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후랑추전랑(7)
“앗, 아아…이렇게 쫓아버리면 안 되는데. 하아-”
“그렇게 아쉬워하지 마라. 어차피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을 거야. 쓸모없는 녀석은 이번 일에서 빠르게 치워버리는 게 낫지.”
그가 팔짱을 끼고서 말하자 카밀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동물귀가 솟아나 있던 머리 주변을 긁적거렸다.
“저기 말이죠. 선배는 스미스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허접한 민폐 쓰레기 자식이 아니라고요?”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짧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물론이에요. 선배가 비록 허영덩어리에 남을 깔보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현장 판단이나 대응 자체는 틀리지 않았어요. 회의실에서 봤던 그 후계자는 제가 보기에도 그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거든요.”
“그 말은 장래에 우리 앵커리지공화국에 장애물이 될지도 모르는 인재라는 소린가?”
“바로 그래요. 단적인 예로 이번 케이스만 봐도 얼마 안 되는 제한된 조건과 자원을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농락했잖아요?”
“흠…”
앵커리지 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지만, 표면적으로 자유 진영의 리더이자 국제 질서를 지키는 정의의 수호자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마음대로 침략하거나 정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철저한 개입주의.
동맹국의 이권을 지켜준다거나 탄압받는 민중들을 해방하겠다는 다양한 핑계를 들어서, 다른 나라의 내부 분쟁에 멋대로 개입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일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리가 없었다.
주변 국가들이 앵커리지 공화국에 의존해서 자립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수법을 동원했고, 지금처럼 뛰어난 인재가 나타나려고 하면 제거하거나 정치적으로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막시밀리안이 예전에 T-7의 신임요원 선발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단순하게 아버지의 후광에 기대기만 하는 머저리는 아니라는 소리군.”
“정말로 가망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그분의 아드님이라고 해도 엠프리스께서 벌써 쫓아 내버리셨을 거라고요. 이만한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처분하지 않고 강등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인데…틀림없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밑바닥에서 현장경험을 쌓아보라는 의미로 지시를 내리신 거겠죠.”
“하하하하하! 그 아니꼬운 녀석에게 그렇게 기특한 구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말이야. 오히려…”
“왜 말을 하다가 마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또 그렇게 어린애 취급을 해버리시고…”
대답하는 대신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스미스는 막시밀리안이 이번 조치에 앙심을 품고 또다시 사고를 저지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일단. 에이전트를 3명 정도 붙여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해둬야겠군. 녀석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말이야.’
카밀라는 T-5에 소속되어 있는 에이전트 중에서도 가장 감이 좋고 머리 회전이 빨라서 뛰어난 수사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타인의 악의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감각하고착해빠졌다는 첩보 기관의요원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엠프리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특별 보좌로 임명한 것일 터.
스스로도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사양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봐줄 예정이었다.
“그것보다 조사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단서가 있다고 말이야.”
“네. 그래서 선배만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보아 하니까 쉽게 가르쳐주지는않을 것 같네요.”
“그래? 후후후. 그런 거라면 휴게실에서 차라도 마시며 기다리고 있도록 해라. 식기 전에 돌아오도록 하지.”
뚜두두두둑! 두두두둑-
좀이 쑤신다는 것처럼 근육을 풀면서 말하자 대번에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채버리고 기겁을 했다.
“포, 폭력은 안 돼요. 금지, 금지!!”
“괜찮아. 잠깐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려는 것뿐이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들을 내용이 아니라니까요???”
잠시 옥신각신한 끝에 간신히 뜯어말렸다.
“애초에 선배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참고삼아서 알아두려고 했을 뿐이에요. 협상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면 아무리 선배가 무능하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당해버렸을 리가 없잖아요.”
여전히 악의가 없는 잔인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일리는 있었다.
“…알겠다. 그렇게까지 말하겠다면 이번에는 특별히 넘어가 주도록 하지. 하지만 협상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왜냐면 나는 만에 하나라도 저 새끼가 다시 내 상관으로 돌아오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거든.”
“무, 물론이에요. 저만 믿어주세요! 아마도…”
마지막에 자신감 없게 말꼬리가 늘어나는 것을 본 스미스는 나중에 몰래 막시밀리안과 개인적인 면담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뭐지?”
“일단은 정보를 모아야 해요. 후계자 일행 전체가 이 배에 탑승한 후에 무엇을 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해서 타임테이블로 세세하게 정리해 보려고요.”
“탐문 수사를 하자는 말이군.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물론이에요! 왜냐면 제 생각이 확실하다면 틀림없이 이상한 점들이 튀어나올 테니까요.”
“이상한 점이라. 그게 대체 뭐지?”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조사를 진행하도록 하죠. 일단은 관련자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하도록해요!”
카밀라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의욕을 내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지만 관련자들이라…후계자 개인에게는 우리 측에서 모니터링 요원을 배치했으니까 알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나머지 일행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려면 직원이나 노예, 귀족들을 불러와야 할 텐데 상황이 어렵게 되었군.”
막시밀리안이 일을 너무 대차게 말아먹는 바람에 군인들의 협력을 기대할 수도 없었고 베리우스는, 베리우스대로 사태를 수습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편이 확실한베리우스 각하에게 다시 한번 협조를 요청해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알겠다. 곧바로 연락을 취해보도록 하지.”
잠시 후.
예상했던 대로 그는 몰려드는 민원사항을 처리하느라 지독한 몰골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공화국파의 수장답게 훌륭하게 저자세를 유지하면서 통신 요청에 응하는 모습이 앞잡이, 매국노, 개돼지, 민족반역자 등등의 다양한 단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솔직하게 도움이 되었다.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베리우스.
[그렇습니까? 하아- 그렇다면 막시밀리안공은 결국 경질되셨다는 말씀이군요.]
“굉장히 아쉬운 모양이로군?”
[따,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지. 그분의 아버님께는 이래저래 신세를 많이 져왔던 터라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면목이…]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이번 협상이 원만하게 마무리되면 뒤탈도 없을 테니까.”
[오오오. 그렇습니까?]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거짓말도 아니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진행하는 탐문 수사에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하.”
[알겠습니다!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협조해드리죠. 하지만 직원이나 노예들이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귀족과 경비 인력들을 보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라서…]
“알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죠. 그렇게라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 일행분들께서 체류하시던 시간에 담당 구역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을 보내드리면 되는 겁니까?]
“거기에 더해서 루크 장군의 거처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루크 장군이요??]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렵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랫것들을 동원하는 일이야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만 왜 그런 요청을 하시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면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밀라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요청하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통신이 끝나기 무섭게 스미스가 질문을 해왔다.
“루크 장군이라고? 그게 바로 네가 말했던 단서라는 건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심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에요. 왜냐면 루크 장군님께서 갑자기 건강해지셨거든요.”
“건강해졌다??”
“네. 아마도 틀림없을 거예요. 왜냐면 협상장에서 그분이 오셨을 때. 평소에 느껴지던 무기력하고 죽음이 임박한 듯한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는 단순하게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선상에서 쩌렁쩌렁하게 호령하는 것을 보고 확신했어요. 그분의 건강 상태가 갑자기 좋아졌다는 것을 말이죠.”
쉽사리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냄새라. 하하하. 그러고 보니 너는 흑견족이었지? 역시 수인족의 피는 속일 수가 없는 건가…”
“뭐. ss-005를 사용하면 평범한 인간하고 다를 바가 없지만요.”
“그렇다면 오히려 복용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군. 그래서 다른 단서는 뭐지?”
이 질문에 카밀라는 앉아있는 의자를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시키고는 턱을 괴면서 입을 열었다.
“후계자님은 대체무슨 기준으로 측근 5명을 선발해서 이 배에 탑승하신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