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트로이 목마(8)
“바, 박카이로 반격해라! 어서!!”
“그렇게는 안 되지!”
투스트로가 쥐어짜 내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그 순간에 베일을 벗어내듯이 공중에서 나타난 루시가 가느다란 실로 술사들을 모조리 휘감았다.
슈파아아아앗!
“크아아아악!”
투두두두두둑!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갈가리 찢어져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남아있는 혈마법사들을 공격해 들어간 용병들은 그들이 미처비상 알람을 울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처치해버리고 저수조를 완전히 장악했다.
“세상에 이렇게 불쌍한 아이들을…”
한참전부터 안절부절못하던 클레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소녀들이 갇혀있는 캡슐에 다가섰지만 리한이 다급하게 그것을 막았다.
“잠깐! 함부로 개방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일단은 내버려 둬라. 포로를 구출하는 것보다는기지를제압하는 것이 먼저야. 통신 스크롤을 꺼내라! 루돌프와 휴크에게 연락을 취해서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를 모두 전달하고 작전을 시작하라고 이야기해라!”
“네, 네. 알겠습니다. 주군!”
섣부른 행동을 멈춘 그녀가 메시지 스크롤을 꺼내서 사용했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확실하게 기록했겠지?”
“흥, 당연하지.”
“지?”
“…요. 주인님. 마도구로 확실하게 모든 영상을 기록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으드득.”
존댓말을 하는 것이 아무리 해도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이까지 갈면서 대답을 했다.
“귀여운 녀석.”
“누, 누가 귀엽다는 거야? 아니, 겁니까? 흐뭇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지 말라구! 제기랄, 어째서 내가 이런 굴욕을…”
“주인님, 주인님. 저는요? 저는요?”
“그래, 그래. 너도 귀엽다. 티오.”
“헤헤헤헤.”
투스트로의 배때지에 칼침을 쑤셔 넣고 있는 그녀가 쑥스럽다는 듯이 몸을 베베 꼬면서 손잡이도 세차게 비틀어 버렸다.
“커억!”
그리고 이렇게 꽁냥거리는 모습을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는 한 여자.
“흐으으으음. 새로 영입하신 메이드들과 굉장히 친밀하게 지내시는 것 같네요. 주군??”
바로 이번 작전에 참가하고 있는 나디아였다.
참고로 오리나는 현재 전력 외 판정을 받아서 아토스의 저택에 대기하고 있었고, 이리나는 팔콘 전사들과 함께 루돌프의 지휘를 따르며 별개의 장소에서 제압 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
“후후후후. 질투에 몸부림치는 너도 참을 수 없이 귀엽군. 서방님이 다른 여자에게 손을 대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냐?”
“아, 아직은 소녀도 지아비로 모시겠다고 마음을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요. 읏, 이, 이렇게 부드럽게 쓰다듬으시면서 얼렁뚱땅 얼버무리려고 하시지 말라고요. 정말로, 치사하게…”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 꼬리가 좌우로 맹렬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얼굴을 붉히자, 예상하지 못한 도탄에 얻어맞아버린 남성 하나가 피눈물을 주르륵 쏟아내었다.
“으으으으. 나디아. 이제는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주군에게 빠져버리고 말았구나.”
“포기해,아토스. 다 자란 새는 자연스럽게 둥지를 떠나는 법이라니까? 이미 완전히 넘어가 버렸으니까 단념하라고.”
브리카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크으으윽! 너, 너희들이 어떻게…오딘 소인님의 지배를 벗어나서 이런 배신을…”
“아직도 나불거릴 힘이 남아있는 거냐? 끈질긴 녀석!”
퍽!
“커헉!”
그에게 접근한 루시가 사정없이 턱을 후려쳐버렸다.
“우리 자매가 언제까지 너희 빌어먹을 광신도 새끼들에게 노예로 부려 먹힐 거라고 생각한 거냐?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어! 네놈들이 우리 종족을 얼마나 많이 실험체로 희생시켰는지 말이야! 그것도 우리를 시켜서…이제 시작이니까 지옥에 떨어져서 똑똑히 지켜봐라! 너희 혈마법사 개종자 새끼들을 마지막 하나까지 씹어먹어서 모조리 지하세계로 내려보내 주마!”
“브, 블링크!”
슈우우우웅!
고통스럽게신음하던 그가 급하게 탈출 마법을 발동시키자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앗?! 어쩌면 좋죠? 적의 수장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놓쳐버리다니.”
“걱정하지 마라.일부러 숨통을 끊어버리지 말고 힘 조절을 하라고 명령했으니까 말이야. 어차피 녀석은 독 안에 든 쥐야.”
“하지만 적들이 경계 태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후후후후. 이미 손은 써놨으니까 그렇게 빨리 알람을 울리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쯤이면 남작의 마법사들이 통신 방해 결계를 펼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도…흠. 우리 쪽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 너희들이 아주 쉽게 전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말이지.”
‘전공’이라는 말에 용병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넥타르 섬멸 작전을 시작해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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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허억! 크윽! 제기랄…”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복부를 간신히 지혈시키는 데 성공한 투스트로는 거칠게 차오르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욕지거리를 뱉어내었다.
어째서 자신을 완벽하게 끝장낼 수 있는 타이밍에서 그렇게 손속에 사정을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도망친 지금도 최악에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마나가 모이지 않아. 이런 빌어먹을 년!”
7서클에 도달한 혈마법사의 수장인 그조차도 단전이 파괴당해버린 것에 대해서만큼은 손을 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시각각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마나로 간신히 몇 가지 신체 회복과 강화 마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배틀 메이지 고유의 무영창 술식인 마력문도 활성화하지 못할 터.
“폭스 하운드가 오딘 소이님의 영혼 계약에서 벗어나다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서, 설마 그자가 아티팩트의 소유자였던 건가??”
천연덕스럽게 자신을 월주라고 속였던 남자를 떠올리자 저절로 이가 악물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감도 오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것을 생각하려고 의식을 할애하는 것조차 시간이 없는 촉박한 순간이었다.
“스승님?!”
“지금 당장 기지 전체에 알람을 울려라! 비상 상태다. 폭스 하운드가 우리를 배신하고 적들을 끌어들였…”
상처투성이로 변해버린 그를 발견한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서 다가와 부축해 주었지만, 그런 내용을 전부 전달하기도 전에 폭탄이 터져나가듯이 벽이 폭발해 버리면서 돌무더기들이 혈마법사들을 덮쳐버렸다.
투콰아아아아앙!!
“팔콘 전사들이여, 돌격하라! 이 비열한 녀석들이 주문을 영창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말고 질풍처럼 몰아붙여라! 아스트라세가문 선봉 돌격대의 힘을 똑똑하게 가르쳐 주마!!”
“존명!!”
슈파아아아아앗!
루돌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무장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혈마법사들을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들어갔다.
“위, 위대하신 오딘 소이시여…크아아악!!”
주문의 첫 구절을 외우기도 전에 몸이 반으로 갈라져 버리는 혈마법사.
“실드!”
“어딜!”
투콰아아아아앙!
화들짝 놀란 동료가 스크롤을 찢어서 저서클 방어마법을 곧바로 사용했지만,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무장에게 단숨에 깨져나가면서 그대로 쿵! 하고 찍혀버리면서 피떡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흐흐흐흐흐흐흐.”
“히이이이익!”
전투에 고양되어서 입가에 튀어 오르는 피를 혓바닥으로 핥아버리는 모습에 전의를 상실해버리는 혈마법사들.
“기, 기지 전체에 비상 알람을 울려. 서둘러!”
“안 됩니다. 스승님! 누군가 연결을 끊어버린 것 같습니다!”
“뭐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투스트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에 표정이 창백하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최악의 가정.
‘설마 카트리나가…?’
기지의 보안 체계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그녀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공작.
오히려 그런 가능성을 이제야 알아차린 자신이 멍청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 일로에 나아가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욱!
쿵!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서 투스트로 일행 앞에 슈퍼 히어로 랜딩을 선보이는 백발백미의 여검사.
“스, 스승님을 보호해라!”
“파이어 볼!”
“매직 볼트!!”
“체인 라이트닝!!”
그의 곁을 지키던 마법사들이 곧바로 발동할 수 있는 메모라이즈의 저서클 마법들을 난사해 대었지만, 모두 명중하고도 상처하나 없이 화염을 뚫으며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와 버리고 말았다.
“그, 금강투합체…”
“백야白夜”
그녀의 입에서나직하게 기술명이 흘러나오는 순간에 눈앞이 새하얀 어둠 속에 덮여버리는 듯한 착각을 경험한 그들은, 이윽고 세상이 기울어버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면서 그대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해버리고 말았다.
부르르르
“흐으으으읍?!”
그리고 핏방울조차 떨어져 내리지 않는 별운검이 자신의 코앞으로 들이밀어 지자 숨이 턱하고 막혀버리는 투스트로.
‘신체를 강화했는데도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어. 말도 안 되는 괴물…’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자신의 최후가 닥쳐왔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검을 회수해버리고는 검집에 꽂아 넣어 버렸다.
“도망쳐라.”
“네?”
“아니면 이대로 죽고 싶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사님! 브, 블링크!”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얼마 남지 않은 마나로 다시 한번 단거리 탈출 마법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