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라떼는 말이야(2)
“큭!”
카밀라는 물론이고 옆에 있는 스미스마저 인상을 쓰게만드는 조롱의 메시지.
그러는 사이에 리한이 굴린 스노우볼은 점점 규모가 커져서 눈사태처럼 불어나 베리우스를 매몰시키고 있었다.
“어째서 공자님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주세요. 왜 속 시원하게 해명하시지를 못하는 겁니까?!”
“옳소!!”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절박한 표정으로 카밀라 일행을 쳐다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리 그가 불쌍하다고 해도 막시밀리안의 명령으로 후계자를 납치, 감금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제스처를 보내고 외면해버리자 절망에 빠져서 고개를 떨어트리는 베리우스.
“혀, 혈마법사에게 습격당한 공자를 보호하려다가 부득이하게…그렇게 되었소.”
“역시 그랬군요?”
“흥,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뱃놀이를 보장하겠다더니 전부 다 헛소리였군. 버러지 같은 혈마법사가 몰래 기어들어 와서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니 말이야.”
“허, 참.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그랬다면 그랬다고 더 일찍 솔직하게 말해주실 수는 없었던 겁니까? 각하.”
방백들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의혹 제기는 멈추지 않았다.
“혹시, 공자의 신병을 우리 몰래 확보하려고 하신 것은 아니겠죠? 예를 들면 배신자 리스트를 혼자서 독차지하려고 했다던가…”
“가, 갑자기 무슨 소리요? 캐시 방백. 근거도 없이 사람을 모함하려고 하지 마시오!!”
“정말로 그렇소이까? 단순하게 근거가 없다고 하기에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수상하지 않소?”
“지그문트 방백까지 그런 소리를…나는 이 파벌의 수장이자, 델링거 왕실의 대변인이요! 그런 내가 공화국파에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할 리가 없잖소!!”
“글쎄올시다? 왕실을 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 북방 3가를 배려해주셨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군요.”
“마리오 방백!!!”
“어쨌든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깨져버린 이상, 파벌에 동참하는 문제도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하겠군요.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영지로 돌아가서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내부 사정도 생겨버렸거든요.”
캐시가 그렇게 말하면서 배신자 리스트를 흔들어 보이자 다른 방백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같은 의사를 밝혔다.
“나도 일어나 봐야겠군. 공자의 충고대로 우정과 신의를 논의할사람은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하겠어.”
“허, 참. 다들 이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군요. 죄송합니다. 각하.”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북방 3가가 모조리 파벌의 탈퇴 의사를 밝혀버리자 베리우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자, 잠깐! 모두 서두르지 말고 진정해 주시오. 우리가 겨우 이 정도 문제로 등을 돌릴 사이는 아니잖소?! 이 보시오들!! 젠장, 카밀라님! 카밀라님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말고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파벌이…”
“진정하세요.각하.”
흥분하는 그를 차분한 태도로 다독이는 그녀였지만 속으로 적잖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계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어째서 이런 분란을 일으켜서 파벌을 해체하려고 하는 거야?’
혹시 리한이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은요호 기관과 손을 잡고 이런 짓을 꾸미는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던 넥타르의 음모를 분쇄해버린 당사자였으니 그럴 가능성도 없었다.
도저히 의도를 읽을 수가 없는 행동.
카밀라는 그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서 두뇌를 풀가동했다.
‘후계자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자신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파벌을 해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그만이 아니야. 우리 공화국은 물론이고 베리우스 후작도, 그리고…잠깐? 그러고 보니 루크 장군은 어째서 이런 상황을 가만히 방관하고 있는 거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쳐다봤지만 그는 리한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눈마저감아버린 루크 장군.
예전이라면 그것이 운기행공을 위해서 정신을통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전성기 시절의 힘과 체력을회복해서 그럴 필요가 없을 터였다.
‘우국충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파벌이 해체되는 것을 내버려 둘 리가 없어. 틀림없이 후계자와 언질이 오고 간 거야. 하지만 대체 뭐지? 현재 상황에서 북방 3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게…잠깐. 서, 설마???’
그 순간. 카밀라의 머릿속에서 키가 작은 엘프 메이드가 해준 귀띔이 플래시백 되었다.
[반드시 마지막 장까지 유심히 살펴보라고 하시더군요.]
촤르르르르르륵-
[왜 그러는 거냐? 카밀라.]
갑자기허둥대면서 백지 서류를 주르륵 넘겨버리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스미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급하게 확인할 것이 있어서…]
[알았다. 하지만 뭔가를 하려면 서두르는 편이 좋겠군.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100억의 투자가 종잇장이 되어버릴 거야.]
흠칫!
[지,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스미스씨.]
깜짝 놀라서 되물어보자 오히려 당황하는 표정으로머뭇거리면서 대답을 했다.
[아니. 이대로 파벌이 해체된다면 지금까지 록히드 플랜으로 투자했던 자금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꼴이잖아. 은요호 기관의 약점이고 뭐고, 일단 그것부터 막아야 하니까…]
“바로 그거예요!!!”
멈칫.
핵심을찌르는 말에 카밀라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리자 사람들의 시선과 이목이 한순간에 집중되어버리고 말았다.
‘후후후후. 드디어 깨달은 모양이군.’
리한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실례를…이 아니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주세요. 록히드 플랜의 책임자로서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수군수군
갑작스러운 요구에 방백과 측근들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카밀라.]
[나,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지금은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요!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이미 늦었어.’
그렇게 생각한 리한이 사라에게 신호를 보내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자신의 와인잔을 들어서 유리 막대기로 두드려 댔다.
“지부장님께서 무슨 이유로 저희를…”
깡깡깡깡깡!
캐시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면서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
덕분에 방백들의 인상은 찌푸려졌지만 카밀라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르르르르-
[아, 안 돼…]
[도대체 왜 그러냐니까??]
[죄송해요. 스미스씨.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녀가 비장의 수단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아아. 어째서 저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요? 후계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짓을 벌일 리가 없었는데…]
[진정하고 똑바로 말해. 대체 왜 그러냐니까?!]
[스미스씨.]
[그래, 듣고 있다.]
[50억하고 150억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거야 당연히 50억보다는 150억이…아니, 잠깐. 어라??]
말을 하는 중간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과 불안함에 사로잡힌 스미스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사건이 플래시백되면서 점과 선이 이어져 나가는 느낌.
그것이 점점 구체적으로 실체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불길함의 정체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깨달은 순간에는 이미 전신을 칭칭 동여매 버린 독사의 날카로운 송곳니가자신들의 목덜미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돌아가시는 걸음을 지나치게 서두르시는 것 같군요. 여러분.”
마치 최후를 알리는 묵시록의 천사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사라.
“버릇없이 끼어들어서 갑자기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어머. 저는 딱히 무역공사 여러분께서 먼저 말씀해주셔도 상관은 없답니다? 후후후후. 정말로 그럴 배짱이 있으시기만 하다면 말이죠.”
“?!!!”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카밀라는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부르르르르-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나올 생각이었던 거야!’
몸서리쳐지도록 소름 끼치는 설계에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방백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버리고 말았다.
“카밀라 지부장님? 왜 그렇게 겁에 질리신 표정으로…”
“흠, 생각이 바뀌었어요. 역시 그대로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살펴 가세요. 여러분.”
“뭐??”
“이랬다가 저랬다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우리를 지금 가지고 노는 것인가?!”
“후후후후.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하지만…생각해보니까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버려서 말이죠. 상품의 가치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하고 협상하려고 했던 우리 공자님이 너무 불쌍해져서…”
“상품의 가치라니…응?”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것 같은 알쏭달쏭한 표현에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중얼거리던 캐시가 뭔가를 깨닫고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사라 방백. 당신 지금 설마…”
“리한 공자님. 보아하니 이제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해도 될 것 같군요.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경쟁 입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가볍게 허들부터 올리고 시작하도록 합시다. 100억 대륙 은화. 공화국 무역공사에서 무엇을 사들이시려고 했든지 간에 이 사라 크레이그가 그 가격으로 우선 입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