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라떼는 말이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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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보고를 들은 엠프리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라고요??]
“그게…”
“최종 낙찰 금액은 217억 3천 200만 대륙 은화였습니다. 3년 동안 분할 지급하는 것을 약속으로 4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1만 2천 명. 30년 계약으로 파견하는 조건을 추가해서 말입니다.”
터무니없는 내용에 충격을 받은 탓이었을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분명히 우리가 감수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면 거절하라고 말했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엠프리스. 사태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모두 저의 책임입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바람에 깨달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버려서…그러니까 어떤 처분을 내리신다고 해도 달게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사죄하는 카밀라에게서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짝 느슨하면서도 나사 하나가 풀어져 있었던 어제하고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기 때문에 임프레스가 내쉬는 한숨의 무게도 조금 더 무거워지고 말았다.
[스미스 요원.]
“네, 임프레스!”
[솔직하게 답변해주세요. 만약에 당신이 그녀를 대신해서 우리측의 협상 대표로 나갔어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저라면 이따위 허무맹랑한 협상에는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그는 자신의 선글라스 브릿지를 고쳐 쓰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대신에 그 빌어먹을 너구리 같은 후계자 녀석을 그 자리에서 때려죽여 버렸겠죠.”
[…오팔 왕국 전체를 포기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왜냐면 그런 선택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승산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이만큼 해낸 것은 모두 카밀라의 끈기와 노력, 투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저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일이었죠.”
“스미스씨…”
자신을 감싸주는 모습에 카밀라가 감동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임프레스는 헛기침을 하면서 주의를 환기했다.
[크흠. 실례지만 사내 연애는 다른 곳에서 해주시겠어요?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요.]
“무,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임프레스! 애초에 저는 스미스씨처럼 우락부락한 마초 근육남 따위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단 말이에요!!”
“마, 마초 근육남??”
“아, 스미스씨. 상처를 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해요. 그래도 정말로 제 타입은 아니시니까 혹시라도 저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먼저 사죄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직장 동료로서는 믿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연애 대상으로서는 –100만 점이에요. 이번 생은 틀리셨으니까 다음 생을 노려주세요!”
빠직-
이 말에 그의 관자놀이에서 굵은 혈관이 꿈틀거리면서 솟구쳐 올랐다.
“…어째서 나는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이따위 소리를 들으면서 차이고 있는 거지??”
[풉, 크크크크큭. 크흐흐흐흐흐흐흐!]
“임프레스???”
차양 뒤에서 허리를 꺾으며 웃음을 터트리는 여성의 실루엣에 곁에 있는 요원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괜찮아요. 후후후. 저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허둥대지 마세요. 하지만…그래요. 확실히 이번 사항은 웃으면서 무마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로군요. 어느 정도 손해를 각오하기는 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액수라니…]
앵커리지 공화국이 록히드 플랜을 성공시키기위해서 현재까지 쏟아부은 예산은 약 3800억 대륙 은화로, 국가 전체 GNP에 4%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오죽하면 유례시아 대륙 전체 역사에 유례가 없는 지상 최대의 자본 동원이라고 일컬어질 정도.
실제로도 전직 재무부 장관 출신이었던 테리카 록히드 대통령은 이 작전을 승인할 때, 자신들이 범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공화국 역사에 이런 무모한 작전은 다시는 시행되어서는 안 되며 이번이 반드시 마지막이어야 할 겁니다.]
이런 표현은 비상식적인 예산 집행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유일한 경쟁자나 다름이 없는 테르할 제국을 반드시 찍어내겠다는 결연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에 앵커리지 공화국은 이런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궁지에 몰려있었다.
루크레스 교황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중재 협상에서 제국에게 패배한 이래, 식민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도 용납하기 어려웠지만, 쥬란 신이 삼군통합대원수에 임명된 후로 군사력 자체도 하루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귀족의 압제 타도를 주창하면서 일어선 나라에게, 자신들의 삶과 질서를 통째로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전제주의 국가의 창궐은 집단 공포와 히스테리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위협.
록히드 플랜은 그 자체의 목적과 더불어서 이렇게 자신감을 잃어버린 국민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
누구보다 테르할 제국에서 제일 놀라며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왕좌왕하며 시작한 맞불 작전에서 확보한 예산이 자신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 버린 것이다.
경제력 자체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모든 지표는 아니라고 할지다로 국민들의 콧대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돈이란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록히드 플랜의 지원을 받은 동맹국들은 예외 없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그렇게 확보한 예산으로 아끼지 않고 국방에 투자해줬기 때문에 제국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데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만약에 은요호 기관만 없었더라면 이 성과로 전세를 역전시켜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마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록히드 플랜이 공화국 내부의 반대 세력으로부터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어째서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외국에 퍼줘야 하느냐??]
실제로는 이런 투자가 동맹국의 경제 구조에 영향을 줘서 장래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 4~5년이 지나야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것이었고 지금 당장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끝도 없이 돈을 잡아먹는 뒤룩뒤룩한 불가사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테리카 대통령이 이 작전을 처음 승인했을 때만 하더라도 예산이 1500억만 있어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그것이 2000억, 2500억, 3000억으로 늘어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3800억으로도 모자라서 얼마가 더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며 난색을 보이게 되었다.
당연히 국내의 반대 여론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서 찬성과 반대가 거의 50대 50으로 반반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심각한 예산 낭비에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원흉 중에서 하나가 바로 은요호 기관이었다.
[두 분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T-7이 이렇게 많은 혜택과 지원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전부 제국의 마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돼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200억이 넘는 국인의 세금과 1만 명이 넘는 마법사를 희생시키는 것도 아깝지 않다. 그렇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지금의 우리에게는 이것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정부와 국회에 추가 예산을 신청해야 하겠죠. 엄청난 비난과 감사, 그리고 사찰의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말이에요.]
“정말로 면목 없습니다. 임프레스.”
[저는 지금 사과를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애초에 사과한다고 해서 예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두 사람 모두 벌써 알몸으로 발가벗겨서 석고대좌라도 시켰을 테죠.]
“히끅?!”
“그렇다면…”
카밀라가 깜짝 놀라서 딸꾹질하는 사이에 스미스가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두 분이 저를 설득해주시기를 바래요. 협상이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리한 폰 아슈킬이라는 남자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우리 T-7의 정예 요원들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가지고 놀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남자를 죽여야 할지, 살려야 할지. 개인적인의견까지 포함해서 전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주셔야겠어요.]
이 말에 스미스가 먼저 손을 들었다.
[말씀해주세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공화국 특무부대의 지휘권을 주십시오. 지금 당장 그자를제거한 후에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료를 강탈해 오겠습니다.”
[자신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카밀라의 의견은 어떻죠?]
“저는 반대합니다.”
[이유는 뭐죠?]
“일단은 성공 확률이 낮습니다. 이미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고 자료가 파기당할 우려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자는 이미 공화국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지금 단계에서 제거해버리면 오팔 왕국은 십중팔구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질 겁니다.”
이 말에 임프레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하는 말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스미스는 깔끔하게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