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트로이 목마(7) (86/429)



〈 86화 〉트로이 목마(7)

“그나저나 월주의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처음에 용병을 내보내겠다고 하셨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괜찮은 실전 데이터를 뽑아낼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검을 빼앗긴 직후에 그런임기응변으로 반격해올 줄이야.”


“저도 좋은 대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에이,  분 모두 그렇게 칭찬해주시면 괜스레 쑥스럽잖습니까? 하하하.”


“쓸데없이 떠들지 말고 대열로 돌아가라.”

“네…”

낄끼빠바를 모르는 그녀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정도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월주가 괜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폭스 하운드를 통해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베리우스 후작은 혹시 모를 방해세력의 난입을 막기 위해서 선단 호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우선은 수많은 마법사를 동원해서 선단 주변을 24시간 감시하며 보호 결계를 펼치고 있는 데다가, 무려200명의 블랙 이글 기사단을 동원해서 대공 호위망까지 구축.

거기에 여차하면 지원할 수 있도록 지상군까지 별도로 따라붙고 있었고 물속은 라미아 용병들을 고용해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육해공에 철통같은 대비를 해놓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략 마법이라도 사용해서 적에게 치명적인 선제 타격을 입히고 혼란스러운 난전 상황을 유도해내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전력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혈마법사 200명이 모여있으니 전략 마법까지는 어렵더라도 전술 마법까지는 퍼부을  있었지만, 문제는 한 장소에 대규모 마력이 집중된다면 상대방이 모르려도 모를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영창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 사이 무방비하게 노출당한 마법사들은 무장들의 먹이가 될 터.

“걱정하지 마십시오, 월주. 전략 마법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적의 방어를 확실하게 뚫을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 존재하니 말이오.”

“비장의 수단입니까?”

월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보여드릴 예정이었으니 따라오시지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를 따라서 일행은 장소를 벗어나 더 깊숙한 심처까지 이동을 했다.

쏴아아아아아!

지하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월주.

“이곳은 설마…지하수로입니까?”

“후후후후. 바로 보셨습니다. 원래는 유사시에 투기장 관람을 하던 vip고객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통로를 연결해 두었다고 하더군요. 이쪽으로 똑바로 베르디 강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합성생물들을 들키지 않고 작전구역까지 이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해놨군.’

이야기를 듣는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참으로 우습지 않습니까? 위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버러지 녀석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 도시의 밤과 어둠은 이미 우리 혈마법사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무엇이 그렇게 유쾌했는지 한참을 웃어젖혔다.

그리고 일행은 붉은색으로 빛나는 외눈이 인상적인 가디언 골렘들이 지키고 있는 커다란 철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중요한 손님들과 함께 저수조를 둘러볼 예정이다. 공격 제외 대상에 포함하도록 해라.”


[접수 완료. 마력 파장을 기록했습니다.]


엄중해 보이는 보안 절차를 가볍게 뚫고 들어간 일행은 시야가 탁 트이는 넓은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별다른 조명은 없었지만 수영장처럼 넓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저수조에는 형광물질이라도 포함되어 있는지, 밝은 녹색의 빛을 뿜어내면서 빛났고 한쪽 구석에 일렬로 늘어선 캡슐 용기에는 납치해온 것으로 추측되는 어린 소녀들이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로 용액에 담겨 있는 것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신체 일부가 기괴한 형태로 변해가는 모습도 보였고, 아예 여러 명이 뒤엉켜 융합되어있는 끔찍한 형태로 커다란 용기에 담겨 있는 것도 확인할  있었다.

부르르르르-

[이런 천하에 찢어 죽일 개자식들이…]


[참아!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들키면 안 돼!]


끔찍한 실험 현장에 분노한 흑의인들이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술렁거렸지만, 다행스럽게도 투스트로가 그것을 수상하게 생각하기 전에 저수조를 연구원들이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건넸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그래. 진척 상황은 어떻지?”

“양성 반응을 보이는 실험체는 전부 넷입니다. 하지만 작전 시작까지 맞춰서 개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거의 절망적이라고밖에는…”


“그렇다면 성장촉진제와 혈정의 투약량을 세배로 늘려라.”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실험체가 전부 폐사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성체로 개화해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해. 이번 작전에 투입하지 못하면 모두 버려질 녀석들이야! 그렇다면 작은 성공확률에도 걸어봐야   아니냐? 어서 움직여!”


“네, 네! 알겠습니다.”

투스트로의 호통이 떨어지자 연구원들이 놀란 토끼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흥분해서 흐트러져버린 모습을 정돈해 보이고는 다시 영업 미소를 지어보이며 되돌아서는 그.


“못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월주.”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현장을 감독할 인력이 많이 모자란 모양이군요.”

“벌써 거기까지 꿰뚫어 보셨습니까? 뭐, 같은 식구끼리 특별하게 숨길 일도 아니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아시다시피 저 빌어먹을 기득권 세력에서는 우리 혈마법사들을 집요하게 탄압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열정에 가득한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보다시피 마스터 클래스가 턱없이 부족해서  모양  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하하하하. 하지만 그런 고난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로티나님께서도 우리를 다시 보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으로 이 넥타르 교단이 테르할 제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오딘 소이님의위대한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할 시간도 머지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지하를 벗어나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말이야.’

월주는 팔짱을 낀 채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과대망상을 속으로 부정해 주었다.

“아, 저도 모르게 너무 많이 떠들어버리고 말았군요. 여러분도 거사를 치르고 오시는 길이라서 많이 피곤하실 텐데 말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보여주실 합성생물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군요. 혹시 저 커다란 캡슐에 담겨 있는 것이…”

이 질문에 투스트로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것들은 아직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병아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께 소개할 우리 조직의 비장의 수단은 저 커다란 저수조에 담겨 있습니다.”

“저수조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정말로 보이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바로 눈앞에 저렇게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가득  있다고?’


“설마…”

짝! 짝! 짝!


그가 손뼉을 치자 대기하고 있던 술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웠다.

촤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부풀어 오르듯이 솟구쳐오르는 저수조의 물.


그것이 거인과 유사한 형상을 갖춰서 일행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거의 누구도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이건 설마 전설로 내려오는 언다인입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것이었다.

“하하하하. 마나 파동을 조금도 감지하지못하셨을 테니 정령 인간으로 착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하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신체 구성의 99.9999%가 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전사를 박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하니까 비장의 수단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답을 듣는 월주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변했다.

마나 파동을 조금도 내뿜지 않는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괴물이 자연 상태의 무생물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떠한 탐지 수단으로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

“내일 밤에  박카이들을 지하수로로 내보내서 베르디 강에 매복시킬 예정입니다. 후작이 동원하고 있는 선단은 총 6척으로 이루어져 있고 회합의 중요 인사들이 머무르는 거처도  중에서 매일 비밀스럽게 교체되고 있습니다만…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내통하고 있는 자들이 적어도 1척은 제외해 줄 테니, 선제 타격으로 5척 중에서 3척은 확실하게 침몰시킬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나머지 2척을 우리 야월이 담당하면 된다는 말씀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박카이를 제외한 모든 전력이 아낌없이 지원해 드리겠다고 장담해 드리겠지만 말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전력 열세는 여전했지만, 어차피 목적은 적을 섬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합이 실패로 돌아갈 정도로 타격을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틈을 노려서 충분히 치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과연! 대담하고도 치밀한 작전이 아닐 수가 없군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감탄했습니다, 투스트로님. 처음에는 엄청나게 허황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준비를 갖춰놓았을 줄이야. 틀림없이 도주 수단도 마련해 두셨겠지요?”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손을 들어서 말을 멈춰버렸다.

“그래서  고맙군요. 설마 이렇게까지 의심하지 않고 모든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방심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지 않습니까? 공든 탑을 와르르 무너트려 버리니까요.”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커헉!!”


예상하지 못한 배후의 습격으로 단전이 뚫려버린 그가 피를 토해내었다.

“안녕, 투스트로 스승님? 설마 이렇게 가까이에 다가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할 줄은 몰랐어.”


“너, 너는…티오??”

“스승님!!”

예상하지 못한 암습에 넥타르의 혈마법사들이 놀란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순간에 일제히 흑의를 벗어던진 리한 일행에게서 명령이 터져 나왔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