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라떼는 말이야(5)
별다른 생각 없이 지껄인 농담 한마디.
하지만 그것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영지 안내를 끝내고 외국인 손님을 돌려보낸 지그문트는, 먼저 제보를 했던 존과 그를 자신의 눈앞까지 와서 엎드리게 방치한 경호 책임자를 들판에 묶어서 새들에게 산채로 쪼아 먹히다가 죽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소금 광산에는 천 명의 기병대가 파견되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로체스 가문의 깃발을 발견한 벨더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들켰다는 사실을 깨닫고 빠르게 엎드려서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심판 칼날뿐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광산의 노동자들은 마침내 기나긴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만세를 불렀지만, 기병대가 겨냥한 창끝이 자신들에게로 방향을 돌리자 환호성은 비명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해가 지기 전까지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신분과 출신, 종족을 불문하고 아이,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무저항인 민간인들을 찍고, 뭉개며, 부수고 박살 내버렸으며 시체로 언덕을 쌓고 흘러내리는 피가 냇물을 이뤄서 발목까지 출렁거렸다.
창고에 숨어있다가 살려달라고 비는 작은 어린아이를 쇠 도리깨로 끝장낸 그들은 모든 시체를 모아서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학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소금 광산을 정리하기가 무섭게 기수를 돌린 기병대는 이번에는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마을을 불태우며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벨더와 몰래 결탁하고 있던 주민들이 뛰어나와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들의 정체는 평범한 주민으로 위장하고 있던 도적 패거리였으며, 두목이 숨어있는 비밀 은신처의 위치는 물론이고 다른 주민 중에서 누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는지도 가르쳐줬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기병대의 대장은 실토한 사람을 포함해서 선량한 주민과 도적을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렇게 주변 20여 개의 마을과 도적들의 비밀 근거지까지 파괴하고 나서야 간신히 학살을 멈추고 돌아갔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수천 명의 마법사가 전략 마법을 쏟아부어서 소금 광산 자체를 지도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았다.
훗날.
우연한 기회로 다시 한번 벨루카를 방문한 외국인 손님이 그날의 일을 떠올리고서 넌지시 결과가 어떻게되었는지를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지그문트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는지 모르겠군. 애초에 그 지역에는 소금 광산 자체가 존재하지를 않는데 말이야.]
“방백들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자신보다 우월하고 고귀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게다가 스스로를 오팔 왕국의 국왕 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왕실에 대한 충성심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극도로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라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겁니다.”
이 말에 엠프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면 록히드 플랜의 지원조차도 구속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소리로군요.]
여러 가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가다듬은 그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어쨌든 공화국파가 해체될 수밖에없었던 이유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결합하기 위해서 후계자가 어떤 마술을 부렸던 거죠?]
“정확하게 말하면 신 공화국파를 창설했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 남자는 여기에서 판을 한 번 더 엎어버렸거든요. 그것도 본인이 나서지 않고 협력자들을 이용해서…”
카밀라는 다음 설명을 이어나갔다.
배신자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북방 3가의 이탈로 공화국파의 해체가 결정된 직후.
지금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던 사라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옛말에 싸움 구경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리한과 무역 공사가 1대 1로 거래를 진행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판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그녀가 100억 대륙 은화로 경쟁 입찰가로 제시해버리자,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던 방백들은 호기심을 느끼고 슬그머니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1단계 관심 끌기는 대성공.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퍼포먼스나 허세가 아니었다.
[사라 방백이라. 여러모로 성가신 존재로군요. 확실히 그녀는 제국파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었나요?]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이미 은요호 기관하고 접촉해서 제국의 마녀와 사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습니다.”
이 말에 엠프리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경쟁자가 생긴 셈이었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치부책은 물론이고 공화국파의 존속까지 손에 쥐고 있으니까 제국도 100억 대륙 은화쯤이야 기꺼이 지불해줬을 테죠.”
절대로 질 수 없는 경쟁자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입찰 경쟁은 저절로 가열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카밀라가 어째서 물러서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협상에뛰어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실 그녀가 후계자에게 가담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후계자의 뒷조사를 하는 도중에 그가 후작의 선단에서 여성 두 명을 바꿔치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데려간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높은 확률로 그녀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오팔 왕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귀족이니까 말이죠.]
크레이그 가문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하는 배팅이었기 때문에 100억 대륙 은화라는 비현실적인 숫자도 신빙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품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느냐는 것.
“방백들은 그녀에게 무역공사가 사려는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입찰을 해도 되냐고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대답은 우리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카밀라는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치는지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뭔지는 몰라도 최소한 50억 대륙 은화 이상의 값어치가 되니까 그런 가격에 논의가 되었겠죠. 저는 오히려 그렇게 귀한 물건이 아무런 경쟁도 없이 팔려버린다는 사실이 괘씸하군요. 당신들은 혹시 세상 물정을모르는 후계자님을 속여서 폭리를 취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요? 아까도 거짓말을했고. 베리우스 후작과 공모해서 후계자님의 신병을 몰래 확보하려고 했던 것도 수상하고 말이에요.]
쿵!
[어처구니가 없군요. 우리를 무슨 사기꾼처럼…!!]
흥분한 엠프리스가 받침대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저에게 주어진 기회가 딱 한 번밖에 없었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자리를 주도해 나가기에는 지나치게 수상해져 버렸으니까요…”
처음에 카밀라는 자신을 공화국 무역공사의 대표라고 소개하면서 록히드 플랜의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리한에게 협상을 재개하자는 우회적인 제안을 보냈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치명적인 판단 미스였다.
후계자가 단숨에 판을 뒤집어 엎어버리면서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순간, 공화국 무역공사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는 집단으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카밀라는 자신이 주도적으로높은 가격을 제시할 유일한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회의 내용은 외국인이 끼어드는 것이 어려운 공화국파의 내부 사정이었고, 협상하고도 상관이 없는 오히려 자칫 잘못했다가는 상품의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커다란 오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후계자가 공화국파의 존속을 인질로 잡고서 상품의 토탈 가치를 세배 이상으로 올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순간에 카밀라는 자신이 외통수에 몰려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라가 제기한 협상 금액은 100억.
당연히 상품의 진짜 가치는 150억 이상이었으니 오히려 낮게 부른 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100억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러는 순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의심으로 확신으로 변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후계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저렇게까지 집착을 보이는 거지?]
[혹시 거기에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가치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반대로 입찰 경쟁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공화국파가 해체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오팔 왕국 자체를 제국에게넘겨버린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해결책은 딱 하나.
공화국파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 모두에게 엄청난 공동의 이익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들을 불러들이려고 했지만 그 순간 자신의 의도를 파악한 사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 저는 딱히 무역공사 여러분께서 먼저 말씀해주셔도 상관은 없답니다? 후후후후. 정말로 그럴 배짱이 있으시기만 하다면 말이죠.]
이 말에 그녀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없었다.
왜냐면 이것은 자신들이 어떤 가격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 이상을 불러주겠다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된 입찰 경쟁에는 북방 3가 전체가뛰어들었다.
자신들이 팔리는 상품 자체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
[설마 후계자가 신 공화국파를 결성한 방법이라는 게…]
“네. 우리에게서 최종 낙찰가를 받아내자 후계자는 방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 덕분에 제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었군요.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이이익 중에 일부를 여러분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잠시 얼룩져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군요.”
[그래서 얼마를 나눠줬죠?]
“한 사람당 1억 은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