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라떼는 말이야(7)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있는 나디아양은…후후후후. 정말로 사랑스러운 캣시 분장이로군요. 특히나 귀와 꼬리에 아주 공을 들이셨네요. 마치 진짜 수인족 같아♡”
“호, 호랑이 요정이에요. 그리고 분장이에요! 어디까지나 분장이라고요!!”
먹이를 노리는 뱀 같은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정곡을 찌르자 당황한 나디아가 버블티를 버블버블 마셨다.
리한은 어깨를 다독이면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천천히 마셔라. 그러다가 사례라도 들리면 어쩌려는 거지?”
“아, 네. 조심할게요. 서방님.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저, 저기. 아이스크림이라도 드실래요?”
살짝 망설이다가 디저트로 나온 허브 애플 그라니타를 한 숟가락 떠서 조심스럽게 내밀어 보였다.
“과식하는 것은 싫은데.”
“죄, 죄송해요.”
사과하면서 빼려고 했지만 붙잡아서 덥석 삼켜버렸다.
“하지만 귀여운 색시가 주는 것은 못 참지.”
“그, 그렇게 말씀하셔봤자 나오는 것은 없거든요? 크흠, 아이스크림 한 번 더 드실래요??”
후웅- 후웅- 후웅- 후웅-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맹렬하게 흔들리는 꼬리가 보였다.
‘너무 티나게 정체를 드러내면 나중에 무마하는 것이 귀찮아지는데. 뭐, 귀여우니까 상관없나?’
설명하기 어려울 때는 마법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편리한 세계였기 때문에 걱정을 내려놓고 색시와 알콩달콩 즐기고 있으려니, 또 하나의 아이스크림 스푼이 슬그머니 자신의 눈앞에 내밀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리나?”
“…”
대답이 없다.
평범하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에 양쪽에서 경쟁하듯이 내밀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번갈아 가면서 받아먹고 있으려니, 정면에 자리를 잡고 앉은 카트리나의 시선이 조금씩 싸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주인님께서 양손에 꽃을 차지하고 호사를 누리시는 모습을 보니까, 원념에 가득한 이세계의망자(솔로)들의 아비규환이 들려오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빙의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디에서 4차원 전파라도 수신하는 거냐??”
“후후후후. 조크에요, 조크.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제 스푼도 받아주세요.”
“아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여기에서 더 늘어나는 것은 조금…”
“드세요!”
“…”
이해할 수 없는 박력에 어째서인지 굴복해버리고 말았다.
“자, 클레어양도 숟가락을 드세요! 지금이야말로 이 더러운 하렘 남자에게 진정한 여신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저, 저도요??”
“빨리요! 오늘이 아니면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과 분노, 응어리를 털어낼 수 있는 찬스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요!!”
“흠. 그렇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클레어. 너마저???”
“웨이터! 여기에 그라니타 다섯 접시 추가해주세요. 아니, 그냥 종류별로 다 가져오세요!!”
갑작스럽게 불이 붙은 이상한 경쟁에 말려든 리한은, 4명의 미녀들이 번갈아서 내미는아이스크림의 제파식 공세에 한동안 고문 아닌고문에 시달리게 되었다.
파지지지직-
‘마스터 코어의 회복능력을 이렇게 시답잖은 일에 사용해야 한다니…’
무려 13개의 커다란 대접을 비워주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서는 여자들의 광기.
역시 질투는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이번 일은 기억해두고 있다가 반드시 갚아주자는 다짐을 했다.
‘이리나하고 클레어는 아직 처녀인 주제(?)에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군. 하루빨리 고백해서 혼내줘야겠어. 여기에 사라까지 추가해서…좋아. 오늘 밤은 처녀 향해를 즐겨보도록 할까?’
그렇게 결심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때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실실거리는 카트리나의 얄미운 미소도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녀다.
‘옆에서 자꾸 클레어를 부추기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연상의 누님에게 쇼타콘은 정의라느니, 어쩌느니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댔으면서 사라에게는 통하지 않았잖아? 일은 잘하는데, 기회만 되면 기어오르려고 하는 태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번 기회에 참교육을 해줘야겠어.’
딱히 미라 코스프레가 아랫도리를 가장 웅장하게 만들어주는 1등상이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카트리나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은 후에 처녀 항해를 즐기자.
이렇게 플랜을 짜고 실행으로 옮기려고 할 때,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자신을 다시 한번 도발해 왔다.
“어머? 갑자기 왜 그렇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시는 거죠? 후후후후. 설마 이렇게 사방이 노출된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하지는 못하실 텐데…”
이 말대로 호박 텐트는 조명 때문에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그림자 실루엣으로 바깥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익명이 보장되는 파티였기 때문에 조금 더 으슥한 장소에는 야외 플레이를 즐기면서자신의 변태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귀족들도 있었지만, 따로 제공되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는 것은 비매너 NG 플레이였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들어있지 않은 거냐? 이런 음탕한 치녀 같으니라고…”
속내를 들켜버린 리한이 시치미를 떼면서 그렇게 타박했다.
“아니라면 다행이로군요. 왜냐면 루크 장군님께서 주인님을 불러오라고 하셨거든요.”
“영감탱이가 왜?”
“오팔 왕국의 장래를 위해서 긴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던가, 없다던가.”
“정중하게 사양하도록 하지. 얌전하게 발이나 닦고 주무시라고 말씀드려라.”
“그랬으면 좋겠는데. 오지 않으면 이번 협상의 계약금을 전부 자신이 독차지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흥, 고지식한 영감탱이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협박을…”
그로서는 지금 이 장소를 떠날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녀 네 명과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데 뭐가 아쉽다는 말인가.
중간에 잠시 질투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기는 했지만, 이리나와 나디아 모두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여기에 긴장을 풀어주는 게임과 적당한 알콜만 추가해주면 잔뜩 굳어있는 클레어의 가드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질 터.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사라도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신나게 놀고 즐기다 보면 카트리나를 혼내주고 난 후에, 나머지 인원과 4P, 아니. 나디아까지 추가해서 5P까지 노려볼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한은 결국 욕지거리를 뱉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젠장,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그리고허공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질! 주변에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이리로 썩 나와라.”
파아아아앗!
“꺅?! 죄, 죄송합니다. 서방님. 몰래 훔쳐보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
흡혈귀로 분장하고 있는 흡혈귀가 배후에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허둥지둥 손사래를 쳤다.
참고로 그녀는 리한의 목덜미를 킁킁거리면서 하악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이리나와 카트리나는 그녀의 은신술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사라는 아직 T-7과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 세부조정이 좀처럼 끝나지를 않아서 길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현재 그녀는 리한의 대리인으로카밀라와 협상 이행의 세부 논의를 하면서 치열하기 이를 데가 없는 머리싸움에 한창이었다.
“좋아. 뒤풀이는 나중으로 미뤄졌으니까 끝나고 나면 숙소에서 편하게 쉬면서 대기하라고 해라. 나중에 따로 부를 테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슈우우우욱-
순식간에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리는 그녀.
“나디아. 미안하지만 오늘 데이트는 여기에서 끝내야겠어. 그리고 가는 길에 아토스를 찾아서 루크 장군의 방으로 오라고 전해라. 이리나는 나를 따라오도록. 아무래도 달밤에 체조를 해야 되는 일이 일어나버린 것 같아.”
“달밤에 체조라니요??”
“보나 마나 뻔하지. 1세기 반을 왕국의 수호신으로 살아왔다는 늙은이가 미래를 이끌어갈 전도유망한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겠어?”
“아…”
이리나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반짝거리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삼투장과의 지도 대련.
이 단어만큼 오팔 왕국 무장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물론, 자신의 경지를 하루라도 빠르게 늘리고 싶은 리한으로서도 환영할만한 내용이었지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아까운것은 아까운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나만 충분했으면 분신을 보냈을 텐데. 젠장…더러워서라도 하루빨리 강해져야지.’
속으로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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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나는 분명히 혼자서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함선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연무장.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낯선 중년의 마법사하고 함께 있는 루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대련 지도를 희망하는 부하들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어차피 상대도 되지 않을 텐데 약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허허허허.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대련을 각오하고 찾아온 것은 기특하지만 젊은 녀석이 말버릇 한 번 고약하기 이를 데가 없군. 라떼는 웃어른에게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