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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H이벤트)때이른 여름 휴가(3) (104/429)



〈 104화 〉(H이벤트)때이른 여름 휴가(3)

“어디를 보느냐, 이리나. 네 상대는 여기에 있다!!”

챙!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코앞까지 날아온 쌍검이 아슬아슬하게 가로막혔다.

“큭, 제 동생에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거짓말이니까 잊어주십시오!”

“안심해라.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다들 그렇게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하나, 둘쯤은있는 게 아니겠느냐? 풋!”


빠직!

얄미운얼굴로 비웃자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잊어주세요, 잊어버리시란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강제로 지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펑! 퍼펑! 퍼퍼퍼펑!

대기를 찢는 요란한 파공성과 함께 수십 차례의 공수 교환이 이루어졌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잔상을 만들어내며 연무장 전체를 누비며 격돌하는 두 사람.

한 마주칠 때마다 진각으로 바닥이 파이며 돌무더기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검을 휘두르면서 만들어지는 풍압에 흙먼지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허공에서 요란하게 춤을 추었다.


랜달은 이 모습을 어지럽게 쫓아다니다가 몇 차례나 놓쳐버리고 말았다.

“큭, 누님만이라면 모르겠지만 설마 후계자님의 움직임까지 제대로 수가 없다니…”

“굉장하구나. 아들아.”

“설마 백중세입니까? 아버님!”

“아니, 확실하게 너의누이가 앞서고 있다. 그래도 도련님의 기량이 정말로 대단하시구나! 설마 이렇게까지 대등하게 받아내고 계시다니…”


“도련님도 벽을 넘어서신 겁니까?”

이 물음에 그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다. 지금  누이가 결착을 내지 못하는 도련님의 격장지계에 말려들어서 그런 거야. 에잉, 쯧쯧쯧쯧.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라고 했는데도 아직 멀었구나.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차갑게.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설영빙천공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번이나 당부했거늘.”

루돌프는 그렇게 혀를 차면서 리한의 무장 랭크를 B에서 B+로 잠재적으로 상향 수정을 했다.


그 말처럼 이리나는 너무 빠르게 승부를 내려고 무리하게 공세를 펼치는바람에 오히려 결정적인 기회를 몇 차례나 놓쳐버리고 있었다.

‘어떻게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거지?’


퍼퍼퍼퍼펑! 펑! 펑펑펑!

“큭!”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리한이 열세에 몰려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정타를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그녀.


‘뭔가 이상해. 아무리 서둘렀다고는 해도 이만큼 검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쯤 검을  수도 없을 정도로 한기에 잠식되어야 하는데.’


쾅!

파지지지직!


유심히 쳐다보니 검을 주고받는 순간에는 한기에 잠식당하는 것처럼 푸르게 변했던 손이, 잠시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원래 혈색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극양공? 아니야. 그런 기색은 없었어. 그렇다면 설마 퍼큘리어인가?’

상태 이상을 회복하는 엑스트라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동시에 흥분한 머리를 식히고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봤더니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믿었던 리한은 실제로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고 괜스레 자신의 내력만 지나치게 소모하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압!”


쾅!!


강력한 일격을 내지르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고 상대에게 떨어져 나왔다.

‘역시 눈치를 챘군.’


리한은 이리나가 자신의 작전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현재 그는 루돌프가 추측한 대로 후계자가 과거에 이룩했던 B급 무장으로서의 경지를 되찾은 상태였다.

세멜레의 지팡이와 마스터 코어가 예상하지 못한 융합을 이루면서 채음보양으로 얻은 10갑자의 내공을 단숨에 소화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마스터 코어의 능력까지 더해지면서 실질적으로 B+급의 무장과 대등한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무리 심후한 내력과 아티팩트의 능력이 더해진다고 해도 깨달음을 얻어야 도달할 수 있는 A급 무장과의 격차를 메울 수는 없었다.


현재 리한이 앞서고 있는 것은 마나 보유량과 스테미나.

그래서일부러 도발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소모전으로 끌어들였지만 아쉽게도 상대가 크게 지치거나 소비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편법만으로는 안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이리나는 심호흡으로 완전히 평정심을 찾았다.

“휴우- 확실히 제가 도련님을 지나치게 얕잡아 봤던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진심을 발휘할 테니 항복을 선언하지 않으신다면큰코다치실 겁니다!!”

본격적으로 자세를 취하자 지금까지 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투기를 사용할 셈이군.’

무장이 사용하는 궁극의 오의. 일격필살을 지향하는 최강의 기술.


이미 다니엘레와 아토스가 사용하는 것을 목격하기는 했지만, 이리나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두 사람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찌릿찌릿찌릿!


상식적이라면 여기서 물러서는 것이 옳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버릴 정도로 요란하게 느껴지는 경계 신호와 절망적인 실력의 격차.

수천, 수만 개의 검이 도망칠 수 없는 사방을 에워싸면서 접근해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리한은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오는 전투의 고양과 희열 속에서 잊고 있었던 투쟁 본능이 살아나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좋아, 원하는 대로 승부를 가리자. 이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을 두려워하며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잔재주 따위는 부리지 않고 네가 발휘하는 무투기를 정면으로 돌파해 주마!!”

“후회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후우우우우우우웅!!


두 사람이 동시에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커다란 힘의 소용돌이가 사납게 맞부딪치며 연무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격렬하게 떨렸다.


“오라버니!”


“그, 그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대피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랜달.


“아버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닙니까?  중 하나가 다치기 전에 이쯤에서 멈추시는 게…”


“걱정하지 마라. 비슷한 실력이라면 모를까 이리나 쪽에서 힘을 조절할 거야.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어설프게 말렸다가는 두 사람이 앙금이 남을지 몰라. 아예 끝장을 보게 해서 확실하게 연소시켜드려야 부부생활에도 뒤탈이 없지!”


루돌프가 은근슬쩍 부부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아버님!”

“뭐냐?”

“기분 탓인지 도련님이 뿜어내는 기세가 누님에게 별로 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 그럴 리는 없다. 절대로!!”

으드드드득!


고개를 저으며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관중석의 손잡이를 으스러트려버릴 정도로 긴장하며 두 사람의 대결에 몰입을 했다.

“-만개해라!”

“맥시멈 부스트.”

파지지지지직!

쿵!

자세를 낮추며 내딛는  사람의 진각에 연무장 바닥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꺼져버렸다.

“천설풍천화天雪風千華!!”

“환영월무幻影月舞!!”


리한의 모습이 어둠 속에 잠겨들었고 이리나에게 휘몰아치며 쏟아져 나오는 매서운 북풍의 바람이 대기를 수천, 수만 개의 서릿발 형태로 얼어붙게 했다.

‘저게 모두 검이란 말인가?’


하나하나가 강기를 머금고 있는 수많은 얼음 파편이 날아오르는 것을 확인한 리한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투두두두둑! 투콰콰콰콰콰쾅!


한차례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가는 그의 검격이 보호막처럼 전신을 감싸고있는 파편들을 깨트려 나갔지만, 그보다  많은 파편이 생성되어 만들어지며 방어를 두텁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공간 전체가 지배당하고 있어. 사각은 존재하지 않아!’

연무장 전체의 대기가 완전히 그녀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자유자재로 조종당하고 있었다.

겨울,  자체를 다스리는 백발의 마녀.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 경고입니다. 도련님.”


새파란 안광을 뿜어내는 이리나가 마치 군대를 사열시키듯이 무수하게 돋아나는 얼음 파편의 첨단을 겨누어 오면서 최후통첩을 했다.


“후후후후후. 그렇게 나오셔야지. 덤벼라, 이리나! 네 모든 실력을 보여봐라!!”


이 말과 동시에 검은 어둠과 북풍의 바람이 정면으로 충돌을 했다.


투콰콰콰콰콰쾅!

그것은 마치 자연의 질서에 맞서는 어리석은 인간의 발악처럼 보였다.

눈보라처럼 매섭게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얼음 파편의 공세를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환영월무의 춤사위로 받아내고 있었지만, 아무리 검속이 빠르고 날카롭다고 해도 모든 방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무량의공격을 당해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부딪치고 깨지며 날카로운 파편에 할퀴어 지면서도 리한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직!


“풀 차지, 맥시멈 부스트!!”


‘더 빠르게. 아니, 더더욱 빠르게!!’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수많은 섬격을 쏟아부으면서 얼음 파편들은 흔적도 남지 않게 분쇄해버렸지만, 하나를 제거하면 둘이, 둘을 제거하면 넷으로 늘어나 버리는 이리나의 공격은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포기하십시오! 도련님. 당신은 절대로 이길  없습니다!!”

“한 번의 인생으로 두 번을살다.”

“뭐라고요?”


알  없는 중얼거림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직 나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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