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트로이 목마(9) (88/429)



〈 88화 〉트로이 목마(9)

다시 한번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데 성공한 투스트로였지만 그녀가 어째서 자신을 놓아줬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내 외모에 호감을 느껴서…?’


터무니없는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방면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까지시시콜콜 따지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구오오오오오오!

“어보미네이션은 2인 1조로 상대해라! 타격 지점의 반대편으로 이용하는 핵심 코어를 파괴하면 적은위력으로도 손쉽게쓰러트릴 수 있다!”

“존명!”


투콰아아아앙!


고오오옳옳올!

‘제기랄. 아까 경솔하게 가르쳐 줬던 약점을 정확하게 노려오고 있어. 빌어먹을 개자식!’


월주를 연기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주동자를 향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믿고 있던 합성 마수들까지 그렇게 맥없이 쓰러져버리자 전의를 상실한 혈마법사들이 앞다퉈서 무릎을 꿇으며 투항하기 시작했다.


“하,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저는 원래 오딘 소이를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찮은 레드 벨트 출신에 불과했는데 입교한다면 마법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전부 마나 구속구로 묶어라! 네놈들의 죄과는 재판정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존명!!”


‘큭! 쓸모없는 배신자 녀석들 같으니라고! 교단에서 받아준 은혜도 모르고.’

자신이 도망칠 시간도 벌어주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포기해버리는 제자들의 모습에 이를 갈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장들의 가장 무서운 점으로 꼽히는 요인은 외부 공격을 종류와 형태에 상관없이 거의 모조리 막아주는 무적의 방패, 금강투합체를 누구나 예외 없이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메모라이즈나 스크롤, 간단하게 영창할  있는 저서클 마법으로 어지간해서는 타격을  수가 없었고, 고서클 마법에 의존해야만 간신히 싸워볼 만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이마저도 주문을 영창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버리는 데다가 마력을 집중하는 순간에 1차 섬멸 목표로 어그로가 끌려버린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이런 약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신에 마력문을 새겨넣은 배틀 메이지가 무영창 고서클 마법을 사용해서 맞서는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이 또한 선택받은 극소수의 천재들밖에 쓰지 못하는 극단적인 전투 스타일이기도 했다.


넥타르에서는 7서클에 도달한 마스터 투스트로만이 유일하게 배틀 메이지라고 불릴  있었지만, 이마저도 단전이 파괴당하는 바람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블링크조차 사용할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저런 괴물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녀석들은 프로야. 하찮은 남작령 따위에서 고용할  있는 무장들이 아니라고! 최소한 여섯 방백의 가문을 섬기는 세경가世卿家정도는 되야…제기랄! 혈광소까지 점거당했잖아? 이제는틀렸어.’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해서 은밀하게 환기구 통로로 이동하던 그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나마 방어선만 제대로 구축하고서 싸웠다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밀리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알람은 울리지 않고 통신 방해로 소통조차 할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각개전투를 지휘할 수 있는 중간 관리자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기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폭주족처럼 사방을 휩쓸고 다니는 무장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고 말았다.

‘완벽하게 제압당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도먕 쳐야 해. 하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지.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챙겨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한 투스트로는 화학연기에 그을려서 더럽고 냄새나는 환기구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서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통로를 이동하는 무장들의 발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숨을 죽이며 기척을 죽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운이 좋았는지 들키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나마 다행이군.’

방 자체는 태풍이라도 휩쓸고 가버린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가장 중요한 장소의 단서를 알아내지 못하고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툭! 툭툭툭!


곧바로 벽에 있는 뱀 모양의 장식물을 순서대로 조작해 나가자 철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패닉룸의 입구.

지이이이이잉-

[신원 확인을 완료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투스트로님.]


신체 스캔이 끝나자 함정장치가 해제되면서 비밀 문이 스르륵 닫히자 간신히 한숨 돌리는 것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패닉 룸이야말로 넥타르의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소다.


바깥세상에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대외비와 비밀 장부들이 가득한 비밀 서재이면서, 동시에 꾸준한 탄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혈마법사들의 연구자료, 유물들이 가득한 보물 창고.


감히 오팔 왕국 전체와 교환하자고 해도 바꿀 수 없을정도로 소중한 유산들이 가득했지만, 이 중에서도 단 하나만선택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고를  있는 지보가 거기에 있었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운 오딘 소이시여. 당신의 신물神物에 잠시나마 손을 대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짧게 기도를 올린 투스트로는 수많은 손가락 장식 속에 거치된 포도 덩쿨의 지팡이를 향해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순간.

짝! 짝! 짝!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박수 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후후후후. 정말로 놀라워요! 그동안 몰래 살금살금 출입하는 장소에 무엇을 숨겨놓았나 했더니…설마, 여기에서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세멜레의 지팡이를 발견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잊혀진 신화시대의 아티팩트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요?”

“카트리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신死神의 강림에 긴장으로 침을 삼킨 투스트로가, 잠시 침을 삼키다가 재빠르게 지팡이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슈우우욱-

하지만 새빨간 안개가 꼬리를 그리며 지나쳤다고 생각한 순간에 아티팩트는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 그녀의 손 위에 쥐어지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잉!

커다란 진동과 함께 부르르 떨리는 세멜레의 지팡이.


“하아아앙! 정말로 굉장해. 이렇게 가볍게 만지는 것만으로도 전신을 관통하는 짜릿한 충격이라니?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상시 오르가즘? 신화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이었군요!”


꿀꺽.

“처음부터 내가 여기로 도망쳐 오도록 유도했던 것이냐? 보안 장치를 해제하게 하려고…”

“후후후후. 이제야 간신히 머리가 돌아가시는 모양이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은 우리의 경애하는 새로운 주인님께서 연출하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가련한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고요.그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는 기록 마법을 재생해서 보여드리고 싶은데…안타깝게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군요.”

“큭, 마지막으로 하는 경고다! 세멜레의 지팡이를 순순히 내놔라. 그것은 너 따위 블러드 엘프가 함부로 다룰  있는 물건이 아니야!”


마지막 오기를 쥐어짜 내면서 외쳤지만 그녀는 어디에서 개가 짖냐는 표정으로 늘어지게하품을 했다.

“하아아아암- 정말로 인간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오만하고 멍청한 줄을 모르겠다니까? 언제나 세상 전체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다니. 인성에문제 있어요? 애초부터 돌아가신 스승님만 아니었으면 겨우 당신 따위가 우리 자매를 속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요.”

“웃기지 마라! 내 실력은 이미 한참 전에 스승님을뛰어넘었다. 현존하는 혈마법사 중에서도 유일하게 7서클을 마스터하는  성공한 나야말로 오딘 소이님의 진정한 대변인이자 화신이야!!”


분노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코웃음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따위 하찮은 서클 구분에 그렇게 연연하고 있으니까 혈마법사의 본질에서 멀어져 버리는 거라고요”


“뭐라고?”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비록 당신의 스승이 서클은 낮았을지는 몰라도 오딘 소이에 대한 이해도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고요. 그분이 이룩하신 혈마술의 경지는…그래요, 분하지만 블러드 엘프의 고유 술식을 뛰어넘었어요. 만약에 그분이 살아계셨다면 우리가 오딘 소이의 영혼 지배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었을 테죠. 계약이 파기되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던 당신하고는다르게 말이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후후후후후. 그렇게까지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부터 증거를 보여드리죠.”

그렇게 대답하면서 다가선 카트리나가 그의 명문혈에 내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앞으로딱 한 번. 마력문을 사용할 수 있는 마나를 전달해 드렸어요. 그것으로 어디 한 번 당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덤벼 보세요. 저는 오직 블러드 엘프의 고유술식만으로 상대해드리죠.”

“후회할 거다.”

“지금 당신이 찬밥 더운밥을 가려먹을 처지신가요?”

“…”


대답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선 투스트로는 그녀가 요구한 대로 주저하지 않고 전신의 마력문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년! 감히 건방지게 넥타르의 수장에게 비장의 기술을 보여달라고?? 오냐. 소원대로 해주마! 대신에 이 장소까지 한 번에 날려 보내주지. 멜티드 템페스트!!”


쿠구구구구구궁!


뇌성 벼락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패닉 룸 전체를 휘감아버리는 거대한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면서 카트리나를 휘감으려고 했지만,  순간에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어서 맺히는 핏방울을 후하고 날려 보내 버렸다.


“혈접화.”


퍼퍼퍼퍼펑!

작은 비눗방울을 터트리는 것처럼 주변을 감싸 오르던 사나운 힘을 단숨에 제어해버리면서 꽃과 나비의 형상으로 화려하게 승화시켜버리고 말았다.

털썩!

“마, 말도 안 돼…”

“유능제강이라는 말이 있죠. 이런 원리가 작용하는 것은 굳이 무장끼리 싸울 때만 작용되는  아니라고요. 그저 무식하게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했지, 자신이 사용한 마법의 통제권을 뺴았기다니 F 학점이에요.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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