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트로이 목마(4) (83/429)



〈 83화 〉트로이 목마(4)

“쿠오오오오오!!”


하지만 그런 위협이 성질을 자극했는지 긴 팔을 고무줄처럼 휘둘러서 혈마법사 하나를 단숨에 낚아채 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악!”


“젠장, 이 자식이!!”

치지지지직!

당황한 동료들이 장대에 마력을 흘려보내서 어보미네이션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지만, 감전으로 움찔거리면서도 자신의 몸집에 절반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서 기어이  속으로 집어넣고야 말았다.

우드드득!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아파, 아아아아앗! 구해주십시오, 투스트로님! 제바아아알!!”

다리부터 천천히 씹혀 들어가면서 절규하는 혈마법사.

“대체 뭘 하는 것이냐? 억제 주문이 시원찮으니까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작업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게 휘둘리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네, 네!”

겁에 질려서 주눅 들어버린 주변을 꾸짖어대자 허둥지둥 주문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그러자 간신히 효과가 발휘되어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예속의 인장을 찍을 수 있었지만, 이미 구하는 게 늦어진 혈마법사의 머리는 다물어지는 이빨에 뚝 하고 절단되어서 혈광로 속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흠, 어쨌거나 활동성은 평균 이상이로군. 오딘 소이님께서도 굉장히 흡족하셨던 모양이야. 제물을 선별한 보람이 있어.”


“네, 박카이를 대체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작전에 보탬이 될만한 수준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좋아, 이대로 계속해서 어보미네이션을 만들어내라!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먼저 돌아가 보겠다.”


“네! 스승님.”

혈광로에 계속해서 제물들을 쏟아 넣는 의식을 제단을 뒤로 빠져나온 투스트로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서, 쓰고 있던 석가면과 제구를 가지런히 내려놓고 푹신한 의자에 던지듯이 철퍼덕 주저앉았다.

“하아. 정말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군. 마감 기한은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일일이 현장을 감독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으니. 망할, 관리직이 부족하다고.”


탁! 탁!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입에 물고 있는 곰방대 연초에 부싯돌을 튀겨서  모금 빨아들이려고 했지만, 곧바로 달려와서 문을 두드려대는 연구원을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 잠깐이라도 쉬자고 좀!’

“들어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자동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휴식 중에 죄송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폭스 하운드로부터 정기 연락이 도착하지를 않아서…”


“아아,  뭐냐. 야월 녀석들을 만나러 갔지? 작은 볼일을 마치고 나면 데려오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거의 하루가 지나가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메시지 스크롤은 사용해 봤느냐?”

“죄송하지만 현재 체류하고 있는 곳으로 추측되는 장소가 통신 방해로 완전히 차단되고 있어서 연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말에 투스트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통신 방해라고? 설마, 누가 또 멍청하게 꼬리를 잡혀버린 것은 아니겠지?”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남작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행차해서 모종의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적어도 우리 넥타르를 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폭스 하운드나 야월이 덜미를 잡혔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푸흐흡!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무리 하부조직이라고 해도 남작령하고는 노는 물의 차원이 달라.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녀석들이라면 내가 불러오려고 했겠느냐?”


말도  된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자세한 내막을 조금  알아볼까요?”


“아니, 걱정하지 않아도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폭스 하운드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녀석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누구를 보내도 해결하지 못해. 그것보다 지금은 생산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다음 정기 연락까지 기다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녀석들은 오딘 소이님의 충실한 노예들이다. 아무리 날뛰어봤자 결국에는 배신하지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투스트로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이려고 할 때 다른 연구원이 찾아와서 또 한 번 문을 두드려댔다.

“카트리나님과 야월 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는군.”


“나가보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명목상으로는 일단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있잖아? 월주께서 친히 왕림하셨는데 환대를 해드려야지.”

툭툭툭!


남아있는 연초를 재떨이다가 두드려서 털어버린 그는 옷매무새를 가볍게 정돈하고 방문객들을 마중하러 나갔다.

쿠구구구궁!


천천히 개방되는 비밀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수십 명의 흑의인.


그리고 선두에서 가이드처럼 떠들어대고 있는 카트리나.

“…자아, 여기가 바로 혈마법사들의 지하 비밀 기지입니다. 바닥이 보통 화학약품과 피로 더럽혀져 있으니까 걸음을 조심해주세요. 어머? 때마침 우리들의 경애하는 수장인 투스트로님께서 마중을 나와주셨군요? 호호호.”

조롱하는 듯한 태도에 그의 미간이 가느다랗게떨렸다.


“티오와 루시는 어디에 내버려 두고서 혼자 돌아와 버린 것이냐?”

“뭐처럼 어두컴컴한 지하실 생활에서 해방되어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뭐, 어차피 내일까지만 돌아오면 되니까 잠시 일탈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그렇죠, 우리 월주님?”


“칫.”

투스트로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혀를 찼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고? 평소에도 자기들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녀석들이 배가 불러도 단단히 불렀군.’


제멋대로 행동하는 폭스 하운드를 혼쭐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안타깝게도 금계는 오딘 소이가 직접 관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강제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규칙의 허점을 찔리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

처음부터 더 강하게 종속 계약을맺어놓았다면 아예 이성이 없는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을 테지만, 자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A급 무장으로서의 능력을 반의반도 발휘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현재 상태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투스트로의 빈정을 정말로 상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단순하게 그녀들의 일탈 때문만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져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카트리나  빌어먹은 년이 그사이를  참고 새로운 남자에게 달라붙어? 상하 관계를 가르치라고 했더니 엉덩이로 깔아뭉갰나 보지?? 그렇다면 밤새도록 저 새끼와…젠장!!’

질투.

상대방은 오히려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있었지만,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커다란 가슴을 팔에다가 찰싹 끼우며 아양을 떨어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직 잠자리를 가지는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카트리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던 투스트로.

인간들에게 과거에 선주 문명으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엘프라는 종족은 이 세계의 미美에 대한 기준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틀림없이 그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존재.

비록 아무한테나 꼬리를 치고 다니는 헤픈 여자라고는 해도 눈앞에서 다른 상대와 꽁냥거리는 모습을 목격해버리자 눈에서 불똥이 튀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처음 뵙겠습니다. 투스트로님. 야월의 수장인 칼리우스라고 합니다. 이번 작전의 총지휘자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네!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월주님.”

정중한 인사에 급하게 멘탈을 수습하면서 그렇게 답했다.

덕분에 간신히 이성을 되찾아서 눈앞에 있는 상대를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년의 남자라고 들은 것 같은데. 목소리가 상당히 젊군. 음성변환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얼굴의 생김새는 두건으로 가려져 있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키 또한 보고서에 적혀있는 것에 미치지 못했다.

‘축골공을 사용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대리인? 어느 쪽이든지 상당한 경계를 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이런 의심은 이어지는대화를 통해서 확신으로 굳혀지게 되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죄송합니다만, 투스트로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갑자기 불려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군요. 이미 작전에 필요한 인력은 충분히 지원해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카트리나?”


“왜 부르시나요? 우리는 데려오라는 명령만 받았지. 시시콜콜한 이유까지 가르쳐주라는 지시사항을 받지는 않았다고요. 흥!”

‘이런 망할 년이!’

그렇지 않아도 질투심이 폭발해버릴 지경이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콧방귀를 뀌어버리자 욕지거리가 저절로 솟구쳐 올랐다.

“하아, 알겠습니다. 월주님. 그러면 제가 여러분을 호출한 자세한 이유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투스트로는 베리우스후작의 선단이 벡워스 근처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을 습격하기 위해서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직도 제대로 납득이 되지 않으십니까?”


“솔직하게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기탄없이 이야기해 주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작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죄송하지만 이런 자살 특공에 야월의 정예들을 투입할 수는 없겠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단도직입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자 투스트로는 얼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새끼가?’

“이 일은 은요호 기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주. 설마 로티나님에게 항명하실 생각입니까?”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우리는 공작팀을 지원해주라는 명령만 들었지. 야월의 기둥이 흔들릴만한 무모한 작전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은없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것은 대체 누구의 생각이고 요청입니까? 로티나님입니까? 아니면 투스트로님이십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