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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뱃놀이(6) (125/429)



〈 125화 〉뱃놀이(6)

이렇게 연달아서 핀잔을 듣자 본인도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모습을 감춘 후에 정상적인 연회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덕분에 따로 입장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지금 리한이 신경을 쓰는 것은 그가 아니라 이리나였다.


똑똑똑!


[죄송하지만 조금만  누워있겠습니다. 아버님.]


“나다.”

[#$%&@!!]

쿵!

선실의 문을 두드리면서 그렇게 말하자 너무 놀라서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었다.


“들어가겠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도련님!!]

“3초 기다려주지. 1초. 땡!”

“히이이익?!”

벌컥!


갑자기 문을 열어버리자 이상한 비명을 질러대는 그녀.

어쩔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근처에 있는 눈가리개를 후다닥 집어 들어서 자신의 두 눈을 잽싸게 가려버렸다.

“크흠. 무슨 일이십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태연한 척 목소리를 까는 게 안쓰럽기까지 했다.

“반대로 이쪽에서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자, 잠시 마음의 눈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용케도 빠르게 변명을 생각해냈다 싶었다.

“그래? 참신한 수련법이군. 효과는 있고?”

“무, 물론입니다. 이렇게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감을 확장하는 것으로 적이 언제, 어떤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온다고 해도 주저없이 대처를…히야아악?!”


“후우-”


신월보를사용해서 몰래 등 뒤로 돌아가 뜨거운 입김을 목덜미로 불어 넣자 놀란 거북이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움츠러 들었다.

“무, 무, 무, 무, 무스으은?!”


“약점 투성이로군.”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귀여우니까 상관은 없는데…”


“귀, 귀, 귀, 귀, 귀엽??!”


“계속 그렇게 눈을 가리고 있으면 이번에는 깨물어 버리겠어.”


“#$%&@!!”


이 협박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비명을 집어삼키며 들썩거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가리개를 벗으며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도련님…”

“심안 수련은 포기한 거야?”


“으으으으-”


곤란하다는 듯이 눈썹의 꼬리가 내려가면서 울먹거리는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개인 선실이라서 그런지 이리나의 모습은 흐트러져 있었다.


얇은 캐미솔 차림에 맨살이 드러난 어깨는 분홍색으로 달아올라 있었고, 찰싹 달라붙은 노란색 돌핀 팬츠를 입고 침대에 W자세로 앉아있는 자세에 둥그스름한 엉덩이가 강조되어 보였다.


연무장에서 보여준 늠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소녀의 프라이버시 공간에는 달콤한 꽃향기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제야 예쁜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구나.”


“저, 적당히해주십시오! 3년 동안 능구렁이로 변해버리신 겁니까?”

궁지에 몰리자 정색하면서 따졌다.

“미안해. 하지만 네가 이렇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야. 예전에 진작 이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훨씬  가깝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후계자의 심정을 대변해보며 말했지만 오히려 표정이 어두워졌다.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저에게 그런 자격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폰 사건 때문에?”

“…”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모습을 보니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 사건은 용서를구한다고 받을 수 있는 실수가 아니었지. 이기적이고 경솔한 행동 때문에 사람이 몇이나 죽어버렸으니까 말이야.”


“알고 계신다면…”

“하지만 나는 너를 구해준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힉?!!”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깜짝 놀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부터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이리나.”

“도, 도, 도, 도련님??!!”

갑자기 다가와서 자신의 엉굴을 양손으로 붙잡아 버리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지만, 리한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과거에 인간이었던 또 하나의 자신이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시간을 돌려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너를 구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 차가운 형장에서 내가 구하려고 했던 사람은 루돌프도, 아스트라세 가문도 아니었어. 오직 하나뿐이었다!”

“!!!!”

충격적인 고백에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세차게 흔들렸다.

“어째서 그런…저는, 저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었냐고? 혹시 마조히스트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당연하지!!!”

거꾸로 호통을 치면서 단숨에 그녀를 압도해버렸다.


“그래도 동경했었다는 말이다! 가문의 전통과 명예, 역할과 책임!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에 의해 멋대로 규정지어진 운명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너만이,  많은 귀족 자제 중에서 오직 너만이 저 자유로운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지 않았었느냐!! 그런 너의 날개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날개가  앞에서 무참하게 꺾여져 나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냐!!”

“흥그으으으으읏?!?!!”

거의 사랑 고백이나 다름이 없는 열렬한 성토가 터져 나오자 그녀는 마치 벼락을 맞은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소년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이유가 그러한 것이었을 줄이야.

“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건 너무 비이성적인…”


“알까보냐! 후계자로서의 책임과 의무? 중립을 유지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라고? 그따위 것들은 모두개나 줘버리라지!! 너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라도 다시 내 목을 그을 수 있다!!”


“히기야아아앗?!!”

이리나는 가버리고 말았다.


“하여간에 눈치도 더럽게 없는 멍청한 여자 같으니라고. 예전에도 말하지 않았었느냐? 측근 역할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솔직하게 살아가라고 말이야. 그런데 쓸데없이 구해준 은혜를 갚겠다면서 되려 자신의꿈을 모조리 포기해 버리다니. 게다가 주화입마까지 들어갔었단 말이냐?”

리한은 연민에 가득한 표정으로 이리나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저는 그것이…그러니까…”

“나도 알아. 지금 와서 블랙 이글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보라고 해도 어차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거지?”

“…”


침묵으로 긍정을 표시해 왔다.

“예전부터 너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었으니까 말이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도련님이 설마 그런 마음으로…”

“쉬잇!”


살짝 떨어진 리한은 그녀가 떠들지 못하게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아버렸다.


“쓸데없이 떠들어대지 마라. 내가이런 말을꺼낸 것은 사과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야. 이제부터는 우리 사이에숨기는 것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너는 내 것이다. 대련에서 승리했을 때 선언했듯이 순결도, 몸과 마음까지 모조리 말이야.”

“히끅?!”

새하얀 머리카락을 사르륵 흘러내리면서 말하자 얼굴이 더 빨개질  없을정도로 빨개져 버리면서 세차게 딸꾹질을 해왔다.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참고로 다른 선택사항은 옵션에 없어.”

“…”

끄덕.


시선을 내리깔면서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후후후후. 그래야  여자지.”


“아…”


품속에 끌어안으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헝클어버리자 새빨개지며 증기를 뿜어내었다.


“기절하지 마라. 저번처럼 기절해 버렸다는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창피한 일을 해버릴 테니까.”


“#$%&@!!”


기묘한 신음을 집어삼키기는했지만 협박이 통했는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이 모습에 그대로 덮쳐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베리우스 후작과 합류하기로 약속한 지점까지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문 바깥에 방해꾼들까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그녀를 밀어내었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나와라. 이제부터 나는 호랑이 굴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런데 내 등을 지켜야 하는 측근이 이렇게 얼빠진 상태로 있으면 다른 제후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 아, 알겠습니다. 도련님!”

[서방님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

귓속말을 속삭여서 다시 이상한 신음을 뱉어내게 한 리한은 신월보를 사용해서 기척을 죽이고 이동해서 문을 단숨에 열어버렸다.

우당탕쿵쾅!

귀를 대고 엿듣고 있다가 쓰러지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루돌프 부자.


“아, 아버님?!! 랜달??!!”

깜짝 놀란 이리나가 반사적으로 이불을 잡아당겨서 자신의 몸을가렸다.


“커험, 커험, 커허허험!! 아, 아니. 잠시 화장실이 급해서 서두르고 있었는데 선실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그만…”


“그, 그렇습니다! 절대로 엿들으려고하던 게 아니었습니다. 누님! 도련님!!”


“화장실은 저쪽 반대편으로알고 있다만?”


“어이쿠. 그랬습니까? 허허허허. 나이가 나이다 보니 벌써 치매 기운이 있는지…크흠! 하하하하하! 하지만 덕분에 도련님의 마음은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역시 이 루돌프의 눈은 틀리지 않았었군요! 도련님 같은 진정한 사나이라면  딸을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응?”


휘오오오오오오-

갑자기 무시무시한 살기와 함께 북풍의 싸늘한 바람이 불어닥치자 루돌프 부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러. 니. 까. 아. 버. 님. 과. 랜. 달. 은. 처. 음. 부.터. 모. 두. 듣. 고. 있. 었. 다. 는. 말. 씀. 이. 로. 군. 요?”

“따, 딸아?”

“누님??”

“잠영潛影”


스르르륵-

“도련님?!!”


리한이 신월보를 사용해서 안개처럼 사라져버리자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거기에 신경  겨를도 없이 이리나에게서 북극광을 연상하게 하는 새하얀 오라가 뿜어져 나오자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만개해라. 천영-”

“자, 잠시만 기다리거라. 딸아!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무투기를 사용했다가는 으아아아악?!!”

“맞습니다! 누님. 오히려 가족 공인으로 맺어진것이나 다름없으니 이것은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엇, 엇, 어어어어억?!!”

마지막까지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촐싹거리던 부자의 비참한 절규가 한참 동안이나 길-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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