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H이벤트)개와 늑대와 사간(9)
빰빠빰바라바라밤~!
94점.
[wow~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고득점과 함께 노래방 기계에서 환호성이쏟아져 나오자 루시는 땀에 젖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의기양양하게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속살이 비치는 새하얀 튜닉에 어깨에는 숄을 거쳐서 사막의 여왕처럼 분장하고 있는 그녀.
“후후후. 내가 조금만 솜씨를 발휘하면 이 정도라고.”
“이예이~! 여왕 언니 최고!! 한곡 더~ 한곡 더~ 한곡 더~!”
멋진 노래에 흥분한 카밀라는 하이텐션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어 대었다.
그리고 그녀들과 동석하고 있는 라미아 한 명이 한 박자씩 늦어지는 템포로 템버린을 흔들어 대다가 감탄하면서 박수를 쳤다.
“대단하네요. 이게 바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테, 테크토? 전자 계집 음악인가요?”
“테크토가 아니라 테크노겠지. 이실라. 그리고 요즘 누가 테크노라는 말을 쓴다고 그래? 그냥 일렉트로닉 음악이라고 불러.”
“일렉트로이…? 어휴.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이래서 나이는 먹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 23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애가 뭐라는 거야? 라미아의 평균 수명이 300년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어디서 밑장을 빼려고…”
“라미아가 아니에요. 지금은 귀여운 토끼라구요, 뿅!”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어필하면서 외쳤지만, 상체의 2.5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뱀의 하반신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코스프레였다.
“이예이~! 귀여운 토끼다, 토끼! 잡아먹어 버리겠다. 왕왕~~!!”
“꺄아아아.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
“…”
잔뜩 취해서 인사불성인 사람을 제외하고.
때마침 문을 열고들어온 카트리나가 이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후후. 제가 없어도 다들 재미있게 놀고 계시는군요.”
“오~ 이제 왔…뭐야? 왜 쓸데없이 커다란 인형 의상을 입고 왔어?? 그리고 언니는 어떻게 데리고 왔데???”
“어째서 내가왔다는 사실에 가장 놀라는 건데!!”
티오가 발을 콩콩 구르면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주정뱅이 센서에 걸려들었다.
번쩍!
“뭔가요?! 뭔가요?!! 이 귀여운 아기 늑대님은??? 혹시 하늘에서내려온 선물인가요? 바이어와의 협상에서 대실패하고 상사에게 까이고, 전임자였던 선배님은 저를 암살하려고 하지를 않나, 이제는 측근 보좌관에게까지 업신여겨지는불쌍한 사축을 치유하려고 지상에 강림한 천사? 내 신부?!!”
“뭐, 뭐야. 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것보다 눈이 이상해. 가까이 다가오지 마…히이이익?!”
뒷걸음질을 치면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꺄아아아악♡ 피부가 말랑말랑해. 털도 뽀송뽀송하고 푹신푹신해. 킁킁! 오오오오! 겨드랑이에서 버터 아몬드를 구운 것처럼 좋은 냄새가 나다니!!! 역시 불쌍한 나를 위로해주려고찾아온 연말 보너스가 틀림없어. 이대로 집으로 가지고 갈 거야. 누나가 평생 예뻐해 줄께에~~”
“후후후후. 죄송하지만 공짜로는 안 됩니다. 10대륙 은화입니다. 손님.”
“산다!!”
“팔지 마! 게다가 10대륙 은화라니. 이 맏언니의 가치를 얼마로 생각하는 거야?!”
“오늘의 술값 정도?”
“흠, 괜찮은 거래인 것 같은데?”
“루시, 너까지!!”
자매들의 믿을 수 없는(?)배신에 충격을 받은 티오는 카밀라에게 사로잡혀서 구석구석 핥아지는 굴욕을 당해버리고 말았지만, 의외로 이 모습에 가장 의기소침해진 사람은 라미아인 이실라였다.
“그래요, 뿅. 알고 있었습니다, 뿅. 어차피 저는 포식자의 변덕에 농락당하다가 버려지는 가련한 피식자일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뿅. 하지만 괜찮아요, 뿅. 저에게는 아직 이 더러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허락되는 마약이 남아있으니까요, 뿅. 저는 슬플 때는 오락가락에 맞춰서 학춤을 춘답니다, 뿅.”
“…아까부터 뭐래? 어떻게 말하는 것 하나하나에서 틀딱 냄새가 날 수가 있지? 솔직히 말해. 너 23살 아니지?”
“…”
루시가 추궁하자 그녀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묵비권을 행사해 왔다.
첫 대면부터 상당히 시끌벅적하기는 했지만 테이블에 둘러앉은 여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허물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뭐처럼 가장 파티지만.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고 우리 여자 모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순서대로 정체를 밝히며 마스크를 벗어버리는 것이 어떨…햐윽? 까요? 하아아앗?! 응흐으으읏♡”
부르르르르-
“아니. 딱히 상관은 없는데…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져서 이상한 신음을 내는 거야? 카트리나.”
“오고오오오옷?! 저도 모르게 뜨거운 밤의 열기에 흥분해버려서 그래요. 루시 언니! 흐갸아아앗?! 듀인님 굉장해! 가 아니라, 이렇게 굉장한 밤에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실례가 되는 것이 아닐까응기이이이기?!”
“옳소, 옳소!! 피버 올 나이트. 이예이~~~!!”
카밀라가 하이텐션으로 추임새를 넣어버리자 루시는 굉장히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면서도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끄응. 너희들이 그러고 싶다면 그러시든지…”
“후후후. 저도 찬성이에요. 이렇게 아리따운 동년배 동무들하고 사귈 기회는 좀처럼 흔하지 않으니까요.”
찌릿!
“동년배? 동무??”
“힉?! 동년배가 아니라면…가시나? 아,아니. 머스마??”
이실라가 서둘러서 자신의 발언을 수정하려고 했지만 바꾸면 바꿀수록 촌스러워지는 바람에 의혹의 눈길은 커져가기만 했다.
“좋아요! 그러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군요.”
“잠깐? 나는 아직 찬성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카밀라에게 사로잡혀서 발버둥치는 티오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 설마 반대하시려고요? 맏언니. 흐그으으읏?! (소근)벌써 세 번째 사정이에요. 자궁이 터져버릴 것 같은데 바꾸고 싶으세요?”
“아닙니다!! 자기소개에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충성!!!”
“충성??”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에 눈치가 빠른 다크 엘프가 연거푸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번에도 의심의 단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늘 왜 이래? 다들 어딘가 수상한데…”
“에이, 기분 탓이에요. 언니. 그러면 먼저 솔선해서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실 분~~?”
“저요, 저요, 저요! 제 이름은 카밀라 스틱스라고 합니다. 직업은 공화국 무역공사 에이전트. 아니, 정보기관의 대표? 어라. 어느 쪽이었지. 헤헤헤헤.”
“?!!”
깜빡이를 켜지 않고 정체를 밝혀버리는 바람에 다크 엘프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들썩거렸지만, 카트리나가 잽싸게 허벅지를 움켜잡으면서 동요하지말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던 리한은 쾌재를 불렀다.
‘카밀라가 제대로 취했군.’
나비 가면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벗어버린 그녀는 눈이 반쯤 풀려서 해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가짜라고 보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귀와 꼬리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노출이 되었다.
“카밀라님은 흑견족이셨군요.”
“헤헤헤헤. 알아보시는군요?? 기뻐라~ 아, 근데. 이거 비밀로 해주셔야 하는데에~”
“물론이에요! 여자들의 우정을 가볍게 보지 말아 주세요. 오늘 모임에서 일어난 일은 무덤까지 비밀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이예이~ 우정 만쉐이이이~!!”
“만세!!”
짠!
구령에 맞춰서 다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느슨하고 화기애애했다.
“오오오옷?! 이, 이건 말로만 듣던 악마의 보드카??? 알콜 도수가 무려 80%에 이른다는 전설의…”
“떽! 어린아이가 벌써 술에 관심을 가지면 안 돼요. 무조건 압수!! 아이는 아이답게 과일 쥬스나 마시세요!!”
“무슨 소리야!! 여기에서 내가 제일 어른이라고!!”
티오가 항변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
그리고 자신이 빼앗아서 단숨에 마셔버리는 카밀라.
스트레스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싶었는지 내공을 사용해서 취기를 날려버리려는 기미는 없었고, 딸꾹질까지 하면서 술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것으로 보였다.
아직 연기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어떤 보험이 남아있을지 모르니 섣부르게 행동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무방비해진 모습을 보니 공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저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고오오오오오오!!
[아이이잉~ 술에 취한 여자를 보고 이렇게 커져 버리시다니.주인님은 벼~어~언~태~애~애~♡]
[쓸데없이 신경 분산시키지 말고 사회에 집중해라.]
리한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카트리나의 엉덩이를 붙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대었다.
철썩, 철썩철썩철썩!!
“꺄흥♡ 그러면 시계 반향으로 자기소개를 이어나가도록 할까요? 다음 차례는 이실라씨.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후후후후. 드디어 이 순간이 찾아왔군요. 다들 눈치채지 못하셨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토끼 가면을 벗어보였다.
“사실 제 정체는 귀여운 토끼가 아니라 라미아였습니다!!”
“…”
썰렁한 침묵이 장내를 지배했다.
“크흠.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분을 속이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는데…생일이 빨라서 23살이 아니라 실제로는 22살이랍니다. 제가 보기보다 조금 어려 보이죠??”
“뻥치시네!!”
쾅!
관자놀이에 굵은 혈관이 솟구쳐 오른 루시가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울분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