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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재회(1) (73/429)



〈 73화 〉재회(1)

피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도 지나쳤다고 생각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그녀들의 비밀 일기장에 채워진 자물쇠를 강제로 부수고 억지로 열어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슴 속에 가장 깊숙하게 파묻어놓았던 진심.

리한을  가슴 아프게 만든 사실은 그녀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꿈속에서조차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결말을 맞이해버렸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절망하고 있기에 그것이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냐.’

뺨을 때리면서 포커페이스가 잠시 무너진 카트리나는 잠시 씩씩거리기는 했지만 곧바로 표정을 수습하면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아무래도 반성하고 계시는 모양이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드리겠어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미안하다.”

“굳이 사과하실 필요까진, 앗?”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품속에 끌어안았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피부와 피부가 맞닿은 상태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동요를 숨기지는 못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선택을 반복하다 보니 잠시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어. 조금 더 신중하게 다가갔다면 너희를 상처입히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구나.”


“…”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가르쳐주마. 절대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나만이 아니라 너희들에게도 충분히 대가를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마.”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인가요?”

“오딘소이와 맺었다는 계약에서 해방해주지.”

“헛소리!”


그렇게 외친 사람은 카트리나가 아니었다.


“그따위 거짓된 희망으로 우리를 우롱하려고 하지 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가만히 내버려 뒀을 것 같아? 오, 크윽! 신과 맺어진 계약은 절대로 파기할 수 없어! 전설의 아티팩트라도 손에 넣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야!”

“루시, 그만해! 자꾸만 그렇게 금계禁戒를 넘어서려고 하면 강제력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티오가 옆에서 말리려고 했지만 리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하지만 스스로 원해서 맺어진 계약은아니잖느냐?”

“당연하지! 누가 이따위 불공평한 계약을 맺고 싶어서 맺은 줄 알아?!”

“그렇다면 해제해야지. 아무리 세상이 불합리하고 거꾸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것은 아니잖느냐.”

“너!…”

“조용히 하세요! 언니!!”

카트리나가 외치자 그녀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칫!하며 괜스레 죄 없는 땅바닥을 짓이겨대며 화풀이를 했다.


“이번에도 소첩들을 가지고 노시는 거라면 뺨을 때리는 정도로는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정말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으신 건가요?”

“100%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네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반반이라고 말하고 싶군.”

“상당히 높은 성공률이군요?”

그녀가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차피 실패하면 죽을 거야. 성공이 아니면 실패밖에 선택지가 없으니까 당연히 반반이라고 해야지 않느냐?”

“후후후후. 그렇군요. 기왕에 거짓말을 하시는 거라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장담해주시지.”

“계약을 해제하는 실패한다면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은 너 혼자뿐이다.  사람이 결과를영원히 기억할 텐데 눈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상냥하시기도 하셔라. 하다 못해서 같이 죽어주신다고 말씀해주실 수는 없나요?”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사명이 있어. 실연당했다고 목숨을 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해주지.”

잠시 거리를 벌리고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일에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앞으로는 다시는 그렇게 비참한 꿈을 꾸게 만들지 않으마.”

“!!”


단호한 선언에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 그녀는 이내 피식하면서 웃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주인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신다면 어쩔 수가 없네요.”


“카트리나!”


“저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들. 어차피 금계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는 자살할수도 없었잖아요? 블러드 엘프의 고유술식으로 자유를 찾으면 죽여드리기로 약속했는데 미리 사과드릴게요. 만약에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저부터 먼저 해방될게요. 뒷일은 주인님께서 어떻게 해서든지 책임을 져주시겠죠.”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너는, 너는 그런 결론으로도 괜찮은 거야?”

티오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질문해왔다.

“후후후후. 언제나 바보같이 솔직하기 이를 데가 없는 맏언니. 매번 그렇게 상처를 받으시면서도 아직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고 괜찮다고 거짓말을 해도 진심은 주인님이 보여주신 꿈으로 드러났어요. 이제는 그만 결론을 내려야죠.”


“큭! 그, 그렇게까지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멋대로 해! 딱히 네가 죽어버린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어. 지금까지 하고 다를 바가 없으니까.”

등을 돌려버리면서 매정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울컥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루시 언니.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언제나 배려해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마! 젠장,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것 같은  따위는…젠장.”

리한은 조용히 두 눈을 감고서자매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작별 인사는 끝났습니다. 주인님. 무엇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소첩은 모든 준비를 마쳤어요.”

“상당히 민감한 내용까지 말하는 것 같던데 금계라는 것을 어기지는 않은 것이냐?”


“후후후후. 최근에 어떤  때문에 조금 위험한 수위까지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어디까지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절대로 어겨서는  되는 몇 가지 원칙을 제외하면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에요. 의지가 없는 꼭두각시는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노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조금 더 반짝이고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고 해도 말이야.”

“신랄하시기도 하셔라.”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카트리나가 대답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는데 말이야.”


“무엇이시죠?”


“너희들은 정말로 친자매가 맞는 것이냐??”


“하하하하! 설마, 지금까지 그런 것을 궁금해하셨던 거예요?”

청량하게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웃음보다도 솔직하게 미소지으면서 대답을 했다.

“당연히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 진짜 친자매라고요!”


“…그렇군. 정말로 쓸데없는 것을 물어봤구나. 미안하다.”


“알아들으셨으면됐어요.”


혈연 따위로는 비교도  수 없는 자매의인연을 강조하는 카트리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리한은 마스터 코어의 힘을 끌어올렸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만능의 힘이 아니다.

물질계로 이루어져 있는, 특히나 육체를 재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는특출한 능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정신계, 특히나 아스트랄계라고 불리는 영역과 영혼에 관련되는 일에 아무런 힘을쓰지 못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그 영적 세계의 최고위에 군림하는 존재.


자신과 계약을 맺은 필멸자들이 절대로 거스를 수가 없는 막강한 고용주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그것을 파기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첫째. 신을 죽이면 모든 계약은 자동으로 소멸한다.

당연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둘째. 계약을 대가로 하사했던 은혜의 100배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며 파기해버린다.

여기에서 리스크란 천벌을 의미하며 보통은 영혼이 소멸해버리는 정도로 끝나지만, 상상하기도 어려운  지독한 방식으로 돌려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셋째. 신과 대등한 힘,또는 그보다 강력한 힘으로 계약 내용을 고쳐쓰거나 없던 일로 해 버린다.

 또한 얼핏 들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이기는 했지만 리한이 시도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세계의 신들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야. 아무리 기적이라고 떠들어대도 본질적으로 마나에 의존하는 것은 마찬가지지. 극단적으로 깎아내리면 아주, 아주 강력한 힘을 지닌 혈마법사라고 볼 수도 있는 거야. 그렇다면대적할 수 있는 수단은 있어. 본인을 직접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계약 하나를 고쳐 써버리면 되는 거니까.’


블러드 엘프인 카트리나는 피를 조종할  있는 종족 특유의 고유능력 덕분에 혈마법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오딘소이가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증명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디스트로이어로 강제력을 약화시키는 한편으로 마스터 코어로 그녀의 능력을 극대화해주면, 일시적으로 신의 힘을 넘어서서 계약을 파기해버리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패한다면 감히 신에게 거스르는 대가로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성공을 장담할 수가 없는 시도에 자신도 아닌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은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한은 다소 억지를 부려서라도 지금 당장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태까지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달한 결론이 확실하다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두 번 다시는 없을 천재일우의 기회야. 돌로레스와 은요호 기관의 로티나, 그리고 테르할 제국에게까지 제대로 한 방을 먹일수 있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각오를 다진 리한이 입을 열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카트리나.”

“네?”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서 죽어주도록 하마. 사후세계가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적어도 혼자서 헤매는 일은 없도록 해주지.”


“후후후. 그것참 든든하네욧?!!”


파지지지지직!


갑작스럽게 쏟아져 들어오는 힘의 파도에 그녀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도박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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