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트로이 목마(1) (80/429)



〈 80화 〉트로이 목마(1)

과거의 주인에게 사과하고 연기를 계속해 나갔다.

잠시 후.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난 후에 상황이 진정되자 리한은 방문한 일행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이제는 진정했느냐? 이리나.”

“…네, 못난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아까처럼 폭주해서 날뛸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크흠! 외람되오나 도련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궁금하지만 먼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군요. 대관절 이 시체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리고 이 자는 어쩌다가 여기에…”


“편하게 휴크라고 불러주십시오, 자작님.”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지런히 정돈한 미중년이 공손하게 말했다.


“멜더릭에게 이미 들었을 테지만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 휴크가 나를 테르할 제국의 스파이라고 착각해버려서 말이야. 다짜고짜 구금하려고 찾아왔는데 하필이면 암살자들의 시체를 발견해버리고 말았지. 덕분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어.”

“충돌이라고요?”


“추, 충돌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실수를저지른 것만은 확실합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후계자님.”


“괜찮아. 이번 일은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니까. 후후후후후.”

“…”

꼬투리를 잡았다는 것처럼 사악하게 웃어대는 모습에 장내가 잠시 조용해 져버리고 말았지만, 랜달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애써 부여잡으면서 다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크흠, 크흠! 그나저나 방금 흘려들을 뻔했습니다만 암살자들이라니…이자들이 말입니까?”


“야월이라고 한다. 제니아에서도 제법 활개를 치던 녀석들이니까 이름쯤은 들어봤겠지. 3년 전에 나를 함정에 빠트려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던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쿵!

“서, 설마. 감히 이 자식들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은 루돌프가 노발대발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진정하고 앉아라. 이미 죽은 녀석들에게 화를 내봤자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그보다중요한 문제는 누가 이 일을 사주했냐는 것이지.”


“역시 그 빌어먹을 돌로레스 년이었습니까?”

“적어도 3년 전에는 그랬지. 숙모는 언제나 나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셨으니까 말이야.”

“그럴  알았어! 뻔뻔한 낯짝으로 감히…”

“3년 전에 그랬다는 것은 지금은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흥분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랜달이 물었다.

“그래. 이제는 주인이 바뀌었으니까 말이야.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년 사이에 은요호 기관의 산하로 편입되었다는 모양이다.”

“은요호 기관!!”

“테르할 제국의 마녀가 운영하는…”

아스트라세 일가가 놀라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휴크는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이야기에 안절부절못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귀띔을 했다.

[후계자님. 제가 이렇게 민감한 이야기를 곁에서 들어도 되는 것인지…]


“훗. 나를 제국의 첩자라고 생각해서 구금까지 하려고 했던 주제에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걱정하지 마라. 이번 사건은 너에게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니까 말이야. 게다가 네가 통신 방해 마법까지 펼쳐놓은 덕분에 여기에서 나눈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갈 염려도 없지. 혹시 배신자가 있다면 말이야.”

움찔!

그렇게 말하면서 사납게 외야를 노려보자 대부분의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깔았다.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여기에 데려온수행원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죽어서 입을 다물면  믿음직해지겠지만 말이야.”

“히이이이익!”


루돌프가 으르렁거리자 겁에 질린 비명을 뱉어내었다.


“그 정도만 해라. 그렇게 몰아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테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런데 혹시 이번 사건에 래리님도 개입하신 겁니ᄁᆞ?”

“직접 지시하셨을 거라고 믿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묵인하기는 하셨을 테지. 삼촌이 후계자 자리를 원하셨다면 미련 없이 넘겨드렸을 텐데 말이야. 괜히 암살자들을 동원해서 죄 없는 가신들까지 테세트에서 말려들어 죽게 만들어 버리다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소리를 지른 것은 이리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슈킬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는 도련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거리낌 없이 외세를 끌어들이고 암살자들을 보내는 자들에게 천년 가문의 후계를 넘겨주시겠다니요? 제발 다시는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리나…”

“크흠, 크흠! 저도 딸내미가 하는 말에 백번 동의합니다. 도련님. 아무리 혈육이라고는 하나 불의를 저지른 자들에게그렇게 쉽게 굴복하셔서는 안 됩니다.”


‘당연한 소리지.’


리한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충신들의 따듯한 조언에 감격해 마지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들이 하는 말이 옳겠지. 후후후. 지난 3년 동안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말이야. 아직도 멀었던 모양이구나.”

“도련님…”


루돌프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해왔지만 그가 주의해서 살펴보고 있는 사람은 이리나였다.


“…”

예상했던 대로 자신이 약한 모습을 드러내자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녀.

‘반응을 보니까 정말로 과거의 나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런데 어째서 예전에는 그렇게 시종일관 차갑게 대했던 거야? 하여튼 인간들이란…에휴.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어필할 것이지. 쯧쯧쯧.’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다면 야월은 은요호 기관의 사주로 후계자님을 암살하려고 했던 겁니까?”

이야기를 다시 본론으로 되돌린 루돌프가 물었다.


“아니. 우습게도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 적어도 녀석들의 정예 전력은 순전히 3년 전에 자신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끝내려고 왔다. 이렇게 정중하게 피안화로 만든 꽃다발까지 선물로 보내오면서 말이야.”


“그럴 수가…”

 ‘의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인지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용케도 무사하실 수가 있었군요. 여기에 있는 시체만 살펴보아도 족히 100명은 넘어가는 것 같은데…”

“작은 도움이 있었지.”


짝!

리한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뼉을 치자 뒤쪽에 물러서 있던 세 명의 엘프 메이드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들은 대체?”

“자기소개를 해라.”


“자기소개를 하라고 말씀하시면!”

“짧게.”


“폭스 하운드입니다. 주인님을 위해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특급 암살자 자매들이랍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거창하게 폼을 잡던 티오가 빠르게 테세를 전환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가볍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밝혀진 사실이 가져다주는 파급력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트, 특급 암살자?”

“설마! 개인의 전투 능력이 A급 무장에 필적한다고 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기도를 보고서 평범한 메이드라고 생각하지 않기는 했습니다만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자들을 영입하신 겁니까?”

“어쩌다가 주웠다.”


랜달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네??”


“어쩌다가 주웠다고 말했다.”

“…”

‘특급 암살자들을 그렇게 아무 데서나 줍고 다니면 세계 정복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터무니없는 소리에 잠시 벙쪄버리기는 했지만, 틀림없이 대답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을 거라는 생각에 따져 물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것이 거의 진실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체.


‘공짜로 주운(?)애들이라는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지.’

오히려 거짓말을 시작하는 것은 지금부터였다.


“그녀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시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벡워스에 암약하고 있는 어떤 조직에 잠복해 있었다.”

“벡워스에 암약하고 있는…”


“조직이라고요??”

“그래. 저기에 물러서 있는 벡워스의 경비대장님께서 나를 제국의 첩자로 오해하게 된 원인 중에서 하나를 제공했던 자들이지. 그들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겠느냐? 휴크.”


“호, 혹시 혈마법사들입니까?”


“바로 그렇다.”

“!!”

다시 한번 놀라움에 휩싸이는 반응을 뒤로하면 리한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카트리나. 녀석들의 조직 구성이 어떻게 되지?”


“후후후후. 녀석들은 오딘소이라는 이교도 신을 숭배하는 광신도 집단으로서 조직명은 넥타르라고 합니다. 현재 최소한 3서클 이상의 혈마법사를 200명 이상보유하고 있으며, 벡워스의 인신매매조직과 협력해서 지하에 아주 위험하고 강력한 합성생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죠. 수장은 투스트로라는 작자로 7서클의 배틀 메이지이기 때문에 단단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아아앙♡ 이렇게 속 시원하게 모든 내용을 까발려 버릴 수가 있다니. 행복해서 가버릴 것 같아요, 주인니이이이이임♡♡♡♡♡♡”


“…”


저세상 텐션으로 이야기하면서 몸을 베베 꼬아대는 바람에 남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하고, 몇몇 여자들에게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기는했지만 밝혀진 내용은 절대로 가볍게 간과하고 넘어갈 것들이 아니었다.

“3서클 이상의 혈마법사가 이백에 7서클 배틀 메이지까지 있다니.”

“그만한 전력이라면 남작령 전체를 멸망시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런 자들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도시에…헉?! 서, 설마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궁금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던 휴크는 뭔가를 떠올렸는지 창백해진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녀석들의 목적은 베리우스 후작 각하께서 주최하시는 뱃놀이 자체를 박살 내버리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