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트로이 목마(5) (84/429)



〈 84화 〉트로이 목마(5)

“그, 그건…”

날카로운 지적에 잠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지만 곧바로 철면피를 뒤집어쓰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제 요청이 로티나님의 요청입니다!”

“호오, 그렇게까지자신하신다면저희가 제니아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투스트로님께서 책임을 져주시겠군요?”

“무, 물론입니다.”


곧바로 대답하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은요호 기관에 직접 연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듣자 하니 대단한 솜씨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틀림없이 장거리 통신 마법도 가능하실테죠? 핫라인으로 상급 지부에 연락을 취하면 금방 회신을…”


“잠깐! 잠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월주!”


당황한 투스트로가 서둘러서 외쳤다.


“또 뭡니까?”


날카로운 안광이 쏘아져 들어오자 말문이 막혀버리는그.


‘젠장! 도대체 이게 뭐야? 보잘것없는 하부 조직의 수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내기가 아니잖아? 폭스 하운드 년들은 도대체 거기에서 뭘 했던 거야? 단단히 으름장을 놓아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게 만들어 놓으라고 했더니 기가 죽기는 개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무력을 동원해서 상하 관계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고 싶었지만, 동등한 위치에 있는 조직에게 함부로 손을 댄다는 사실도 부담스러웠고 이만한 인원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제압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하다못해 이년들이 모두 모여있기만 했어도…’


괜스레 카트리나를 노려봤지만 얄밉게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그녀.

“말씀하실 것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렇게 말하자 결국에는 백기를 들어올리고 말았다.

“휴우! 알겠습니다, 월주! 제가 졌습니다. 솔직하게 전후 사정을말씀드릴 테니 제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뚝.

돌아서려던 그의 발걸음이 제자리에서 멈췄다.


“사정이라고 말씀하심은…?”


“조그마한 사건이 있어서 생산 일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베리우스 후작의 호위 전력도 생각보다 강화되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작전의 최소 목표조차도 달성할 수 있을지다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제발, 살려주는 셈 치고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야월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흠.”


고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기는 했지만 두건으로 가려진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간절하시다면야 같은 조직의 하부 기관으로서 무시할 수만도 없겠군요. 하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 아니라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주셔야  것 같습니다만…”


‘제기랄, 역시나 그렇게 나오는 건가?’


“무, 물론입니다. 무엇이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후후후. 이해가 빠르니 굉장히 흡족하군요. 그래도 당장 무엇을 해달라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투스트로님하고는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니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군요. 하하하하.”


“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하.”

어색하게 따라웃었지만속으로는 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이를 박박 갈았다.


‘크으으으윽! 이 자식이…두고 보자.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어. 폭스 하운드의 나머지 두 명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대방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요구가 들어왔다.

“그러면 공동전선을 펼치기 전에 먼저 작전에 참가하는 합성 생물들의 능력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나에게 가이드를 시킬 셈인가?’


자신에게 안내하라는 듯한 태도에 잠시 불쾌한 감정이 솟아오르기는 했지만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유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라면 서로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좋아, 이번 기회에 누가 위고 아래인지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해주지. 이번 작전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너희들 따위에게 눈길이나 줄 것 같으냐?’

“후후후후. 두 분이 화기애애한 모습이 보기 좋군요. 저는밤을 새웠더니 피곤해서 먼저 숙소로 가보겠습니다. 서로 오븟한 시간을보내세요.”

“칫.”


입술을 가리면서 웃음을 터트린 카트리나가 자리를 떠나기 전에 월주와 은밀한 시선을 교환했지만, 투스트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볍게 혀를 차기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가이드.

인원 대부분을 제외해버린 월주는 약 10여 명의 측근만을 이끌고 그의 뒤를 따랐다.

“지하인데도 상당히 넓은 공간을 마련하셨군요. 이런 장소는 어떻게 준비하신 겁니까?”

“하하하. 전부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게 다 위대하신 오딘 소이님의 포교 능력 덕분입니다. 열성적인 신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흠. 열성적인 신도라면 빅터 래빗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또한 깨달음을 얻고서 회개한 어린 양이라고  수가 있죠. 이곳도 원래는 그자가 운영하던 비밀 투기장입니다. 돈은 넘치고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는 짜릿한 스릴을 맛보고 싶었던 대중들에게 쾌락을 제공해주는 장소였지요.”

“그래서…”


지하인데도 불구하고 층층이 나누어져 있는 관객석과 석조 구조물들을 돌아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이런 장소를 독점해버렸으니 원래 시설을 이용하던 고객들이 별로 좋아하지는않았을  같습니다만…”

“명목상으로는 재개장 공사를진행한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도시 외곽에 마련한 임시 투기장이 미어터진다고 들었습니다만 무슨 상관입니까? 대의를 위해서라면 작고 사소한 문제에 불과할 뿐이거늘.”

‘역시 예속 계약으로 묶어두고 있는 모양이군.’

가볍게 반응을 살핀 월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장소.


원래는 검투사들의 대기소로 추측되는장소였지만 지금은 수십 마리가 넘는 어보미네이션들이 비활성 상태로 도열해 있었다.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합성 생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녀석들이야말로 이번 작전에서 동원할 주력 병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낱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던 살덩어리 녀석들이 위대하신 오딘 소이님의 전사로 재탄생하게 되었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지만 내색하지 않으면서 태연한 태도로 질문을 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월주의 물음에 그는 손가락을 들어서 어보미네이션을 관리하는 혈마법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신의 물방울로 각성할 지어다.]

가볍게 주문을 외우고 나이프로손바닥을 찔러서 인장에다가 피를 뿌리자 각성하면서 어눌한 울음소리를 뱉어내었다.

구오오오오오-


술자의 조종에 따라서 여러 개의 가느다란 팔로 커다란 공 같은 몸뚱이를 데굴데굴 굴려서 투기장 공터로 이동하는 어보미네이션.

“공격 마법을 사용해라.”

“네, 스승님. 파이어 볼!!”


시연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던 혈마법사가 스크롤을 찢어서 3서클 마법을 사용하자 공중에서 화염구가 만들어지며 목표를 향해서 날아갔다.

쾅!


순간적으로 2층의 관객석까지 후끈거리는 열기가 전해질 정도로 작지 않은 폭발이 일어났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어보미네이션.

살짝 그을리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원래의 피부색을 회복해버리고 말았다.

“자연계 저서클 마법으로는 저만한 타격이라.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상대할 전력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는군요.”

“후후후후. 이제 시작이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 마법을 발동해라!”

이 명령에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낸 혈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자세를 갖추고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스크롤에 의존해서 간단하게 마법을 발동했던 첫 시연하고는 다르게 상당히 오랫동안 집중하면서 마법을 끌어모으는 술사.


마침내 발동 준비가 끝나자 품속에서 혈액을 담은 병을 꺼내서 내용물을 허공에 힘차게 뿌렸다.

촤아아아아악!

[오딘소이여! 위대하신 당신의 힘으로 눈앞에 있는 어리석은 자를 처단해 주시옵소서, 블러드 스톰레이지!]

후우우우우웅!

5서클 혈마법.

쏟아지지 않고 두둥실 떠올랐던 혈액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궤적으로 날아가서 어보미네이션을 휘감아버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수십, 수백 개의 날카로운 칼날 형태로 변해서가차 없이 난도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촤차차차차차착!

마치 살아있는 소를 도축해나가는 것처럼 뭉텅이로 잘려나가 버리는 두툼한 살덩어리들.

구오오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참혹한 광경이었지만 어보미네이션은 통증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술사가 조종하지 않으면 아예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인지 별다른 반응없이 멍청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길고 가느다란 팔들과 뭉툭한 다리마저 잘려나가자 균형을 잃어버리며 쿵! 하고 쓰러져버리는 녀석.


처음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의 위력에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래도 괜찮습니까?”


“하하하하! 겨우이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월주.”


우려하는 반응에 껄껄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려 보일 뿐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상처를 입은 부위 주변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잘려나간 부위를 재생해버리는 어보미네이션.


“!!”

술렁술렁.


믿어지지 않는회복능력에 야월 전체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재생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는 트롤조차도 이렇게 단시간에 자신의 신체를원래 상태로 되돌리지는 못할 터.

겨우 2~3분 만에 죽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멀쩡하게 돌아온 어보미네이션을 소개하면서, 투스트로는 자신감을 되찾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질문을 해왔다.

“어떻습니까? 월주. 이만하면 저희를 믿고 등을 맡겨도 괜찮지 않으시겠습니까?”


“확실히 놀라운 능력이기는 합니다만 실전 능력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무장들에게 손도 쓰지 못하고 묶여버린다면 대단한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쳇. 쓸데없이 의심도 많은 녀석이군.’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밝은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투 시연을 보여드리려는 참이었습니다. 마침 폐기 예정이었던 적당한 합성 마수들이 있으니…”

“그것보다는  측근 하나와 1대 1대전을 시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