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문샤인 로즈(7)
‘제기랄. 도대체 누구 때문에 늦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갑자기 튀어나와서 혼을 빼놓는 바람에 작전 자체가 지연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리우스는 그녀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소개할 때 이야기했던 로티나라는 이름.
현직에 앉아있는 은요호 기관의 수장이면서 무시무시한 수법으로 타향만리에 독립 조직이었던 야월을 순식간에 하부 조직으로 만들어버린 마녀가 보내왔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조직원들은 공포에 떨었고 칼리우스조차 몰래 털어놓았던 불평불만을 그녀들이 들었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게다가 폭스 하운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그녀들의 은신술은 월주인 자신을 코앞에서 희롱하며 가지고 놀았을 정도.
가벼운 행동거지와는 다르게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래. 저렇게 장난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우리를 방심시키려는 연극일지도 몰라. 속내를 모르는 이상은 절대로 거슬러서는 안 돼. 지금은 임무에 집중하도록 하자.’
잘 생각해보면 단순한 하부 조직에 불과한 자신들의 행사에 이런 지원을 보내주었다는 것은 약간 소름이 끼치면서도, 동시에 로티나가 직접 신경을 쓰고 있을 정도로 이곳의 정세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산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충성을 다해서 조직 내부에서의 발언력을 올리는 것이 앞으로도 좋을 터.
거꾸로 생각하면 은요호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이번 임무는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마저 들었다.
[1차 공격조는 지금 즉시 장미 정원으로 진입해서 공격을 시작해라! 만약에 적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면 즉시 물러나서 피안환살진으로 총공격을 감행한다.]
[네, 알겠습니다!]
“뭐야? 상대가 겨우 하나야? 그런 것치고는 너무 거창하게 준비해서 오신 것 같은데? 타겟이 S랭크 무장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면 설마, 카테고리 아웃?”
“갑작스럽게 무슨 말씀을…서, 설마, 여기에서 타겟이 보이시는 겁니까?”
티오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질문에 질색했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려 보이는 그녀.
“뭐야? 너는 안 보여? 하아. 시골 암살단 꼬라지 보소. 로티나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촌구석 정세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시는지 모르겠다니까.”
“큭…”
별다른 생각 없이 투덜더리는 소리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칼리우스가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고서 짓궂은 표정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뭐야뭐야? 설마, 지금 그 조그맣고 알량한 프라이드에 상처가 나서 으르렁거리는 거야? 하하하하! 진짜로 웃기는 녀석이네 이거? 왜요? 화가 나서 못 참으시겠어요? 계급장 떼고 싸워보실래요??”
“그만 하세요. 맏언니. 자기들의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는 불쌍한 시골조직을 도와주러 와서 무슨 행패를 부리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월주님. 원래 우리 맏언니가 가슴만큼이나 도량이 작거든요. 그래서 자신보다 작고, 하찮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만 보면 이렇게 기고만장해져 버린답니다? 부디 이해해주세요. 후후후.”
‘이런 빌어먹을 년들이…’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사정없이 깔아뭉개는 태도에 칼리우스의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르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월주님. 고정하십시오.]
[월주님!]
‘끄응.’
하지만 그런 모습을 걱정하는 부하들이 여기저기에서 전음으로 불러대는 바람에 간신히 이성을찾아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으, 으르렁거리다니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제, 제가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어서 아무래도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던 모양이군요. 폭스 하운드 여러분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흥! 재미없게 꼬리를 말기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덤벼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티오는 그가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해오자 그렇게 투덜거렸다.
“망할!”
그리고 이런 상황이 끝나기 무섭게 혼자서 현장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루시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뱉어내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만약을 대비해서 지원해주라고 하더니 어처구니가 없네. 젠장, 이렇게 싱겁게 끝나버릴 줄 알았으면 주정뱅이 새끼들하고 술방이나 찍었을 텐데. 썩을!”
“응? 뭔데, 뭔데? 무슨 일이야?”
“상황 끝났어. 죽도록 시시하게 말이야.”
이 말과 동시에 칼리우스에게도 전음이 날아왔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월주님. 타겟을 성공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뭐?? 벌써 말이냐? 1차 공격조가 작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타겟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접근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무엇에 당했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그대로 사망했습니다. 방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고 혹시 몰라서 확인사살까지 마쳤습니다. 타겟은 제거되었습니다. 완벽한 작전 성공입니다. 월주님!]
“말도 안 돼!!”
기쁜 소식인데도 불구하고 칼리우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한번 확인해 봐라. 뭔가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어! 이건 함정일 거야!!]
[…그렇게 말씀하셔도 타겟은 이미…아, 알겠습니다. 월주님. 일단 다시 한번 체크를 해보겠습니다.]
‘피안환살진을 발동한 것도 아니고 1차 공격에 그렇게 허무하게 당해버렸다고? 설마, 꽃다발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3년 전과 동일한 인물이라면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설마 다른 사람…일 리가 없지. 그랬다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필이면 오늘 용병과 간병인들을 모두 내보내버릴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대체…설마?’
“우리에게 일부러 살해당해줬다는 건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칼리우스의 입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소리에 폭스 하운드 자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아닙니다. 너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서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무심코 말해버리고 말았지만 금방 말도 안 되는 추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얼버무렸다.
‘고육지계도 아니고 지금 상황에서 제일 핵심 인물인 자신을 희생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목표의 죽음을 확인한 공격조가 다시 한번 똑같은 상황을 보고해 오자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져버리고 말았다.
“후~~하.정말로 꼴사납고 시시해서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네. 아무런 힘도 없는 민간인 하나 잡아서 죽이겠다고 이렇게 많은 인원이 우르르 몰려와서 뭐 하는 거야? 추하다, 추해. 차라리 이럴 시간에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고슴도치 핸들링하는 동영상이나 보고 있는 게 낫겠다.”
여기에 한술 더떠서 루시라는 다크 엘프까지 빈정거리면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버리자 다시 이를 가는 칼리우스.
“큭! 모, 모든 인원은 현장에서 대기하라고 말해라. 내 눈으로 직접 시체를 확인해 보겠다.”
“하지만 월주. 굳이 그러실 필요는…”
“닥쳐라! 내가 직접 후계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난 후에 목을 잘라서 제니아로 가져갈 것이다. 그러면 돌로레스 그 빌어먹을 년도 다시는 투덜거리지 못하겠지!”
그렇게 말하고는 종탑 위에서 몸을 날리자 부하들이 다급하게 뒤를 따랐다.
“오올~당사자가 앞에 없다고 제법 세게 나오시는데? 하하하. 아무래도 녀석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인데 한번 따라가 볼까?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보고 가야지.”
“그러시든가.”
“물론이예요. 맏언니. 하아아아. 칼리우스님이라고 했나요? 제법 괜찮은 중년 신사가 아니신가요? 후후후후. 특히나 쉽게 화를 내면서 분해서 날뛰는 모습이 꼴릿하네요.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젖어 들어 가버리고 말았다고요. 하아, 하아.”
“이런 썩을 빗치가…”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어두컴컴한 밤.
칼리우스를 쫓아서 저택으로 들어선 폭스 하운드 자매는 시야를 압도할 정도로 온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문샤인 로즈를 발견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어내었다.
“흐음. 종탑에서도 내려다보기는 했지만 정말로 사방팔방에 만발해있잖아? 이렇게 관리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저택 주인은 도대체 뭐 하는 작자래?”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맏언니. 이런 곳에서 청간하면 환상적일 것 같은데.”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미친 감상을 늘어놓는 것은 너밖에 없을 거야.”
자매가 그렇게 오붓(?)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루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이상한데?”
“왜 그래?”
“정원에 이렇게 많은 꽃이 피어있는데도 조금도 향기가 나지를 않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기압이 낮아져서 말이야. 이거야 한바탕 쏟아지겠는데.”
“그렇다면 다른 냄새도 맡을 수 없어야지. 흙냄새와 풀냄새, 돌냄새, 심지어는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냄새까지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그렇기는 하네?흐음…뭐, 아무려면 어때? 자잘한 것에 신경쓰지 말고 어서 월주 녀석이 좌절하는 모습이나 보러 가자고.”
“하여간에지랄맞은 성격 하고는. 도대체 누가 누구를 나무라는지.”
루시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의심을 털어버리고는 순순히 뒤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현장은 야월의 모든 인원이 동원되어서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타겟의 죽음을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 칼리우스는 혹시 저택 내부에 숨겨진 편지나, 지령, 혹시라도 존재할지 모르는 사건의 배후와 관련된 증거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며 철저히 조사하라는 편집증에 가까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결과는 더할나위 없이 단순했다.
장미 정원의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한가롭게 차를 마시다가 봉변을 당한 리한 폰 아슈킬이라는 인물의 차가운 주검은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