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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화 〉(H이벤트)누가 적이고 아군인가?(8) (155/429)



〈 155화 〉(H이벤트)누가 적이고 아군인가?(8)

‘녀석의 태도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대답할지 기대되기는 하는군.’

막시밀리안이 그랬던 것처럼 카밀라도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숨겨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적당한 핑계를 꾸며내야 할 것이었다.

사정이 비슷한 것은 리한도 마찬가지.


어제 사건을 해명하라고 매섭게 쏘아붙이고 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것은 바닥에 드러누워서 배를 갈라 달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디로 이것은 누가 더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꾸며내서 자신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지를 겨루는 승부.

상대방의 위기대처 역량을 시험해보는 동시에 품고 있는 속내와 의중을 떠볼 수 있는 가벼운 워밍업, 위력 정찰이라고  수가 있었다.


리한은 자리에서일어서는 카밀라를 주목해서 쳐다보았다.


“각하들의 요망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우선은  소개부터 해야 하겠군요. 정식으로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앵커리지 무역공사의 오팔 왕국 지부장을 맡고 있는 카밀라 스틱스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역공사의 지부장이라고?”


“어째서 그런 사람이 후작 각하의 곁에…”

방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제가 정부의 요청으로 왕국 전체에서 행해지고 있는 록히드 플랜의 총괄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총괄 책임자라니? 하지만 담당자들은 이미 우리의 영지에…”

“그분들은 모두 저희 무역공사에 파견한 직원들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추후에 문의를 주시면 보다 구체적으로 해명과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역시 그렇게 핑계를 대는군.’

깜짝 놀라는 방백들하고는 다르게 리한은 이미 예상하던 답안이었기 때문에 손으로입을 가리면서 몰래 하품을 했다.

아마 누군가가 진짜로 문의해본다고 해도 여기에서 거짓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첩보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대외적으로 활동할  있는 그럴듯한 가짜 신분을만들어놓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이번 경우에는 무역공사 자체가 T-7의 활동을 위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면 각종 사업을 핑계로 첩보활동에 필요한 인력과자원을 자연스럽게 밀반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상투적인 수법이기는 했지만 여기에 록히드 플랜이라는 이름까지 꺼내든 효과는 확실했다.


“아이고. 문의라니요? 설마 간덩이가 부어버리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그런 대담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믿습니다. 믿고 말고요!”

“호호호호호! 설마 여기서 이렇게 귀한 분을 만나게  줄이야. 직원분들에게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작 각하에게는 정말 섭섭하네요. 이런 분이 방문하셨다면 진작 소개해주시지 그랬어요?”

“크흠.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것 참. 사람 무안하게…크흠, 크흠.”


순식간에 180도 변해버린 방백들의 태도.


“아니. 그게…”

“후작 각하를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십시오. 이번 회합에 참여하는 것은 저희 측에서 사정이 있어서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드렸던 겁니다. 하지만 방백 각하들께는 조만간 인사를 드리려는 참이었으니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여러모로 폐를 끼쳐드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그러실 수도 있죠.”


“맞아요. 저도 가끔 신분과 정체를 숨기고 유희를 즐기는데 상황과 때에 따라서 숨겨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잖아요? 세상에 비밀이 없는 사람이어디에 있겠어요? 그렇죠? 지그문트 각하.”


“물론입니다. 사정이 있다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죠. 하하하하! 전부 이해했습니다. 카밀라 양. 아니. 지부장님!”


리한은 이 모습에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주 설설 기어대는군. 해명하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였던 거야??’


황당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귀족, 특히 방백쯤이나 되면 현실적인 금전 감각에 굉장히 무감각해져서 경제적인 문제에는 아예 신경 자체를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국고가 텅 비어버리면 백성들을 쥐어짜면 된다는 발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르주아들이 노블 마크를 달고 싶어서 엄청난 뇌물을 싸들고 찾아가도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록히드 플랜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규모가 전혀 달랐다.

일단 돈의 액수도 액수였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동맹국들에게 앵커리지 공화국의 선진적인 금융 제도를 도입해서 경제구조 자체를 뜯어 고쳐버리는 종합 경제 지원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자국의 엘리트 금융가와 회계사들로 구성된 전문 팀을 각 동맹국 왕실과 유력한 귀족 가문에 경제 고문으로 파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이루어낸 경제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라서 지난 2년 동안에 오팔 왕국의 전체 세수가 3배로 뛰어올랐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것은 테세트 평야의 식민지를 수탈하면서 이루어낸 성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생산한 상품을 팔기 위해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줄 뿐만 아니라 공화국 세력권과 동일한 경제권으로 묶어서 무역 장벽을없애버리는 등의 전방위적인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화국파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가만히 있어도 황금알을 낳아주는 마술사들을 보내준 셈이었으니 이렇게 굽신거리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퍼포먼스에 속아서 대부분이 눈치채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록히드 플랜의 실체가 선의를 가장하고 있는 교묘한 경제 침략이라는 사실이었다.

‘엘리트 교육은 도대체  하려고 받았는지 모르겠군. 적어도 교사들은 학창 시절에 이런 문제를 가르쳐줫을 텐데 말이야.’


리한이 인간에 대해서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에서 하나는 뛰어난 교육을 받고 자라도, 받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멍청하게 행동하면서 제대로실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공화국파 귀족 대부분이 경제 문제가 단순하게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공화국에서 파견한 경제 고문에게 전권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공화국과 경제권이 묶여버리는 것은 물론이었고,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던 자체 산업들이 모조리 종속되어서 공화국 산업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는 하청 구조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오팔 왕국이 3~40의 이익을 발생시키면 앵커리지 공화국에서는 자동적으로 6~70의 이익을 가져가 버리는 산업 경제구조가 정착해버렸다는 소리다.


당연하지만 원래 100의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었던 블루 오션의 대부분을 빼앗겨버리는 셈.


장기적으로 보면 앵커리지 공화국은 자신들이 록히드 플랜에 쏟아부은 것에 몇백, 몇천 배에 이르는 이득을 동맹국들로부터 거둬들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대단히 안타깝게도 공화국파 귀족 대부분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아예 알면서도 무시해버리고 있었다.

사정이 비슷하기는 제국파도 마찬가지.


그나마 오팔 왕국에서 자생적인 경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세력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이 사실을 일찍 눈치채고 상업에 힘을 쏟아부은 크레이그 가문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루크 장군도 마찬가지였는지 방백들을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주제를 벗어나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져 버리자 성질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카밀라 지부장의 신분과 정체는 알겠소만 어제 물의를 일으켰던 금발 외국인은 도대체 누구였다는 말이오?”


“장군님. 그것은 이제 중요한 문제가…”

“닥치시오. 지그문트 방백! 애초에 이 문제는 그대가 해명하라고 했던 내용이 아니었소? 쓸데없이 이야기에 논점을 흐리지 말고  말이 없다면 가만히 다물고있기나 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거 참. 갑자기 회춘했다고 괜히 성질은…”


작은 목소리로 꿍얼거리기는 했지만 노장이 뿜어내는 기세에 압도당해서 항변하지 못하고 쭈구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비해서 북방 3가를 순식간에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카밀라는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침착하게 이야기를 주도해 나갔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 자리를 빌어서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지명하신 금발 외국인. 막시밀리안 파비안씨는 저희 무역공사의 주요 간부였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버린 나머지 다소간의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해프닝을 야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폐를 끼친 왕국의 모든 귀족 여러분과, 특히 가장 커다란 실례를 저지른 후계자님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정중한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리한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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