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후랑추전랑(6)
“엠프리스!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실패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만약에 이 사실이 대디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 입을 두 번 다시는 열지 마세요. 이번이 마지막 경고입니다. 당신의 배지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세요.]
“크윽!”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막시밀리안이 꼴사납게 애원했지만, 결국에는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배지를 내려놓았다.
[에이전트 카밀라. 앞으로 나오세요.]
“네~에!!”
처참한 얼굴로 돌아서 버리는 그하고는 다르게 자신의 이름을 불린 여성이 활기찬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하면서 달려 나왔다.
“에이전트 카밀라! 지금 대령했습니다!!”
차려자세로 경례를 마친 그녀는 다른 에이전트와 마찬가지로 정장 차림에 검고 끄트머리가 새하얀 머리카락을 트윈테일 스타일로 정돈하고 있는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똘망똘망한 갈색의 눈동자와 구김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천진난만한 표정.
보기만 해도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건강한 모습이 주변에도 활력을 전파해주는 것만 같았지만, 그녀의 생김새에는 평범한 인간하고는 명백하게 다른 요소가 존재하고 있었다.
부웅- 부웅- 부웅-부웅-
흥분을 억누르지 못해서 정신이 사납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차게 흔들리고 있는 강아지 꼬리.
마찬가지로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움찔거리는 검고 윤기 나는 짐승의 귀.
화면 너머에서 이런 카밀라의 모습을 확인한 엠프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어버리고 말았다.
[에이전트 카밀라! 어째서 야생을 개방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분명하게 주의를 드렸죠?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정해진 시간에 ss-005를 복용해서 수인족의 특성을 내보이지 말라고요.]
“물론, 명심하고 있습니다. 엠프리스! 하지만 ss-005를 복용하면 엉덩이와 귀가 너무 가렵단 말이예요! 업무 효율을 위해서라도 오늘처럼 두건과 망토로 적당히 가리고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불만 사항이라면 연구원들에게 말해서 약효를 개선하라고 해두겠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허락 없이 ss-005의 복용을 중단하는 것을허락하지 않겠습니다. 특히나 당신이 T-5라는 이름을 계승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그게 정말입니까???”
이 말을 듣고 반색한 그녀가 다시 한번 꼬리를 붕붕 흔들어대면서 두 눈을 반짝거렸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당신이 그 이름에 어울리는지 시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시켜만 주세요. 엠프리스!!”
의욕에 가득한 표정으로 신나서 대답하자 화면 너머에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를 어떻게 구슬리냐는 겁니다. 하지만 해결 방법을 물어보기 전에 에이전트 카밀라. 어째서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전임 T-5 선배님의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큭!”
자신을 비난하는 말에 막시밀리안이 이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 감히 끼어들지는 못했다.
[준비 부족이라면?]
“전쟁의 기본 원칙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슈킬 가문의후계자는 우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해서 나온 게 보였지만, 우리는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섣부르게 작전을 수립한 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습니다. 카밀라. 듣고 있으신가요? 에이전트 막시밀리안. 이게 바로 당신이 첩보 기관의 요원으로서 기본적인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입니다. 상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일을 진행하다니…]
“며, 면목 없습니다.”
한심하다는 듯이 말꼬리를 늘이자 고개를 떨어트리면서 대답을 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말해보세요.]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루크 장군의 항명으로 공화국파의 협조를 일체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게다가 협상의 주도권 또한 상대방에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전임 T-5선배님이 세운 계획을 계속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원인 분석을 계속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전임자가 아니라 당신이 세운 플랜을 듣고 싶으니까요.]
계속되는 굴욕에 막시밀리안의 표정이 더 처참해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리고 말았지만, 두 사람은 일체 신경 쓰지 않으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후계자가 저희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 현재로서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상대측에서 떠나기 전에 분명하게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가장 싸게 팔아줄 때 사지 않은 것을후회하게 될 거라고. 이렇게 말을 꺼낸 이상. 공화국에서 도저히 수용하지 못할 터무니없는 요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아- 옳은 말씀이에요. 정말로 에이전트 막시밀리안에게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군요. 차라리 첫 번째 제안이라도 받아들여 주셨다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
주변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이번에는 입술조차 깨물지 못하며 바닥만 내려다봤다.
[그렇다면 승리가 아니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겠군요.]
“거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사양하지 말고 이야기해주세요. 에이전트 카밀라.]
“2차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리한 폰 아슈킬이라는 인물을 조사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도 모릅니다. 이런 상태로 협상을 재개해봤자 오늘 같은 실태를 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공화국파의 협조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에요. 게다가 시간도 촉박하고요. 아무런 단서도 없이 조사에 착수해봤자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말을 들은 카밀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단서라면 있습니다. 엠프리스!”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저에게 맡겨주시면 내일 정오에 협상을 시작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수집해서 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면서 꼬리를 붕붕 휘둘러대자 엠프리스는 잠시 생각에 빠진 것처럼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이전트 스미스!]
“부르셨습니까?”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하면서 앞으로 나온 사람은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 빨간 피부에 머리카락을 스포츠로 짧게 깎고 있는 전신근육남이었다.
[T-5의 임시 대행인 에이전트 카말리를 보좌해주세요. 옆에서 돌봐주면서 너무 촐싹거리다가 사고를 치지 않도록 제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에에에엣?! 저한테 모든 전권을위임해주시는 거 아니었나요??”
[이번 협상을 무난하게 마무리해주시면 임시가 아니라 정식으로 T-5에 임명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에이전트 스미스를 계속 보좌로 두어야 하실 테지만요.]
“그럴 수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이라니…”
“맡겨주십시오. 엠프리스!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은 공화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앵커리지 공화국을 다시 위대하게!!”
에이전트들의 우렁찬함성을 뒤로 통신을 종료한 그녀는 화면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
잠시 후.
아무런 말도 없이 방에서 나가버리는 막시밀리안의 뒤를 카밀라가 열심히 뒤쫓아 갔다.
“선배, 선배!!”
“…”
“선배에에에~ 선배에에에에~~~!”
“유 퍽킹 이디엇! 따라오지 마라! 남의 자리를 빼앗은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말을 거는 거냐!!”
“에에에엑?! 아, 아니. 빼앗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죠. 엠프리스님께서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그렇게 정하셨을 뿐이잖아요??”
“크으으으으윽!!”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사람 속을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뒤집어버리자, 끓어오르는 신음을 참아내지 못하며 주먹을 쥐고서 부르르 떨었다.
“그러지 말고 도와주세요. 선배~ 내일 있을 협상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선배님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양손을 공손하게 모으면서 부탁했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셧업!!! 이 더럽고 비열한 비스트 같으니라고! 감히 너 같은 하찮은 이종족 출신에게 T-5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어울릴것 같으냐?! 어디 두고 봐라. 우리 파비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오늘의 수모는 반드시 복수해주마! 너만이 아니라 그 빌어먹을 엠프리스까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그 순간.
막시밀리안의 배후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까지.”
“?!!!”
“그 이상. 자신의 직속 상관을 향한 폭언을 멈추지 않는다면 네놈의 하찮은 목숨을 여기에서 끝장내주마.”
“너, 너는…내, 내가 누군 줄 알고…”
스미스가 뿜어내는 살기와 위압감에 압도당해버린 그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애써 강한 척을 했지만, 그는 선글라스의 브릿지를 고쳐세우며 다시 한번 저승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여기는 파비오 가문이라는 이름을 듣고 쩔쩔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네놈의 앞마당 놀이터가 아니다. 막시밀리안. 소꿉놀이를 하고 싶다면 당장 짐을 싸서 고향으로 꺼져라. 아니면 새로정립된 상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철저하게 가르쳐 주지.”
“히이이이익!!”
막시밀리안은 혼비백산하며 한심한 꼬락서니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