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후랑추전랑(4)
“금방 오는군.”
“지시하셨던 대로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최대한 들키지 않게 가까이에서 따라오라고 명령해뒀습니다.”
루돌프의 보고에 리한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아스트라세 가문의 전함이 접근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후계자님!!!”
뒤를 돌아보자 아비규환으로 혼란에 휩싸여있는 장내에서 필사적으로 인파를 헤치며 다가오고 있는 휴크의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하자 폴짝폴짝 뛰면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녀석.
“여, 여기입니다! 후계자님! 제발 이쪽을 좀 봐주십시오!”
“무슨 일이냐? 휴크.”
태연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불평,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고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후계자님!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안하무인이라도 그렇지. 공화국파의 중요한 회합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시다니…제정신입니까?”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군. 아무래도 네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버린 모양이구나?
“없애버릴까요? 도련님.”
“아, 아니. 저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루돌프가 매섭게 노려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단숨에 위축되어서 깨갱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너는 따라오지 말고 계속 파티나 즐기도록 해라. 별일 아니니까 금방 해결될 거야.”
“이게 별일이 아니라니도대체 무슨 사단이 일어나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실지 뇌 구조가 궁금하네요.”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뒤늦게 등장한 막시밀리안 일당이 계단을 타고 씩씩거리면서 우르르 올라오는 게 보였다.
회의실에 있던 수십 명의 에이전투와 공화국파의 정예 무장들을 모두 데리고 나온 모습이 화가 나도 단단히 나버린 표정.
“스탑 라이트 데어!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시오. 공자! 도대체 무슨 수로 빠져나갔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이런 식으로나를 농락하다니…”
“아는 사람입니까? 도련님.”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왓?!!!”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에 있는 분 중에서 저 외국인신사가 누군 줄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웅성웅성!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청량하게 퍼져나가는 리한의 목소리에 아니나 다를까, 귀족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사람의 등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기시작했다.
[듣고 보니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 외국인은 누군데 후작 각하나 루크 장군과 함께하고 있는 거지?]
[혹시 지금 저 녀석이 후계자님을 쫓고 있는 건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큭?!”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다른 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난데없이 등장한 외국인 하나가 자기네 나라의 방백을 향해서 반말로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해도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런 사정을 숨기고 있던 것은 일반 귀족들을 향해서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막시밀리안이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리한은 이번에는 베리우스를 쳐다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각하! 하지만 이번 회담 장소는 당신이 준비하신 그 음침하기 짝이 없는 지하 회의실에서 몰래 진행하지 마시고, 우리 세경가의 전함 위에서 모든 방백 분께서 지켜보는 가운데 떳떳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통신 채널은 내일 정오까지만 열어두겠습니다. 그때까지 답신이 없다면 이번 협상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공자! 공자!!!”
“웨이트! 나를 빼놓고 마음대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쾅!!!!
그 순간에 아스트라세 전함의 충각이 배의 후미를 무시무시한 기세로 들이박아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세차게 요동치는 선상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
순간적으로 배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루크를 제외한 공화국파의 무장들은 지레 겁을 먹으며 자세를 낮추고 웅크려버렸다.
하지만 마법으로 강화되어있는 두 척의 배는 겨우 그런 충돌에 부서지기에는 둘 다, 너무나 튼튼했다.
오히려 이것을 기다리고 있던 리한 일행은 배가 크게 출렁거리는 타이밍을 이용해서 단숨에 뛰어올라서, 물보라가 튀어 오르는 아스트라세 가문의 전함 마스트 위로 사뿐하게 착지를 했다.
“잊지 마십시오. 각하! 내일 정오까지입니다!”
“노, 놓치면 안 돼!”
“어서 뒤따라 가라! 어서!!”
고오오오오오오-
“윽?!”
뒤늦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공화국파의 무장들이 뱃전으로 우르르 몰려갔지만, 기회를 봐서 도약하려는 순간에 반대편에서 이미 완벽하게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팔콘 전사들이 매섭게 투기를 뿜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소린가?”
“어떻게 그럴 수가…”
솨아아아아아아아-
무장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는 사이에 아스트라세 가문의 전함이 돛을 펼치고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크기면 크기, 무게면 무게.
수많은 초대객들과 그들에 부속되어있는 짐더미. 연회용품까지 중량의 한계까지 가득 실어서 무섭기 이를 데 없는 후작의 선단하고는 다르게, 아스트라게 가문의 전함은 가벼운 군선의 위용을 과시해 보이면서 쏜살같이 질주해 나가기 시작했다.
“갓 뎀! 도대체 왜 이렇게 다 멍청하게서 있는 겁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붙잡아서 여기로 데리고 오십시오. 어서!!”
“아, 알겠습니다!”
막시밀리안이 호통을 치자 간신히정신을 차린 베리우스가 지휘관에게 허둥지둥 신호를 보냈다.
삐이이이이이익!!
휘슬 소리가 대기를 찢으면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자 수면 위로 여러 개의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라미아 용병들.
“지금 당장 파도술사들에게 강의 흐름을 역류시키라고 말해라! 도망치고 있는 전함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말고 안전하게 여기까지 데려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후작의 명령에 힘차게 대답한 라미아 술사들이 동그란 구체를 들고서 자신들의 언어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고 생각한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저, 저게도대체 뭐야?!”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라미아들의 눈앞에서 갑작스럽게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천천히 거인의 형태를 갖추며 앞길을 가로막아버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스튜피드! 넥타르가 만들어냈다는 합성생물 박카이가 아닙니까? 이미 보고를 들어놓고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런 멍청한…”
“물론, 알고 있습니다. 막시밀리안 공! 하지만 그런 괴물이 어째서 여기에? 대관절 누가 저것을 조종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아슈킬 가문의 공자가 생각이 있다면 감히 혈마법사들과 결탁하지는 않았을 텐데…”
“banoodles!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마십시오. 라미아들에게 어서 명령을 내리란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막시밀리안 공!”
삐이이이이이이익!
매섭게 재촉하자 등쌀에 떠밀린 그가 지휘관들에게 계속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이상하게도 라미아들은 휘슬소리를 무시해버리고 단체로넋이 나가버리기라도 한듯이 박카이를 올려다보며 멍하니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언다인?]
[언다인. 마더 오브 라이프!]
[언다인, 언다인, 언다인, 언다인!]
“뭐?”
황당한 상황에 지휘관들은물론이고 베리우스까지 자신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고 있는 사이에, 먼저 상황을 파악한 막시밀리안이 앞으로뛰쳐나오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댐, 퍽킹 애니멀!! 이것은 너희들이 숭배하는 언다인이 아니다! 사악한 혈마법으로 만들어진 완전히 다른 종류의 괴물이라는 말이다. 어서 공격해라. 녀석을 부수고 임무를 수행하란 말이다. 어서!! 제기라아아아아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있는 대로 악을 썼지만 하찮은 인간이 그러거나 말거나 깔끔하게 무시해버린 라미아들은, 자신의 신상神像을 둘러싸고 빙글빙글회전하면서 축복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악!
삐이이이이익-
당황한 지휘관들이 채찍과 휘슬을 요란하게 불어대면서 그녀들을 몰아세웠지만, 이미 폭력과 협박으로는 통하지 않는 무아지경의 단계.
그러는 사이에아스트라세 가문의 전함은 유유하게 사정권을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베리우스와 막시밀리안으로서는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홀리 쉿! 이렇게 된 이상.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군. 칼센 경! 지금 당장 블랙 이글 기사단을 소집해 주십시오. 이렇게 된 이상 그리폰 나이트를 모조리 동원해서라도…”
하지만 그 순간.
지금까지모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루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추태는 여기까지요. 막시밀리안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