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8화 〉라떼는 말이야(1) (158/429)



〈 158화 〉라떼는 말이야(1)

빠지지지지지지직!!

순식간에 근육이 부풀어 오르면서 옷 소매가 터져나갔다.


다급하게 물러서는 루시를 무시한 지그문트는 런디의 목을 단숨에 움켜잡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크어어억?!”

“네놈이 어떻게, 그동안 세경가의 필두로 온갖 혜택과 편의를 누리게 해주었거늘. 감히 이따위 녀석들하고 공모해서 나를 음해하려고 해??”

핏발이 서버린 충혈된 눈동자, 마치 야수처럼 사납게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각하! 잠시 마가 끼었습니다. 아니, 누군가에게 세뇌당했을지도모릅니다. 그, 그렇습니다. 이건 전부 제국의 마녀가 꾸민 음모…컥, 커어어억!”

“이런 빌어먹을 후레자식이마지막까지 헛소리를!!”

금강투합체를 부수고 사정없이 목을 조여오는 무시무시한 악력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런디가 허공에서 발버둥 쳤다.

우드드드득-


이성을 상실한 지그문트가 그대로 힘을 줘서 숨통을 끊어버리려고 했지만 이 모습을 목격한 루크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그를 말렸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거기까지만 하시오. 방백.”

“끼어들지 마십시오. 장군! 아무리 장군이라도 우리 가문의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그자를 처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오. 단지 무엇을 하려거든 때와 장소를 구분하시라는 뜻이었소. 굳이 여기에서 흉한 꼴을 보여주셔야 속이 시원하겠소?”

“흉한 꼴이라니…”

이 말에 주변을 쳐다보자 자신을 야만스럽다는 쳐다보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루크의 말처럼 이곳은 그가 마음대로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독무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도 끔찍한 처형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가는, 다음 날에는 미치광이 도살자라는 별명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


“큭.”

어쩔 수 없이 용암처럼 끌어 오르는 분노를 삼킨 지그문트는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장군의 말이 옳소. 추태를 보여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괜찮습니다. 저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이성을 잃어버렸을 테니까요. 호호호호.”

“허, 참. 설마 런디 자작같은 사람이 배신할 줄이야. 열  물속은 알아도  길 사람 마음은 모른다더니. 쯧쯧쯧쯧.”

으드드득-

‘이 년놈들이…’


안타까운듯한 말의 내용 하고는 다르게 방백들은 깨소금이라는 듯이 밉살스럽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관자놀이에서 두꺼운 힘줄이 꿈틀거리며 솟구쳐 올랐다.

“앞서 했던 모든 말을 취소하겠소. 공자, 확실히 지금 단계에서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이는군.”

“알아주셨다면 다행입니다.”

“미안하지만 영상기록장치와 증거자료를 나에게 넘겨주실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요.”

“신세를 지는군.”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표시한 지그문트는 넘겨받은 자료를 주저 없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영상기록장치에는 결정적인 배신의 순간이 편집되어 찍혀있을 뿐이었지만, 문서에는 더 구체적으로 런디가 넥타르와 어떤 거래를 주고받았는지 모든 내역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파르르르르-


내용을 읽으면 읽어내려갈수록 배신감에 치를 떠는 지그문트.


“아주 작정하고 일을 꾸몄구나. 빌어먹을 개자식…”


“각하! 정말로 오해십니다. 이건 전부 날조된…”

“시끄럽게 짖어대는구나. 아혈啞穴을 짚어서 다물게 해라.”

“존명!”


신병을 구속하고 있는 경호원이 점혈해버리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뻐끔거렸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시야에서 치워버려라. 아니, 아니지. 회의가 끝나면 내가 직접 요사스러운 혀와 사지를 잘라버릴 테니 감옥에다가 묶어두도록 해라. 미친 녀석. 우리 로체스 가문의 씨를 말리고 처첩들을 어쩌겠다고?? 두고 봐라. 이 내용 그대로 너의 매그니스 가문에게 돌려주도록 하지.”

“?!!!”


쿵!

기겁한 런디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용서를 구했지만, 지그문트가 치우라는 제스처를 보내자 경호원들에게 붙잡혀서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

“넥타르에서 발견한 자료는 이것 하나뿐이었소?”

“안타깝지만, 아닙니다.”


짝짝짝!

리한이 다시 한번 손뼉을 치자 이번에는 더 많은 시종이 묵직한 자료를 가지고 나와서 차례대로 배분해 나가기 시작했다.

베리우스 후작, 루크 장군, 북방 3가에서 카밀라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도??’

수군수군

갑작스러운 사태에 장내는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져 버리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물량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문서 상단에 올려져 있는 배신자 리스트를 확인한 사람들의 표정은 예외 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적혀있는 인물들이 모두 자신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자. 이것은 도대체…”


“우선, 정식으로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이것들은 대외적으로 공개할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있어서 민감한 내부 사정이겠죠. 하지만 저는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모든 자료를 살펴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부디 안심해주십시오. 천년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배신자들의 이름은 오직 저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웅성웅성웅성


아니나 다를까 충격적이기 이를 데가 없는 고백에 장내에서 일어나는 소란이 조금 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져 버리고 말았다.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공자. 배신자들의 전체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니. 그것은 마치 우리 공화국파의 중진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소??”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베리우스가 그렇게 외쳤지만 리한은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맞받아쳤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공화국파의 수많은 귀족 중에서도 극히 소수밖에 모이지 않은  원탁회의에서조차 적들과 내통한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리스트는 혈마법사들과 공모하고 있는 자들일 뿐입니다. 은요호 기관의 마수가 어디까지 뻗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구를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않소이까? 과장이 지나치시오. 공자.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과장이 지나치다고요?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공자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어 보이는군요. 실제로 공자께서는 각하의 선단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습격까지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것만 보면 적들이 리스트를 파기하기 위해서 입막음을 하려고 했다는 정황으로 충분해 보이는데요??”


“캐시 각하까지 그런 말씀을…제 말을 먼저 들어보십시오. 이것은 사실 그런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속 시원하게 말해보시오, 후작. 솔직하게 말해서 그대가 뱉어내는 어설픈 변명을 들어주는 것도 지쳤소. 반면에 공자의 말과 행동에는 모든 개연성이 맞아떨어지는군. 만약에 내가 공자와 같은 처지였다고 해도 후작의 배에서는 쏜살같이 도망쳐버렸을 거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지그문트가 자신의 리스트를 반으로 접어버리면서 그렇게 외쳤다.


“생각해보니 각하도 의심스럽군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던 거죠? 제 기억으로는 무역공사의 간부와 함께 공자를 체포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게 무슨. 설마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이오??”

“허, 참. 아니라면 제대로 설명해 보십시오. 그때공자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마리오 각하까지…”

섣부르게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융단폭격을 당하는 베리우스를 보면서 카밀라는 주먹을 쥐면서 어깨를 부르르 떨기만 할 뿐, 아무런 참견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틈을 노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의 차례는 오지 않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리스트가 공개된 것만으로도 낭패도 이런 낭패가 아닐  없었다.


왜냐면 누군가가 리한이 넥타르에서이렇게 중요한 자료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쳐다본다면, 은요호 기관과 관련한 내용까지 확보하지 않을까 의심해보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렇게 정밀한 자료가 리한의 손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패는 T-7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는 확신도 심어주었다.

하지만 카밀라에게정말로 소름이 끼치는 일은 따로 있었다.


리한이 부른 시종들이 사람들에게 리스트를 넘겨주기 시작했을 때.

키가 작은 엘프 메이드가 자신에게도 서류를 넘겨주면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해왔다.


[반드시 마지막 장까지 유심히 살펴보라고 하시더군요.]

‘우리요원 중에서 넥타르와 공모하는 배신자는 없었을 텐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받아들었지만 역시 아무런 내용이 없는 백지 더미에 불과했다.


거기에 쓰여 있는 메시지는 딱  가지.


[공화국파에 나눠준 자료는 당신들의 사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깔끔하게 편집해 놓았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놀리는 거야?’


어처구니없는 내용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일단은 참을성 있게 메이드가 귀띔해준 대로 마지막 장까지 넘겨봤지만, 거기에는 더 짜증 나는 내용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가장 싸게 판다고 했을 때 구매하셨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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