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재회(7) (79/429)



〈 79화 〉재회(7)

“하나에 저는, 둘에 하극상을 저질렀습니다. 하나!”

“저는!!”


“둘.”

“하극상을저질렀습니다!!”

“어깨를 더 높이 들면서 목청을 높여라. 고위 귀족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야지. 하나!”


“나는~~~~!!!!”

“남작니이이이이임??”

터무니없는 광경을 목격한 멜더릭은 비명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고위 귀족이 바닥에 엎드려서 팔굽혀퍼기를 하며 기합을 받고 있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런 그의 등 위에 태연하게 두 발을 올려놓고서 편안하게 홍차를 마시는 리한.

곁에는 피부색이 모두 다른 엘프 메이드  명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거기에 끼지 못하고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잿금발의 얼빵한 메이드라던가 용병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주변을 호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이라고  수 있는 광경은 암살자로 보이는 시체들이 가지런히 주르륵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네, 네 이놈! 아무리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라고 해도 어찌 감히 남작님에게 이렇게 무례한…”

“닥치지 못하겠느냐? 네까짓녀석이 무엇이라고 감히 귀빈의 행상에 꼬투리를 잡는다는 말이냐! 어서 바닥에 엎드려서 사죄를 구해라, 어서!!”


주군을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가 도리에 혼쭐이 나버리는 멜더릭.

“나, 남작님??”


“더러운 입으로 부르지도 말거라, 이놈!! 여봐라, 거기에 누구 없느냐?  천하에 오만방자하고 어리석은 녀석을 당장 끌어내서 참형에 처하…커헉?!”


퍽!

리한이 발뒤꿈치를 들어서 그의 뒤통수를찍어버렸다.

“흔들리니까 시끄럽게 짖어대지 마라. 지금 도대체 누가 누구를 나무라는 것이냐? 벌을 받는 도중에 쓸데없이 딴청 피우지 말고, 멈추라고 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팔굽혀펴기를 반복해라. 그리고 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처분을 내릴 테니까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어라. 멜더릭.”


“그, 그럴 수가. 남작님…”

하늘처럼 떠받드는 주군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자 털썩하고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지만, 그것도 아스트라세 자작 일가가 받은 충격에 비하면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다.

“모두 다 오랜만이구나. 루돌프는 예전 그대로지만 두 사람은 상당히 키가 자랐군. 나만 빼고 모두가 어른이 되어버리다니 말이야.”

“!!”


쿵!

이 말에 정신을 차린 부자가 무릎을 꿇으면서 외쳤다.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무탈해 보이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무탈해 보인다…하하하. 이런 모습을 보고도 잘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아, 아닙니다. 소신은 그런 뜻으로 말했던 것이 아니라…”

“농담이다. 일일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다니 이 짓도 못 해 먹겠군.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군대를 끌고서 쳐들어오는 녀석도 있으니까 말이야.”


‘이분이 정말로 내가 아니,우리 일가가 알고 있던 도련님이시라는 말인가?’

겉모습은 틀림없이 그들의 추억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예전 그대로였지만,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진 말투와 행동거지에 루돌프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토록 다정다감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마치 패왕처럼 변해버린 그.

“어째서 너는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냐?”


[이리나!]


[누님!!]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는 그녀를 다급하게 불러댔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여주는 행보란 이를 악물어버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버리는 것이었다.


“막아라. 아토스.”

“넷!”

쾅!!

교차하는 검격이 허공에 맞부딪치면서 충격파를 발산해 내었다.

롱소드와 별운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동격의 힘으로 검기를 뿜어내면서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두 사람.

검의 크기와 체격 조건으로만  때는 아토스가 압도하는 것이 정상으로 보였지만, 잠시나마 팽팽해 보였던 균형은 오히려 수세로 몰려서 비틀어지는 신음을 토해내게 되었다.


“히이이이익?!”

서늘한 검기가 점점 더 자신의 목덜미로 밀려 내려오자 한심한 비명을내지르는 휴크 남작.

하지만 비정하게도 그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히 용병 주제에 이리나의 검을 막아내다니?’

명백하게 압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잖이 놀라고 있는 루돌프 부자.


리한의 명령으로 수염을 깎고서 옷차림을 단정하게 정돈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야인의 풍모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그였다.

아무런 근본이 없는 떠돌이 용병이 태중양생술과 엘리트 교육으로 동년배 최강을 자랑하는 무장의 일격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지? 이리나. 너답지 않게 흥분해서는 말이야.”

“전부…”


리한이 질책하자 힘겨루기를 하는 도중에도 목수리를 내었다.

“뭐라고?”

“전부 이해하니까 막지 말아 주세요, 도련님. 모두 이 녀석이 잘못한 거죠? 세상에 얼마나 파렴치하고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당신께서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을 슬프게 하는 존재들은이 세상에서 모조리 지워버리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그러니까…”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정말로 당황해서 물었다.


“…”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서 뭔가에 호소하는 듯한 애절한 시선만을 보내오는 이리나.

덕분에 리한은 김이 빠져서 한숨을 쉬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군. 도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엇이 너를 그렇게 몰아세웠다는 말이냐? 딸을 말려라, 루돌프.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내버려두고 있을 것이냐?”


“네, 알겠습니다! 도련님. 뭐하고 있느냐? 어서 떨어져라, 이리나!”

“큭! 놓아주십시오. 아버님! 저는 도련님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드려야…”

“진정하고 잠시 자고 있어라!”

쿡!

재빠르게 수혈을 찍어버리자 거칠게 저항하면서 날뛰던 이리나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지면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리나가 이렇게 이성을 잃어버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구나. 항상 냉정하고 침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일면이로군.”

“사실은 그게 의외의 일면이라고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설마? 그렇다면 정말로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하하하하. 스스로 말해놓고도 어처구니가 없군.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아닌 게 아니라 전부 도련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를 보고서 루돌프 부자의 머릿속에서 같은 절규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이리나의 자업자득이기도 했다.


그리폰 사건에서 목숨을 구원받은 이후로 그녀는 철저하게 측근 역할을 받아들여서 임무에 매진했던 그녀.


장차 블랙 이글 기사단의 여단장이 되겠다는 꿈까지 접어버리고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서 보필하기는 했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서 너무 열성적으로 임하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장차 제니아를 이끌어 나갈 이상적인 지도자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마치 감정이 없는 싸이코패스 로봇처럼 후계자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모두 당사자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시종일관 두드려 패는 스파르타 교육을 진행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호ㄹ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리한은 이리나에게 미소를 잃어버리지 않고 따듯하게 대해주었지만,그러면 그럴수록 나약해 빠졌다면서 몰아세운 과거의 전력이 현재에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현재 리한의 자아를 차지하고 있는 퍼스트 선조차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루돌프 부자의 복장만이 애처롭게 터져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누님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돼. 정말로 이분이 내가 알고 있던 상냥한 도련님이 맞는 것인가? 사람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뀌다니. 도대체 그동안 어떤 고초를 겪으셨기에…’

“훗. 아무래도 지금  모습이여러모로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구나. 랜달.”

“아닙니다! 도련님. 소신이 어찌…”


속내를 들켜버리자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너무 동요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도 변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야. 예전에 나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의를 베풀고 상처를 치료하면 언젠가는 따듯하게 돌려줄 거라고 믿었지. 그게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을 뿐이야.”


“큭!”

리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자 루돌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도련님.소신이 만약에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곁으로 달려왔을 텐데…하지만,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령, 세상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아스트라세 가문의 깃발만은 여전히 당신을 위해서 휘날릴 것이라고 약속드립니다!”

“제니아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고 해도 말이냐?”


“물론입니다!”


“너도 마찬가지냐? 랜달.”

“아버님의 뜻이 곧 저의 뜻이며 가문 전체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누님께서는 지금 경황이 없어서 약속드리지 못하지만, 틀림없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실 겁니다.”


“이리나도 그렇다고?”


“물론입니다, 도련님! 이래 보여도 우리 딸내미는 래리님의 호위 역할까지 때려치우고 가장 먼저 달려와서 소식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충성을 경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만 굳이 서열을 구분한다면 저희 가문에서도 으뜸일 것입니다!”

‘정말로 의외가 아닐  없군.’

아스트라세 가문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위해서 들고 일어날 거라고생각한 리한이지만, 설마 그토록 쌀쌀맞게 대하던 이리나가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지지해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두 사람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와락!

[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리고 랜달. 정말로 그동안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어요. 흑흑…]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과거의 모습.

틀림없이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후계자의 가냘픈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부자는 울컥하면서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에 단숨에 목이 메여버리고 말았다.

‘도련님이다. 틀림없이 예전의 도련님이야!’

‘그러면 그렇지. 젠장, 빌어먹을 녀석들 같으니라고. 3년 동안 얼마나 심한 고초를 겪으셨으면 그렇게 자상했던 분께서 이렇게 무리하게 하시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련님, 이 루돌프가왔습니다. 소신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도련님을 마르텔 대모님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돌로레스를 처단하고 당신에게 정당한 지위를 찾아드리겠다는 말입니다!!”

커다란 눈시울을 글썽거리면서 등을 다독거려주는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저절로 짠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지만, 세기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리한의 머리는 냉정하고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잠시동안은 너의 과거를 뒤집어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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