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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화 〉뱃놀이(1) (120/429)



〈 120화 〉뱃놀이(1)

잠시 후.


리한은 취조를 마치고 모든 인원을 불러모아서 훈계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인생에 수영이 필수는 아니지만 배워둬서 손해볼 것은 없다. 특히 너희  사람은 키티 하츠의 직원들이 아니냐? 만약에 손님이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쩔 셈이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 애초에 수위가 별로 높지도 않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구명 장비들이 있는데…”

찌릿!


“새, 생각해보니까 이번 기회에 배워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눈치 없이 입을 열었던 바츠코가 따가운 눈총 세례를 받고서 쭈그러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수영 교습을 시켜주겠다.  2 의상실에 모두가 입을  있는 수영복이 준비되어있으니까 갈아입고 한 명도 빠짐없이 집합하도록.”


‘틀림없이 성희롱을 하려는 거야.’

여성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슈퍼갑의 횡포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감히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아침을 먹기 전까지 2~3시간 정도밖에 여유는 없을 테지만 다들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요령 정도는 터득할 수 있겠지.”

이 말에 나디아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뭐지?”


“소녀도 참가해야 할까요? 서방님.”

“예외는 없다!”


“냐아아앙~”

단호한 목소리로 윽박지르자 고양이 귀가 축 늘어지면서 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자정까지 종족 번식에 힘을  리한은 양팔에 나디아와 필리아를 끌어안고 오랜만에 편안한 잠에빠져들 수가 있었다.

잠시 동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리운 꿈을 꿨지만 약속의 새벽 2시.

파지지지지직!

“윽?!”

세멜레의 지팡이가 발휘하는 동기화로 인해서 어쩔  없이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현자 타임.


“도대체 나는   자신과 싸웠던 거지?”


처음부터 예상했던 후회였지만 진한 아쉬움이 몰려오는 바람에 한동안 창가에 기대어 앉아서 달을 올려다보며 자아 성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같은 시각.

맑은 밤하늘 아래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조용히 머금고 있던 베르디 강이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새하얀 안개로 한 치 앞도 분간하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갑자기 날씨가  이래?”


위에서 내려온 조업 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야간에 몰래 낚시 그물을 던지고 있다가 눈살을 찌푸리는 어부들.

통- 통- 통- 통- 통-

“이게 무슨 소리지?”


“북치는 소리 같은데.”


“도대체 누가?”


계속되는 기이한 현상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가 돌연, 거대한 실루엣과 함께 커다란 상아를 연상케 하는 매끈한 형태의 전함이 코앞에 나타나면서 낚싯배들을 집어삼킬 기세로 접근해오자 기겁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히이이익!”

“도, 도대체 저게 뭐야??”


“아아아아- 신령님이야! 베르디 강의 신령님께서 노하신 게야! 죄송합니다. 신령니이이임!”


“아니야. 할아버지. 저건 귀족 나으리들의 배라고! 제기랄. 갑작스럽게 조업 금지 명령이 떨어져서 이상하다고 했더니…”


“어서 그물을 걷고 닻을 올려! 최대한 빨리 경로에서 벗어나야 해!”

그그그그그극-

선원들이 분주하게 앵커 롤러를 돌리면서 작업을 멈추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친 충돌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제기랄 이젠 틀렸어. 살고 싶으면 모두 배를 버려!!”

“안 돼! 제발 도망치지 말고 돌아와! 배가 부서졌다가는 우리 가족의 생계가…으아아악! 제기랄!!”


풍덩! 풍덩!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선장마저도 끝내 뛰어내리고 말았지만, 충돌하려는 찰나에 갑자기 수면이 부풀어 오르듯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쏴아아아아-

“뭐, 뭐야?”


“파도가 밀려온다. 모두 숨을 참아!!”


강의 중심에서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물기둥이 반으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양쪽으로 몰려오는 집채만  파도에 휘말린 낚싯배와 어부 모두가 전함의 경로를 방해하지 않는 안전한 외야로 이동하게 되었다.


풍덩!

“허억, 허억. 사, 살았어?”

“그런 것 같은…으아아앗?!”

촤아아아악!

“와지!!”

“다들 조심해. 물속에 뭔가가 있…꼬르르르륵!”


헤엄을 치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던 어부들이 순식간에 무엇인가에 낚여 채여서 끌려들어 가는가 싶더니, 금방 촉수처럼 기다란 꼬리에 휘감겨서 다시 수면 위로 튀어나오면 자신들의 배 위로 내동댕이쳐지듯이 던져져 버렸다.


콰콰콰쾅!


“커허허헉! 쿨럭, 쿨럭, 쿨럭! 제기랄!”


“뭐였어. 젠장?!”


바닥으로 물과 욕지거리를 쏟아내면서 헐떡거리고 있을 때,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정체를 드러낸 라미아 전사가 검은색 투구의 차양을 들어 올리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해 왔다.

“경고합니다! 당신들은 상부에서 내려진 조업 금지 명령을 위반하고 정규 항해 경로를 방해했습니다. 이에 현행범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나 후작 각하의 자상한 배려로 그물만 회수하기로 했으니 관대한 조치에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십시오!”

“그, 그물을 잘라냈다고?!!”

이 말에 깜짝 놀란 선장이 허겁지겁 앵커 롤러로 달려갔다가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토해내었다.


“으아아아악!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내렸을 뿐입니다!”

“닥쳐! 더러운 이종족 주제에 어디서 감히 인간에게 말대꾸를 하는 것이냐?!”

이 말에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뱉어내었다.


“후- 지금 하신 말씀을 위에 계신 귀족 나리들에게 전달해 드릴까요? 말씀드렸다시피 지시를 내린 것은 그분들입니다만.”

“윽?! 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우리가 언제 그분들의 행사에 불만을 토로했다고. 나는 단지 너희들의 태도에 대해서…”


말문이 막히자 횡설수설했지만 전함 위에서 날카로운 휘슬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것마저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냐? 어서 대열로 돌아오도록 해라!!]


“말씀은 들으셨겠죠? 소관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촤아아아악-!


“자, 잠시 기다려. 내 말이 아직…이런 젠장!”

다이빙하듯이 뛰어든 그녀는 뱀처럼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면서 쏜살같이 물속으로 긴 그림자를 남기며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낭패를 본 어부들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허탈한 마음을 토로했지만, 자비를 베풀었다는 말과는 다르게 전함 위에서는 이런 광경을 구경거리로 삼아서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무리가 존재하고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아무래도 이번 내기는 소관이 이긴 것 같군요. 지그문트 백작님. 선장은 배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보다시피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버리지 않았습니까?”


“쳇! 이래서 명예를 모르는 평민 녀석들이란…어쨌든 내기는 내기니까 패배를 인정하지. 칼센 경. 약속했던 대로 다인의 초상은 그대가 가져가시오!”

삐쭉하게 솟아오른 자신의 수염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던 귀족이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보관함에서 명화를 꺼내서 칼센이라는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오오오오! 이것이 바로  세상에 단 2점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후후후. 감사히 받겠습니다. 홀의 중앙에 전시해 두어야겠군요.”


“흥. 본가의 수치를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겠다는 말씀이오?”

“하하하하. 하찮은 소관이 어찌 감히우리 오팔 왕국의 방백 가문을 우롱하려고 했겠습니까? 그저, 허락해주신다면 하사해주신 물건을 가보로 삼아서 소소하게나마 지인들의 안목을 높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말은 청산유수로군. 어차피 경에게 준 물건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시오!”


알랑방귀를 뀌면서 비위를 맞추자 지그문트라고 불린 남자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시선을 돌리다가 상층 갑판의 난간에 기대어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쳐버린 그.

화려한 붉은 머리카락에 어깨와 팔이 속살이 비치는 망사로 되어있는 검은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먼저 방긋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지그문트의 표정은 단숨에 일그러져버리고 말았다.

“제기랄. 여기나 저기나  볼 것들로 넘쳐나는군. 하여튼 근본도 없는 녀석들이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으니까 우리 왕국이 말세인 거야. 에잉, 쯧쯧쯧쯧.”


상대방에게 들으라는 듯이 노골적으로 크게 떠들어 대고는 세차게 혀를 차면서 일행과 함께 성큼성큼 자리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저 녀석이 감히…”


“멈춰, 질!”


여성을 수행하고 있던 검은색 정장의 경호원이 분노하면서 검을 뽑아 들려고 하자 턱을 괴면서 나른한 표정으로 멈춰 세웠다.

“하지만 아가씨!”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우리가 하찮은 칼부림이나 하려고 초대받지 않은 뱃놀이에 참가하지는 않았잖아?”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같은 방백을 향해서 이런 무례를…”

“후후후후.”


이 말에 그녀는 자조가 섞인 표정으로 공허한 웃음소리를 토해내었다.


“같은 방백이라? 그들의 눈에 우리 크레이그 가문이 정말로 그렇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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