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H이벤트)개와 늑대와 사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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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리한은 복잡한 심경으로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유성왕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쥬란 신과 왼쪽 눈동자에 흉터가 새겨진 이유.
모두 다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평온의 검사 애쉬였다.
돌로레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자 제니아의 모든 무장이 덤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알려진 실력자.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만 봐도 그(또는 그녀)가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설마 대륙 최강을 논할 수 있는 강자에 상상을 뛰어넘는 예측불허의 존재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루크의 말에 의하면 애쉬가 아슈킬 가문에 몸을 의탁한 것은 100년(그가 아는 범위에서만)도 더 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20대 초반에 흑발.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호한 외모.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인간하고 다를 바가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이런 것이 가능한 존재가 단순한 범인凡人일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리한을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그는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 지위를 되찾는 수단으로 애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터무니없이 강한 존재가 순순히 자신을 따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은 마르텔 대모가 천수를 누릴 때까지 지켜주겠다는 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슈킬 가문에서 마르텔 대모가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가호위라고 최강의 무력과 정통성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가문의 어르신에게 누가 감히 맞설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녀는 리한이야말로 아슈킬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승리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간단했다.
병석에 누워있는 노인 하나만 치료해주면 만사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베스트 플랜.
하지만 루크가 들려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작전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하나 있었다.
왜냐면 애쉬가 자신의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또는 그녀)가 평온의 검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온 세상에 어떠한 평지풍파가 다가와도 소리소문없이 지워버리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의 인과율마저 조작해버리는 존재.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잘 생각해보면 수상한 점은 군데군데 있었다.
100년도 넘게 늙지 않는 정체불명의 존재, 제니아의 모든 무장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실력자, 오팔 왕국의 삼투장.
이 모든 타이틀이 세간의 관심과 주목을 끌어모으지 않을 수가 없는 내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누구도 애쉬에 대해서 관심을 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이름을 알고 있어도 꺼내는 것에 두려움이 새겨진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후계자의 왼쪽 눈에 흉터를 남긴 사람은 쥬란 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저주로 바꿔버린 것은 애쉬였다.
이유는 하나.
그날 그 자리에서 후계자는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목격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리한은 애쉬가 마르텔 대모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베스트 플랜을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존재에게 인간의 생사는 아무런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평온을 지키고 계약 사항을 준수하는 것뿐.
그리고 이것을 바꿔서 말하면 마르텔 대모의 수명이 인위적으로 바뀌는 일은 애쉬에게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뜻했다.
계약은 천수를 누리게 해주는 것이지 연장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만약에 자신이 노인을 병석에서 일어나게 한다면 애쉬는 그것을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조작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런 빌어먹을 경우를 봤나…’
일을 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편리한 도우미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알고 봤더니 최종 보스였다.
애쉬의 존재 자체를 계산에서 제외한다고 해도 마르텔 대모는 후계자 지위를 되찾는 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아 보였다.
으드드드득-
리한은 자신이 세운 베스트 플랜이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간이 으스러지도록움켜잡았다.
차선책은 돌로레스나 래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해버리는 것.
하지만 이것도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현재 자신의 측근 중에서 잠입과 암살 작전에 특화된 사람은 질과 폭스 하운드, 그리고 자신까지 5명이었다.
모두 함께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퀘스트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성공 확률은 잘 쳐줘도 30%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을 들키는 것은 천우신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아니, 정말로 운이 좋아서 들키지 않고 암살에 성공한다고 해도 가장 먼저 세간의 의심을 받을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내전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막시밀리안의 말대로 공화국파의 힘을 총동원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 아니야. 전쟁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가는 전후 복구 비용만으로도 감당이 안 돼. 일분일초가 아까운상황에서 그렇게 허송세월할 수는 없어. 하아…인간 세상은 정말로 복잡하고 다사다난하군. 어떻게 매번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앞길을 가로막다니…’
우울한 마음에 사로잡혀서 더 원과 함께하던 시절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워지고 말았지만, 출사표를 던지고 세상으로 나온 자신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징징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심신 모두가 피로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여자를 안고 싶은 생각도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니면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WAAAGH!! 트릭 오어 트릿! 어리석은 인간 귀족 녀석들아. 순순히 과자를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을 모조리 Dakka dakka dakka를 해버리겠다! 가라, 짜샤들아! 어서 가서 약탈해 와라!!]
[우리 모두 빨간색으로 칠했다! 빨간색은 무조건 3배 빠르고 강하다. 폭발이다! 예술이다!! 파국이다아아아아아아!!]
[WRYYYYYYYYYY!!!]
‘뭐지 저 쓸데없는 하이텐션은…’
호박으로 오크 족장의 가면을 만들어서 쓰고 있는 지휘관들의 명령 지휘에 따라서, 조그마한 아이들이 마치 황충蝗蟲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어른들을 수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참고로 현재 시각은 새벽 1시.
착한 아이들은 모두 꿈나라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이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히이이이익! 과, 과자를 드리겠으니 제발 목숨만은…]
[으헤헤헤헤헤! 순순히 물건을 내놓다니 좋은 마음가짐이로군. 하지만 우리는 범한다! 조숙한 늙은이! 엉덩이에 폭죽을 꽂아버려라!!]
[기억할게에에에에!!!]
[사실은 먹은 빵처럼 잊어버리겠지만 말이야!]
[흐이이이익?!]
‘쓸데없이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전에 돌아가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리려고 하고 있을 때 눈앞에 코를 질질 흘리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분장의 아이가 나타나서 자신을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뽀스!! 여기에 파티의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는 반동분자가 있습니다요!!”
“뭐??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이 역적 놈의 새끼들!”
“저도요??”
어째서인지 대장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아이의 지적대로 현재 리한은 연무장에서 입고 있던 무복을 그대로 입고있었다.
잠시 후.
우르르 몰려드는 어둠의 자식들에게 순식간에 포위되어버리고 말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짱! 뽀스 짱! 뽀스 짱! 뽀스 짱! 뽀스…]
마치 인신 공양을 하는 사교도 무리처럼 바닥을 두드려대면서 누군가를 호출하고 있는 아이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어른들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도 거리를 두며 시선을 회피해버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쾅! 쾅! 쾅! 쾅! 쾅!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서치 라이트의 조명이 모이면서 아이들에게 떠받들어지면서 공중으로 올라오는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뾰족한 귀에 새빨간 가면. 휘날리는 망토.
마치 레슬러처럼 팔짱을 끼고서 뒤돌아 있는대로 거들먹거리고 있는 뽀스가 불현듯이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샤우팅을 했다.
“인과의 윤리에 갇히더라도 남겨진 마음이 문을 열으리라! 무한의 우주가 막아선다 하여도 끓어오르는 이 피가 운명을 뚫으리! 하늘도 차원도 돌파하여 잡아내 주마! 스스로의 길을!! 지금 바로 여기에 이 몸☆등장!!!!”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짱! 뽀스 짱! 뽀스 짱! 뽀스 짱! 뽀스…]
[날 가져요. 엉엉엉!!]
“…”
정신이 아스트랄해지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보아하니 이 몸의 존재감에 압도당해버린 모양이구나. 어리석은 반동분…나, 나리??”
“티오, 어서 오고.”
리한은 작은 세계를 약탈하고 다니는 악의 무리를 쓰러트리고 평화를 가져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