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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화 〉(H이벤트)공성전(6) (143/429)



〈 143화 〉(H이벤트)공성전(6)

“…저에게 이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뭐죠?”


“후후후후. 재촉하지 말고 들어보십시오. 이야기가 정말로 재미있어지는 것은 지금부터니까 말입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여유를 부리자 사라의 눈동자에서 이채가 어렸다.

누구도 모르는 아슈킬 가문 후계자의 과거사에 흥미가 생겼는지 훼방을 놓지는 않았기 때문에, 리한은 느긋하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회상에 빠질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때는 정말로 궁지에 몰려있었군.’

자신이 정박이로 불리며 한스 일가에서 노예로 부려지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 해는 왕국 전체의 작황이 형편없어서 보릿고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가장이라는 양반이 도박으로집안 재산을 탕진해버리는 바람에 일가 전체가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테세트 평야 덕분에 경제 자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지만 그것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난하고 못사는 농가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서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고 초근목피와 벌레까지 씨를 말려버렸다.

아무리 마스터 코어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무無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


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생사의 경계를오가는 지경에 내몰렸지만 그 순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다.


물론, 선의로 포장하기에는 지나치게 악의적이었지만.


[배고프니? 정박아. 자아~ 먹고 싶으면 개처럼 혓바닥을 내밀어서 헐떡여 보렴. 그러면 이 진흙이 잔뜩 달라붙어 있는 곰팡이 빵이라도 하나 집어 던져 줄 테니까 말이야. 오호호호호호!!]

“…서, 설마. 그것 때문에 살아나셨다는 말씀인가요?”


믿을 수 없는 경험담을 들려주자 사라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주인 아가씨께서 그날. 품삯으로 받아온 빵 중에 하나가 곰팡이에 슬어있었던 것이 제게는 구사일생의 행운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구걸하려고 필사적으로 재롱을 떨었습니다. 헥헥헥헥헥헥! 멍멍! 깨갱, 끄으으으응- 헥헥헥헥헥헥!! 이런 식으로 말이죠. 어떻습니까? 오랜만에 해보는 건데. 이 정도면 곰팡이  하나는 던져주실 수 있을  같습니까?”

“…”

참고로 그때 이렇게 행동했던 것은 리한의 의지가 아니었다.

백치나 다름이 없었던 정박이가 마스터 코어의 절박한 생존 본능으로 움직여서 흉내를 냈던 것이지만, 만약에 그가 같은 입장에 처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창피하시지도 않은 건가요? 아무리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해도 귀족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그렇게 비굴하게 행동하실 수가 있죠??”

“죄송하지만 정말로 창피한 행동은 거기에서 쓸데없는 체면을 차리다가 굶어 죽는 것입니다. 사라 크레이그양.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비참한 최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거기에서 곰팡이 슬은 빵으로 목숨을 연명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로 명예롭게 죽는 게 아니라, 이름 없는 노예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겁니다. 역사는 저를 모르고 기억 속에서도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을 테죠.”


“!!!”

“하지만 진짜 굴욕은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아, 아직도 뭔가 남아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왜냐면 저를 그렇게 비열한 함정에 빠트려서 승리의 권좌를 차지한 악당 녀석들이 만세를 부르며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테니까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수는 없죠. 후세를 위해서라도 역사에 그런 치욕을 남겨둬서는  되는 겁니다.”


깜짝 놀란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호, 혹시 지금 말씀하시는 게 래리님과 돌로레스님을 가리키시는 건가요?”

피식-


“뭐, 누구를 생각하시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리한은 슬그머니 답변을 회피하면서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요컨대 사라님께서 아무리 이런 식으로 제 자존심을 짓밟아봤자 소용없다는 겁니다. 겨우 그런 것으로 흔들리는 가벼운 체면도 아닐뿐더러, 목적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감수할 수 있으니까요. 가랑이 사이를 핥아드리는 것으로 접대가 부족하다면 발가락이나 엉덩이 구멍이라도 빨아드릴까요?”

“읏-”


추잡한 소리를 거침없이 뱉어내자 새빨개진 사라가 잔에다가 술을 벌컥벌컥 따라서 마셨다.

꿀꺽- 꿀꺽-


“휴-. 너무 이상한 소리를 들었더니 아무리 마셔도 취기가 올라오지를 않는군요.”


“정말로 취하시기는 했던 겁니까?”


“맞아요. 처음부터 멀쩡했죠. 언제부터 알아채셨죠?”

“취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성적이고 취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하시는 게 두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끄응- 거기까지 꿰뚫어 보시다니 저도 아직 부족한 모양이군요.”

“왜 이런 일을 벌이셨는지 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건…”

사라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우에에에에에에엥!!”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 하나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내면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

“하아- 이 애는 정말이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는 여방백.

덥썩!

그리고 질이 리한을 붙잡고 끌어안아 버렸다.

“우리 공자님에게 그렇게 슬픈 과거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으아아아아아앙! 정말로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줄도 모르고. 엉엉엉엉엉엉!!”


“자, 잠시만 진정하세요. 어째서 지금 타이밍에 당신이 사과를 하시는 겁니까?”


“죄송해요오오오오오오!!”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영문을 몰라서 진심으로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적당히 하렴. 질! 공자님이 곤란해하시잖아.”

“하지만 언니!! 그치만, 그치마아아아아안~~~~~~”

‘언니????’

시크하면서도 냉정해 보였던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쥐어짜면서 어리광까지 부리는 질의 모습에, 리한은 자신의 뒤통수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구원을 요구하며 사라를 쳐다보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건의 악역은 처음부터 제가 아니었다는 소리죠.”


“????”

진짜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그녀는 질을 억지로 떼어놓고서 입술을 양쪽으로 붙잡아서 위로 들어 올려 보여주었다.

“…뭣?!”


“보시다시피.”


뾰족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

“정식으로 소개드리겠습니다. 공자님을 습격해서 여기로 납치해  장본인이자, 세상에 단 3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조 에단 스크라이드 풀문의 피를 수혈받아서 흡혈귀로 영락해버린 제 여동생. 질 크레이그라고 합니다.”


“그, 그게 무슨…”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드리죠. 이 녀석은 엄청나게 소심한 얀데레 스토커 기질을 가지고 있답니다. 공자님을 보고 첫눈에반해버렸다고 하더군요.”


“언니!!!”


“??!!!!”


이제는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사나운 폭풍이 지나간 직후.


사지를 묶고 있던 수갑에서 풀려나 자유를 되찾은 리한은 무릎을 꿇고 반성하고 있는 자세로 앉아있는 질과 그녀의 보호자, 사라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저를 납치해서 침대에 묶은 사람이 처음부터 질 크레이그 양이었다는 말씀입니까? 전부단독 범행이었다고요?”

“네…”


“처음부터 경호원이 폭주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믿지 못하시겠다면 증거를 보여드릴게요.”

사라는 그렇게 말한 다음에 무영창 마법으로 손바닥에 작은 거울상을 만들어내서 리한이 자신의 목덜미를 확인해  수 있게 해줬다.

그녀의 말대로 선명하게 나 있는 두 개의 송곳니 자국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를 마비시켰던 미지의 힘은 흡혈귀 특유의 능력이었다는 건가?’

진조의 피를 수혈받았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상당히 고위 계급에 속하는 모양이었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힘이 아닐 수가 없었다.

“혹시 저는 흡혈귀로 변하게 되는 겁니까?”


“그, 그건 아니에요. 공자님!”

질이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어서 부인했다.

“여동생의 피를 수혈받으면 모르겠지만 빠는  자체는 어디까지나 포식 행위에 불과하거든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놀랐습니다.  동생은 낯을 심하게가려서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흡혈행위를 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설마 다짜고짜 납치를 해버리다니…”

“공자님의 목덜미가 너무 야시시하고 맛있어 보여서 그만….”


“함부로 쳐다보지 마십시오.  몸을 노리고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이런 변태 같으니라고.”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변태라니. 으으으으으.”


리한의 말에 수치심에 어쩔줄 모르는 표정으로 발가락을 꼬물거렸다.


“너무 그렇게 여동생을 몰아세우지는 말아주세요. 공자님. 솔직하게 말해서 저도 갑자기 돌발행동을 일으켜버리는 바람에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을 조금 전환해 보시면 귀엽잖아요? 공자님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나머지 납치, 감금을 해버리다니.사랑에 빠진 소녀의 행동력이란 위대하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어, 언니! 그, 그런 것까지 말해버리면…”

“두 번만 더 위대했다가는 제 목숨 자체가 남아나지를 않겠군요.”

“으으으으으. 죄송합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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