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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재회(4) (76/429)



〈 76화 〉재회(4)

“헉?!”

지젤을 비롯한 경비대의 병사들은 온몸이 차가운 가시 송곳에 둘러싸이는 듯한 감각에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이리나, 뛰어 올라가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 보도록 해라. 아무리 봐도 이 녀석들을 신뢰할 수가 없어.”


“네, 아버님.”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큭?!”


투콰아아아아아아앙!

소스라치게 놀라서 말리려고 하던 지젤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발생하는 풍압에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벌써 저기까지??’

아무런 준비 자세도 없이 단순하게 제자리에서 뛰어올랐을 뿐이지만, 고개를 90도로 꺾어 올려야만 확인을 할 수가 있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까지 뛰어올라서 하나의 점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펄럭펄럭펄럭펄럭!


순식간에 벡워스의 어떤 건물보다도 높이 뛰어오른 이리나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차단소 너머에서펼쳐지는 일들을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저택 하나를 포위하고 있는 남작의 군대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


“저건…”

안력을 끌어올려서 돌아가는 대체적인 상황을 확인한 그녀는 공중에서 자세를 거꾸로 뒤집어서 지면으로 다이빙을 하듯이 돌진해 내려왔다.

슈우우우우우욱!


“으아아악? 추, 추락한다!!”

“자작 영애를 받아낼 수 있는 안전 매트를 가져와. 어서!!”


“쓸데없이 호들갑 떨지 마라.”

아찔한 광경에 놀란 경비병들이 우왕좌왕했지만 루돌프가 하찮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리나가 지면으로 착지했다.

쿵!

떨어지기 직전에 가볍게 공중제비를 돌아서 바닥에 달라붙듯이 내려앉는 그녀.


신기하게도 족히 100m가 넘어가는 높이에서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보도블록이 가볍게 들썩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충격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로 놀라운 경신술.

“내 딸이 겨우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다칠 리가 없지 않느냐?”


“…”


꿀꺽

“시, 실례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비상식적이라는 존재를 실감한 경비대 병사들이 완벽하게 주눅 들어버리고 말았다.

“도련님이 계시는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아버님.”

“그래? 이 안에 있더냐?”


“그것이…”

벡워스 상공에서 목격한 내용을 귓가로 다가가서 속삭이자 루돌프는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노한 기색으로 붉으락푸르락하면서 고성을 토해내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같으니라고!!”

쾅!!!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으아아아아악!!”

분노한 그가 세차게 발을 구르자 지면 전체가 흔들리면서 경비병들이 비명을 토해내었다.

“별 가소롭지도 않은 남작 나부랭이를 그래도 자치령이라고 존중해줬더니, 감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려?? 도련님이 머무르고 있는 저택을 군대로 포위하다니 아무래도 죽고 싶어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구나! 이런 천하에 빌어먹을 쌍놈들이…”

“고, 고정해주십시오. 자작님! 이건 오해가 있어서…컥?!”


우드드드득!

사색이 되어버린 지젤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루돌프가 한쪽 손을 그쪽으로 뻗자 마치 보이지 않는 손아귀에 사로잡혀버린 것처럼 자신의 목을  손으로 감싸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 허공섭물?”

“고저어엉? 고오오오오오저어어어엉?!!  빌어먹을 얌체 같은 년아, 똑똑히 들어라! 내 평생에 사무치게 맺혀있는 한이 있다면 도련님께서 3년 전에 테세트 평야에서 우리 아스트라세 가문의 호위를 받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팔콘 전사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지금 즉시 이 간사하고 하찮은 녀석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도련님을 구출해라! 만약에 그분의 옥체를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남작령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

“존명!!”


채채채챙!!

팔콘 전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면서 그렇게 외쳤다.


고오오오오오!

전투태세를 갖추기가 무섭게 검에 서리가 맺혀질 정도로 차갑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

숫자로는 겨우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팔콘 전사 하나하나가 태중양생술과 엘리트 교육으로 탄생한 귀족 출신의 무장들이었기에 일반 병사들이 수백, 수천 명이 달려든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못하는 강력한 전쟁 기계들이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전의로 주변의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마치 공간이 왜곡되어버리는 듯한 현상까지일어나버리자, 차단소를 지키는 경비대 병사들은 물론이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까지 공포로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전군 공…”

두두두두두두두!

하지만 최후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에 다급하게 말을 몰고 달려오는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서 목청을 높였다.

“급보, 급보입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스트라세 자작님!!”


“이건 또  하는 새끼야?! 감히 어르신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지휘봉을 휘두르기 직전에 방해를 받은 루돌프가 성질을 부리면서 외쳤다.


쿵!


안장에서 다급하게 뛰어내린 거구의 사내가 바닥에 엎드리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너무 급해서 예의를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소관이 이름은 멜더릭, 미흡하지만 휴크 남작님으로부터 벡워스의 치안을 위임받은 경비대장입니다!!”

“그래, 그래. 인사는 그쯤하면 되었으니까 할 말이 있으면 최대한 간결하게 씨부려 보거라. 본좌는 지금 간사한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해서 굉장히 바쁘시거든?”


부르르르르-

차가운 살기가 묻어나오는 말에 소름이 돋아오르는 그였지만 지금으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이마를 내려찍으면서 읍소하는 것밖에 없었다.

“송구스럽지만 자작님께서는 지금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남작님께서는 절대로, 절대로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님에게 위해를 끼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오해? 오해라고 했느냐? 네놈들은 해칠 의도가 없는 상대를 군대로 포위해서 환영하는전통이라도 가지고 있나 보지? 거기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간사한 년으로 시간까지 끌어가면서 말이야!!”


두두두두두둑!

“크으으으윽!!”

그렇게 말하면서 뻗어있는 손아귀를 천천히 오므려버리자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있는 지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내었다.


“부관에게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전부  바보 같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오해에서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부디, 바라옵건대 진노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그래도 굳이 벌하시겠다면 차라리 소관을 죽여주십시오! 이 모든 사태를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소관이 무능하여 벌어진 사태이옵니다!!”

“대, 대장님…”

“오냐! 끼리끼리 싸고돈다고 하더니 그야말로 딱 그짝이로구나! 그렇게까지 뒈지는 것이 소원이라면 원하는 대로 모조리 죽여주…”

“아버님!”

“뭐냐, 랜달?”


“아무래도 이자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같습니다. 일단은 진정하시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흥! 간사한 녀석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저도 동생과 같은 생각입니다. 아버님.”

“이리나, 너까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남작이 도련님을 해코지할 배짱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모르지. 어쩌면 돌로레스 잡년에게 사주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


“그럴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무리 뒷배가 든든하더라도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를 피살한다는 것은 일개 남작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자신이 도마뱀 꼬리처럼 잘려나갈 것이 뻔한 일에 자진해서 뛰어들지는 않을 게 아닙니까?”

“으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만 세상은 넓고 멍청이는 많은데…”


루돌프가 망설이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그녀가 다시 한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단은 도련님의 신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만약에 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쓸데없이 궁지에 몰아넣었다가 인질로 사로잡기라도 했다가는 곤란해지지 않습니까?”


“감히 그따위 짓거리를 했다가는 모조리 죽여버려야지! 하지만…네 말이 맞기는 하구나. 첫째도, 둘째도 도련님이 안전한 것이 첫째지.”

쿵!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섭물로 들어 올린 지젤을 해방해줬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괜찮으냐?”


“네, 네. 감사합니다. 대장님! 허억! 그리고  번이나 실례를 저질러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자작님!”

“됐다! 그보다 정말로 무사하고 싶다면 조금 전에 지껄였던 내용이 한 치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어야 할 거야. 아니었다가는 오늘 안으로 벡워스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지워버릴 생각이니까.”


“무, 물론입니다. 자작님! 절대로 실망하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팔콘 전사들이여! 일단은 전투를 보류한다. 모두, 무기를 거둬들여라!”


“존명!”


투두두두둑!

마치 사열 행사를 하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거둬들이자 동시에, 장내를 장악하고 있던 차가운 살기도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지금 당장 도련님에게 안내해라. 경비대장,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봐라! 당장 차단소를 개방하고 귀빈들이 타고 가실 말들을 가지고 와라!”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혀서 반쯤 넋이 나가버렸던 경비대 병사들이 허둥지둥 움직이면서 명령에 따랐다.

“소관의 등을 밟고서 안장에 올라주십시오.”


“그런 일이라면 제가…”

“너는 가서 자녀분들을 도와드려라, 지젤!”

“됐다! 겨우 말 위에 오르는 것을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구나.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어서 길이나 안내하도록 해라.”

“네, 자작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루돌프를 선두로 차례차례 말에 오르자 멜더릭이 재빠르게 선두를 인솔해서 일행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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