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H이벤트)때이른 여름 휴가(6)
쏴아아아아-
“보다시피, 수도꼭지를 빨간 쪽으로 돌리면 온수가 나오고 파란 쪽은 냉수가 나옵니다. 알맞은 온도로 조절해서 샤워를 즐기십시오, 휴먼.”
“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몸의 때를 익스터미네이티드~ 익스터미네이티드~”
“…”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말투로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사라져버리는 12호에게 잠시 넋을 잃어버렸던 나디아는, 이내 입고 있던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알몸이 되었다.
첨벙-
“따듯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조의 물에 가만히 손을 담가보는 그녀.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지자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혔지만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뺨을 찰싹 때렸다.
“이래선 안 돼!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어. 이번 경우에는 호랑이가 아니라 서, 서방님이지만…으으으으.”
리한에 대해서 떠올리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졌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순순히 따라온 걸까?’
반쯤 강제당했다고는 하지만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나디아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다.
그런 그녀가리한이 자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초야를 이런 곳에서 치르게 되다니…”
장소가 불만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무서웠다.
“키스하고 가슴까지는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그 이상은 안 돼!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가능하면 위험한 상황을 피해서…으으으읏. 일단은 씻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버린 나디아는 12호에게 배운 대로 온도를 조절해서 살짝 차가운 물로 열을 식혓다.
“그,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전신을 구석구석 깨끗이…”
포류핀 액체가 들어있는 통을 더듬거리면서 찾으려고 하자 누군가가 잡기 쉽게 가져다줬다.
“받아라.”
“앗, 감사합니다. 서방님…서방님??!!”
예상하지 못한 불청객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알몸을 가렸다.
“다 쓰고 나면 돌려주도록.”
촤아아악-
태연한 표정으로 말한 리한은 욕실 의자에 쪼그려 앉아서 뜨거운 물바가지를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 부었다.
“도, 도대체 언제 들어오신 거예요??”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구절부터…”
“거의 처음부터잖아요!!”
“호들갑 떨기는. 어차피 볼 것, 못 볼 것을 전부 구경한 사이에 무엇을 그렇게 놀라는 것이냐? 참고로 방도 같은 방을 잡았다. 부부가 함께 욕실을 사용하기로 모든 직원이 알고 있지.”
“소년는 듣지 못했는데요??”
“그것이 부부니까.”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고개를 끄덕여버리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 어쨌든 소녀는 여기에서 나가야겠어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나갈거라고욧!! 정말…햣?!”
주르르륵-
허둥지둥 도망치려고 하다가 발이 미끄러지며 앞으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쿵!
“어이쿠, 이런!”
우연이었는지 함정에 빠진 것이었는지 정확하게 리한을 덮치는 자세로 자빠트려버리고 말았다.
물에 젖어서 에로틱하게 달라붙어 있는 검은 머리카락과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갈색의 눈동자. 조각 같은 미소년의 얼굴.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하게 단련되어있는 근육질 복근에 사내답지 않은 부드러운 피부까지.
물씬 피어오르는 수컷의 체취에 압도당해버린 나디아의 뇌리에 그의 매력적인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깊숙하게 새겨져 버리고 말았다.
“성급한 녀석이로군. 그렇게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냐?”
“죄, 죄송해요! 실수로 그만…하윽?!”
물컹~
리한은 양손을 뻗어서 그녀의가슴을 주물러댔다.
“괜찮아, 괜찮아. 아내의 성욕을 해소해주는 것은 남편으로서 당연한 의무지. 원래 가족끼리는 이러는 게아니고. 장모님 딸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말이야.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원한다면 의무방어전을 치러주도록 하겠어.”
“그러니까 흥읏! 그,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아흣! 노, 놓아주세요!”
간신히 뿌리치는 데 성공해서 욕실 바깥에 탈의실까지 도망쳤지만 진정한 절망은 거기서부터였다.
“옷이 없잖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의복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나디아.
“뭐처럼 씻고 나오는데 더러운 옷을 입을 수는 없지. 모두 세탁을 맡겼다.”
“그,그렇다면 갈아입을 옷은 어디에…가운이나 타올조차 없잖아요??”
“직원들이 게을러서 그래. 걱정하지 마라. 느긋하게 20분 정도 샤워를 하고 나오면 마법처럼 준비되어 있을 거야. 굉장히 우연스럽게도 말이야. 후후후후.”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잔소리하지 말고 들어와라. 몸이 식어버리지 않느냐?”
“앗, 아아아아아-”
강제로 손을 붙잡혀서 욕실로 끌려간 그녀는 이후 엉망진창 씻겨져 버리고 말았다.
“휴-산뜻하군.”
20분 후에 집사의 의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얼굴이 반질반질해져서 나오는 리한과 다르게 나디아는 훌쩍거리면서 그의 손을 붙잡고 뒤따라 나왔다.
“흑흑. 서방님 때문에 시집갈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잖아요!”
“무슨 소리야? 나를 두고 누구에게 가려고. 걱정하지 않아도 책임은 똑바로 질 테니까 엉뚱한 생각하지 마라.”
“으으으으- 이것을 기뻐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뺨을 잔뜩 부풀리면서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래도 사이는 더욱 가까워져서 두 손을 꼭 잡고 의상실로 이동을 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발견한 바츠코가 방방 뛰면서 열렬하게 반겼다.
“세상에 이것들은 도대체…”
생각보다넓은 공간에 수많은 옷이 종류별로 거치된 것을 본 나디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 봐도 천의 면적이 작은 수영복부터, 다양한 일상복, 이브닝 드레스, 운동복에 심지어는 속옷까지.
“전부 네 것이다. 나디아. 르네처의점장 르빌에게 주문해 온 특주품들이지.”
“이, 이게 전부 제 것이라고요??”
족히 수백 벌이 넘어가는 물량에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믿지 못하겠으면 하나씩 입어 봐도 좋아. 전부 네 사이즈에 정확하게 맞춰놓았으니까 말이야. 위에서부터 38, 24, 36…”
“꺄아아악! 제 사이즈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아시는 거예요!!”
“예전에 치료하면서 전부 살펴봤으니까 당연한 게 아니냐?”
“정말 러브러브하시네요! 끈적끈적한 바퀴벌레처럼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합니닷!”
“…”
여전히 눈치가 없는 바츠코가 끼어드는 바람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말았다.
“아무래도 너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좋겠구나.”
“에에에엣?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자각하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하군. 내가 허락할 때까지 입을 열지 마라. 그냥.”
“알겠습니다!”
모자를 퍽! 치면서 세차게 경례한 그녀가 입에 자물쇠를 잠그는 시늉을 했다.
“일단 수영복으로 갈아입어라.”
“네, 네…”
멍하니 대답했지만, 곧 여느 여자가 그러하듯이 수많은 의상에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직 안 끝났느냐?”
“흐흐흐흥♪ 햣?! 버, 벌써 갈아입으셨어요??”
“남자 수영복은 전부 거기서 거기니까 말이야.”
무난한 4부 바지를 선택한 리한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히~ 이것도 예쁘고, 이거는 깜찍하고. 앗? 이것은…”
“빌어먹을 래쉬가드는 집어치워!!!”
“꺅?!”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엇인가를 발견해버린 리한은 잽싸게 가로채서 바닥으로 세차게 집어 던졌다.
“불, 불이 필요해! 당장 태워버릴 것을 가져오도록 해라. 지금 당장 이 빌어먹을 오물을 소독해 버리겠어!!”
끄덕끄덕!
놀란 토끼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 바츠코가 후다다닥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에에에엣?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가요? 이렇게 예쁜 수영복인데…”
“가까이 가지 마라. 나디아! 이거는 세상에 존재해서 안 되는 물건이야. 그냥 옷을 입고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주제에 수영복을 자처하다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으르르르. 르빌, 이 자식! 좋게 봐주려고 했더니 감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네가 이러고도 노블 마크를 달 수 있을지 두고 보자!”
“…”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디아였지만 리한이 모든 남자를 대변하는 듯한 분노를 쏟아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드는 옷이 불타버리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화르르륵-
그렇게 작은 해프닝을 넘기고 다시 기분을 전환해서 입을만한 수영복을 고르던 그녀는 얼마가지 않아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죄송하지만 서방님?”
“왜 부르느냐?.”
“어째서 수영복 하의에 전부 구멍이 나 있죠?”
“정확하게 말해서 엉덩이 부분이지.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정정하도록 해라. 나는 그렇게까지 변태는 아니야.”
“…”
황당한 말에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지만 이제는 포기한것처럼 한숨을 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째서 엉치골 사이에 구멍이 뚫려있냐는 거예요!”
“그래야 너의 사랑스러운 꼬리를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뺄 수가 있지 않으냐?”
“꺄아아악! 다,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바츠코를 의식한 그녀가 우왕좌왕하면서 리한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