데 루시가 자물쇠를 열자 끼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뚜껑이 개봉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
“뭐야?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