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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화 〉라떼는 말이야(8) (165/429)



〈 165화 〉라떼는 말이야(8)

껄껄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린 그는 이미 웃통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혀버릴 지경.


‘이미 워밍업은 마친 모양이군.’


한쪽 구석에는 앞선 대련의 희생양으로 보이는 남자가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얼굴이 너무 심하게 부어버려서 순간적으로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니 블랙 이글 기사단의 단장 칼센이었다.


“가서 치료해 드려라. 클레어.”


“네, 네!!”


너무 끔찍한 몰골에 잠시 넋이 나갔던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가서 상처를 돌봐주었다.


“지치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자애로운 치유의 어머니이시여…”


파지지지지직-

줄리아 교단의 기도문을 외우자 손바닥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왔다.

겉으로는 5서클의 회복마법 그레이트 힐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치유능력은 마스터 코어의 힘을 끌어다가 쓰는 것이었다.

덕분에 온몸의 상처와 멍이 사라진 칼센이 몸서리를 치면서 의식을 되찾았다.


부르르르르-

“제, 제발 그만!! 헉?!”

“쯧쯧쯧쯧. 한심한 사람 같으니라고. 오팔 왕국의 영공을 방위하는 책임자가 겨우 이 정도로 뻗어버려서야 되겠는가??”


“히이이이익?!”

루크를 보자마자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전에 했던 대련이 지독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모양이었다.

덕분에 노장의 표정은 조금 더 험악해졌다.


“이런 한심한 작자를 봤나? 후학들이 보고 있는데 왕국의 무인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버리게!!”

“죄,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 제가 잘못했으니까 부디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꼼짝도 하지 못하고 구석에 웅크려서 같은 말만 반복했기 때문에 병사들이 허둥지둥 부축해서 데리고 나갔다.


루크는 이 모습을 보면서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하아. 정말로 개탄스럽군.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마음이 저렇게 유약하니 치열한 전쟁터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을꼬? 왕국의 평화가 길어도 지나치게 길었군. 이렇게 다들 나태해져 버렸으니까 말일세.”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회춘해서 기쁜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너무 그렇게 폭주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질풍노도의 시기도 100년 전에는 지나가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하하! 내가 그렇게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으면 저 녀석이 살아서 빠져나갈 수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자네의 패기는 마음에 드는군. 아주 마음에 들어!!”


짝짝짝짝짝짝!


손뼉을 치면서 웃음을 터트린 노장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면서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래.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시작하려고 하는데. 자네들의 차림새는 왜 그 모양인가? 어디서  같지도 않은 넝마 조각을 걸치고와서…”


“바깥에서 가장 파티가 열리고 있습니다. 모르셨습니까?”

“가장 파티?? 아, 그 외국에서 들여왔다는 이상한 축제를 말하는 건가? 참나. 요즘 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옛날에는 무도회를 열 때도 격식과 전통을 지키지 않으면 아랫것들에게 얕잡아 보여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말이야. 어쨌든  차림으로는 싸우기 어려울 테니까 갈아입고 오게. 아니, 포르스카. 자네가  번 솜씨를 발휘해 보지.”

“네, 장군.”

앞으로 나온 마법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주문을 영창하는가 싶더니 리한 일행을 향해서 떡갈나무 지팡이를 휙 하고 휘둘렀다.

[모디피케이션(형태 변화)]

지이이이이이이잉-

입고 있던 코스튬 의상들이 순식간에 활동하기 편한 무복으로 모습을 바꿨다.


‘놀라운 솜씨의 오리지널 마법이군.’

보아하니 사라의 채스티티 가드와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마법인 모양이었다.

그의 이름은 성을 들은 순간에 알아낼 수 있었다.

“왕국 최고의 궁정마도사. 리쉬케 포르스카님이시로군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정중한 인사에 감사드립니다. 공자님. 하지만 애써 최고라고 치켜세워주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학파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럴 리가요. 왕국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8서클에 오르셨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런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셨는데, 칭송하기는커녕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헐뜯기 바쁜 모리배들에 지나지 않겠죠. 그런 하찮은 자들의 평가 따위를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 추켜세워주실 것까지는 없는데…하하하.”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으으응? 리쉬케라니.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은 일리야 포르스카였는데 말이야. 언제 개명을 했지??”

“일리야 포르스카는 저희 할아버지입니다. 장군님.”

“하하하하하하! 그랬지, 그랬어. 그런데 무슨 상관이라는 말이냐? 생김새부터 목소리, 쓸데없이 자학적이고 시니컬한 성격까지 완전히 빼닮았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어깨를 펴라. 너희 할아버지도 죽을 때까지  자리를 해 먹었는데 너라고 못하겠느냐??”


잠시 노망이 난 줄 알았지만 나름대로 위로해주는 모양이었다.

펑펑펑펑!

“아얏! 아픕니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때리지 마십시오. 저는 배틀 메이지가 아니라서 육체 강화 마법을 영창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입니다!”

“이 녀석이 그래도 앓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하여간 포르스카 녀석들은 죄다 이 모양이야. 마법사가 한 우물만 파라는 법도 없는데. 금강투합체 정도는 익혀놓을 것이지…”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본인부터 1서클 정도는 마스터를 해보시죠??”

“어쭈?  녀석이 한번 해보자는 소리냐?? 누가 혈육 아니라고 할까 봐 자기 할아버지하고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다니.”


“장군님이야말로 걸핏하면 그렇게 주먹부터 앞세우려고 하니까 저희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말을 섞지 말라고 하셨던 겁니다. 하여간 무장들은 교양이 없어서…”


“뭐??? 교양??? 교야아아아아앙????”

금방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것을 보니까 마법사와 무장이 어째서 앙숙이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리쉬케가 자신감이 없는 것은 단순하게 성격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오팔 왕국에는 공화국파의 포르스카 학파와 제국파의 벤클리프 학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력을 대표하는 궁정 마도사가 리쉬케 포르스카와 에드워드 벤클리프.

현재 8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그와 비교해서 에드워드는 7서클 엑스퍼트에 불과했지만, 제자의 숫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벤클리프 학파에몰려있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


포르스카 학파의 방식으로는 죽어다 깨어나도 배틀 메이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 자체에 학술적인 탐구와 연구에 중심을 두는 포르스카 학파의 느긋한 기조하고는 다르게, 현대 마법전의 필승 공식은 얼마나 빠르게 파괴력이 강력한 고서클의 마법을 발동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대륙 대부분의 마법학파에서 진행하는 연구 테마는 고속 영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보다 강력한 전술 마법이나 전략 마법을 발동하는 방법부터 배틀 메이지를 탄생시키기 위한 마력문의 계승과 발전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래에 마법사를 꿈꾸는 청년들이 포르스카 학파를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오죽하면 왕국에 유일한 8서클 마스터인데도 불구하고 궁정 마도사의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다.

마법 자체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리한으로서는 포르스카 학파의 연구 테마에 더 흥미가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알아봤자 별 소용은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사이가 좋은 것은 알겠으니까적당히 하고 대련이나 시작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누가 사이가 좋다는 거냐!!”

 사람이 사이좋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덕분에 정신을 차린 루크가 헛기침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크흠, 크흠. 나도 모르게 잠시 이성을 잃어버렸군. 부탁하도록 하지. 손자 포르스카.”


“네, 장군.”


싸움을 멈춘 리쉬케가 조금 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력을 끌어모으면서 긴 영창을 이어나가기시작했다.

“지금 외우는 것은 무슨 주문입니까?”


“연무장이 부서져 버리면 곤란하니까 말일세. 자네들도 기왕에 싸울 거라면 더 넓고 튼튼한 공간에서 마음껏 날뛰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렇군요.”


“그런데. 자네들은 셋으로 괜찮겠는가? 기왕에 여러 명이 도전할 생각이라면 더 잔뜩 데려와도 상관없는데 말이야.”

현재 리한과 함께하고 있는 것은 아토스와 이리나 뿐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완벽한 라인업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길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투자 대비 최대한의 성과라도 받아내야죠.”

“에잉. 쯧쯧쯧쯧. 요즘 놈들은 정말이지 패기가 없군. 기왕에 덤빌 생각이라면 무조건 싸워서 승리를 쟁취해야지.”


‘쳇.’

리한이라고 지고 싶어서 덤비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죽어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노익장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루크의 입에서 마음을 술렁거리게 만드는 마디가 터져 나왔다.

“그런 식으로 꾸물거리다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쥬란 신을 이기지는 못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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