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H이벤트)마피아 게임(9)
‘틀림없이 뭔가가 있군.’
마스터 코어의 힘으로 폭스 하운드의 신체를 샅샅이 살펴본 리한이었지만,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제외하면 특별하게 눈에 띄는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들의 힘이 모조리 봉인되었다는 사실은 밤새도록 충분하게 확인한 바.
저항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나약하기 이를 데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다.
단순하게 충성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딘가 이상한 절박함.
마치 조직을 배신한다는 전제 자체를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만큼 은요호 기관이 두렵다는 소릴까, 아니면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그녀들을 구속하는 것일까?’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을 살해할 수 있는 힘을 쥐어주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는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보아라, 루시! 나의 굉장한 힘을! 평범한 인간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보이는 구나!!”
“네네, 그러시겠죠. 어련하겠어요?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하다더니 딱 그짝이시네. 사람이 작구나, 작아!”
“누, 누가 돋보기로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을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거야!!”
“지 혼자 뭐래.”
“저기요저기요, 주인님! 뭐처럼 소첩이 진짜 실력을 되찾았으니까 리벤지 하시죠. 리벤지! 방중술의 진수를 A부터 Z까지 충분하게 맛보여 드릴 테니까.”
‘봉인이 풀리기 전하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에 리한이 얼떨떨하는 사이에 잔뜩 신이 난 그녀들이 가까이 와서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물컹!
자신의 커다란 가슴골 사이에 노골적으로 팔을 끼워버리는 카트리나라던가 무릎에 올라타버리는 티오, 팔짱을 끼고서 새침하게 등을 기대오는 루시까지.
엘프 특유의 부드러운 피부의 촉감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로는 냄새가 음심을 자극해 왔다.
그야말로 바라지마지 않았던 광경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드디어아무런 맥락도 개연성도 없는 남성향 야설의 하렘 붐이 도래한 것인가?!’
리한이라는 인간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했던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었지만 현실은 역시나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저기요, 주인님?”
티오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귀여운 목소리로 치켜올려보며 불렀다.
“뭐지?”
“주인님은 혹시 우리 자매의 힘을 순식간에 봉인할 수가 있는 건가요?”
“아니, 그런 작업이 쉬울 리가 없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뚝!
동시에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끈이 풀어져버리는 것처럼 그녀들의 표정이 일제히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리한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카트리나였다.
“하아, 소첩이 사모하는 주인님.”
주르륵
두 줄기의 피눈물이 고운 뺨을 타코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대로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슈우우우우욱!
단숨에 목을 쳐버리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에너지 블레이드를 만들어내는 두 자매의 손날이 그의 목을 겨냥하고 위 아래로 쇄도해 왔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은 카트리나였다.
푸슉!
“컥!”
“흐으윽!”
티오와 루시의 가슴을 뚫고서 튀어나온 양 손에는 펄떡거리는 심장이 혈액을 쏟아내면서 사그라들었다.
치명적인 일격에 도달하지 못하고 목덜미에 가느다란 실선만을 남기고 허물어지는 두 사람.
“카트리나아…”
“고마워. 쿨럭, 그리고 미안하다.”
털썩!
예상하지 못한 뒤통수를 맞아버린 자매들이었지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
“하아아아아. 해냈어. 결국에는 자유롭게 해방시켜주었어요. 주인님! 소첩의 손으로…언니들을! 하하하하하하하하!!”
심장을 바닥으로 떨어트린 카트리나는 두 사람의 피가 끈적하게 달라붙어서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올리며 광기에 가득한 웃음소리를 토해내었다.
“…진정해라! 카트리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찰나의 순간에 참혹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태가 일어나버리자 사색이 되어버린 리한이 두 팔을 붙잡아 흔들어대면서 물었다.
“해냈습니다! 소첩은…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힘?? 이런 광경을 몇 번이나 꿈속에서 그렸다고요! 드디어 블러드 엘프의 힘으로 오딘소이의 역겨운 저주에서 자매들을 해방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아시겠어요? 주인님, 소첩이 승리했어요. 소첩이 드디어 승리했다구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정신 차려라. 오딘소이가 대체 누구지? 저주라는 게 무엇이냐?”
이성을 잃어버리고 혼자서 떠들어대는 그녀의 상태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완전히 충혈되버려서 블러드 엘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버린 눈동자에서 쉼없이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입과 코, 귀는 물론이고 구멍이란 모든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몸 속이 통째로 녹아내린 듯한 내상.
거기에 한쪽 눈은 커지고 한쪽 눈은 작아져 있었으며 입가마저도 기괴하게 비틀려있는 것이, 뇌 기능에까지 손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줬다.
“기다려라. 지금 당장 고쳐줄테니…”
파지지직!
덥썩!
그렇게 말하며 마스터 코어의 힘을 끌어올렸지만 그 순간에 카트리나가 그의 손목을 낚아채듯이 사로잡았다.
“아니예요, 주인님! 소첩은 이제 여한이 없습 히히히힛?! 제발 이대로 죽을 수 있게 내버려 둬주세 키키킥! 하, 하지만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리기 전에 알려드려야 하는 것이 잇, 킷? 부디 소첩의 유언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말해라. 어서!”
리한의 재촉으로 블러드 엘프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그녀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전달해 주었다.
[오딘소이, 혈마법사들이 신봉하는 이교도 신, 저주받은 영혼의 계약.]
쿨럭!
이 단언들을 뱉어내고서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내었다.
“고맙다. 카트리나. 그리고 미안하다. 만약에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후후후후. 쿨럭,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소첩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유가 없는 노예로 살아왔는지를 아신다면, 마지막을 이렇게 후련하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이해하실 테니까요. 아아아. 정말로 꿈만 같아. 마지막을 이렇게 사랑하는 낭군님의 품 속에서 맞이할 수가 있다니…”
“더이상 말하지 마라. 지금 바로 고쳐줄 테니!”
꾸우욱!
그녀의 손이 리한의 옷깃을 강하게 쥐어잡았다.
“그런데 주인님…”
동시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느새 흐르는 것이 멈춰버린 피와 다시 한 번 인형처럼 표정이 사라져버린 카트리나의 섬뜩한 얼굴.
“열 군데가 넘는 급소를 동시에 찔려도 죽지 않는 주인님을 살해하려면 무슨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요?”
“뭐?”
깜짝 놀라버린 리한이 급하게 물러서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화르르르륵!
옷깃을 붙잡은 손길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하는 청염의 불꽃.
순식간에 전신으로 번져나가서 털어내려고 발버둥치는 리한을 단숨에 집어삼키며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후후후후. 발버둥쳐도 소용없어요. 소첩의 무투기는 엘프의 고유능력을 동반하는 아스트랄 플레어랍니다. 주인님을 사모하는 소첩의 타오르는 마음처럼 한 번이라도 상대방에게 달라붙으면 영혼까지 불태워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는다고요.”
“카, 카트리나…”
툭!
바닥에 쓰러져서 몸부림치던 리한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가 그대로 떨어트려 버렸다.
그리고 잿가루마저 모조리 연소시켜버리고는 사라진 아스트랄 플레어.
주변에는 약간의 그을림도 만들어내지 않은체 철저하게 타겟 하나만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종적을 감춰버렸다.
쿵!
이번에는 새로이 투명한 눈물을 쏟아내는 카트리나가 허물어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하하하하하! 죽지 못했어요. 죽지 못했다고요! 사랑하는 자매들과 정인까지 모조리지워버리고 이 추악하고 더러운 세상에 혼자서만 살아남았습니다. 더러운 이교도 신의 노예로 남아있는 평생을 지배당하면서 말이죠.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한참 동안이나 절망에 가득한 웃음소리를 토해내던 그녀는 잠시 후에, 뚝! 하고 무엇인가가 끊어져버린 사람처럼 힘없이 일어나서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정신 손상을 감지. 혈마법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조정을 받을 것. 혈마법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조정을 받을 것. 혈마법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조정을 받을 것. 혈마법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조정을 받을 것. 혈마법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조정을 받을 것. 혈마법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조정을 받을 것.”
같은 문장을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리한은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딱!
“네가 돌아갈 곳은 거기가 아니다. 카트리나,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려라.”
파지지지직!
마치 장막이 걷혀나가는 것처럼 블러드 디자이어의 환상에서 풀려난 세 자매가 정신을 차렸다.
“핫??”
“어어어어?!”
“꺅! 이게 무슨…”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 마라. 영혼계약의 강제력이 발동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회피하도록 해라.”
“!!”
리한의 말에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세자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도, 도대체 어떻게? 틀림없이 힘이 돌아오는 것을 먼저 확인했었는데…”
티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착각했을 뿐이었지. 봉인이 풀렸다고 생각한 순간에 곧바로 시험해봤다면 너는 여전히 몰랐을 테지만 자매들이라면 위화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뭐, 나를 죽일 수 있는지 가늠하느라 꼼짝없이 셋 다 블러드 디자이어의 환상에 사로잡혀버리고 말았지만.”
“블러드 디자이어라니…설마, 혈마법을 사용하셨던 건가요?”
“미안하지만 나는 혈마법이 무엇인지 모른다. 카트리나. 굳이 비유하자면 네가 오딘소이의 영혼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사용한 블러드 엘프의 고유술식에 가깝다고 하는 편이 옳겠지.”
“주, 주인님의 정체란 도대체…”
놀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카트리나는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도리질을 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모두 환상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환상이라기보다는 꿈이라고 해야 되겠지. 나는 너희 자매들 속에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는 소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이다. 아무리 오딘소이라는 이교도 신의 강제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꿈까지 통제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더군.”
“역시 그랬군요. 하하하하.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요. 아무렴 그러면 그렇지. 이제와서 제 능력으로 자매들을 구해내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가와서는 리한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