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문샤인 로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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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
어둠에 녹아들어서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아토스의 저택을 둘러쌌다.
먼저 투입한 정찰조의 활약으로 상대 전력은 모두 파악한 상태.
저택을 비롯한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종탑의 꼭대기에서 칼리우스가 바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감시조의 조장이 뛰어와서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오셨습니까, 월주님!]
[그래. 사전 보고는 이미 받았다. 현장의 상황은 어떻지? 뭔가 변화가 있었나?]
[그것이…]
대답하는 것을 망설이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엇을 망설이는 것이냐? 정신 차리고 감시 결과를 보고해라!]
[해가 지기 전에 후계자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저택을 떠났습니다. 타겟은 지금 장미 정원의중앙 테이블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뭐…?]
황당한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그가 언성을 높이면서 재차 물었다.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월주! 어떻게 제가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체 뭐라는 말이냐? 우리가 보낸 경고장을 받았다면 벌벌 떨면서 대비해도 모자란 판국에 사람들을 내보내고 혼자서 남았다고? 그렇다면 대체 돈을 주고 용병들을 고용하는 이유가 뭐란 말이냐? 주객이 전도 당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런 행동이 상식적으로 말이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그렇게 분노하면서 열변을 토해도 당황하고 있는 것은 감시조도 마찬가지였기에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느낌이 좋지 않아.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러는 거지?’
자신들의 손으로 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암살 목표가 살아서 돌아온 것도 섬뜩하기는 했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혹시 저택에 남아있는 것이 후계자가 아니라 대역일 가능성은 없느냐?]
[그렇지 않아도 먼저 투입된 공작조가 타겟에게 미리 표식 마법을 걸어두었습니다. 꽃다발을 선물하기 직전이었으니 무슨 수를쓰더라도 감시망을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택에 함정이 있을 가능성은? 혹시 외부에 조력을 요청하지는 않았느냐? 빠져나간 용병들이 양동작전을 걸어올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
상대편의 돌발 행동에 신중해진 칼리우스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맥이 빠질 뿐이었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어떠한 수상한 징후도 없었습니다. 용병들도 작전 구역 자체를 벗어나 버려서 뭔가를 시도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인다고…]
[왜? 어째서? 도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이냐?]
태어나서 처음 마주치는 상황에 극심한 혼란에 빠진 칼리우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후계자는 혹시 우리를 혼자서 상대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가끔 그러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힘에 지나치게 심취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후계자의 단전은 3년 전에 내 손으로 직접 파괴했어. 만에 하나 기적이 일어나서 잃어버렸던 힘을 모두 되찾았다고 해도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하지만 배틀 메이지의 힘을 사용했다는 보고서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 말에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검사라고? 그건 환상이야. 실제로는 이도 저도 못 하는 반푼이에 불과하지. 만약에 무장에서 배틀 메이지로 전직했다면 그건 후계자가 아니라 후계자를 사칭하는사기꾼이라는 소리다. 물론, 어느 쪽이라도 우리를 도발한 대가는 치러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칼리우스는 이를 바드득 갈며 타겟이 있는 저택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돌로레스년이 3년 동안 제국의 후원을 등에 업고서 지나치게 기고만장해졌어. 처음에는 우리 야월이제니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이용하던 도구에 불과했는데. 하필이면 은요호 기관이 중간에 개입해서 우리를 이 꼴로 전락시키다니…]
흠칫!
[조, 조심하십시오. 월주님! 그들이 어디에서 보고, 듣고 있을지 모릅니다.]
화들짝 놀란 조장이 덜덜 떨면서 말하자 칼리우스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목줄이 채워진 늑대는 배를 드러내면서 꼬리를 흔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타겟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피안환살진彼岸幻殺陣을 당해내지는 못할 겁니다.]
[물론이다! 아무리 우리가 하부 조직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실력과 자긍심까지 변하지는 않아!]
암중모색으로 목표를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워야 하는 암살자 조직인 야월이 상대방에게 자신이 목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있었다.
그것은 목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의지의 표명.
이 메시지를 전달한 대상은 단순한 살인 청부라는 의미를 떠나서 야월과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며, 조직 전체가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결사의 각오로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선전 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들이 피안화가 들어가 있는 꽃다발을 선물한 상대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암살 타겟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거나 대비를 하려고 해도, 배수의 진을 치고서 목숨까지 도외시하며 공격해오는 야월의 집요함 앞에서 모두가 무릎을 꿇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상대를 암살해야 하는 조직으로서는 그다지 깨끗한 해결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한 번 목표로 삼은 상대를반드시 끝내버린다는 명성은 야월의 자존심이자 위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그런 유명세가 생각하지 못했던 자들을 불러들였다는 거지만.
[슬슬 공격을…]
칼리우스가 그런 말을 뱉어내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야심한 시간에 여러모로 고생이 많아. 월주!”
“누, 누구냐?”
접근하는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진 그가 허겁지겁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 상대.
툭툭!
“!!”
어깨를 두드리는 감촉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는 이미 사라져 있었고 다시 뒤쪽에서 중절모 세 개가 짠 하고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누구냐고?”
검은 가죽장갑으로 모자의 챙을 고정시키며 포즈를 취하는 정장 차림의 엘프.
“…아, 또 시작이네. 완전히 병이야, 병.”
언짢은 표정으로 껌을 씹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다크 엘프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후후후. 너무 그러지 마세요. 루시 언니. 맏언니는 아직도 순수한 동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요. 태초 마을의 전선을 믿고 있다니. 나이를 400살이나 넘게 먹었으면서…”
“야!! 너, 너희들 때문에 멋지게 등장해야 하는 부분을 망쳐버리고 말았잖아. 그리고 태초 마을은 틀림없이 세상 어디에 존재하고 있거든?!!”
커다란 가슴을 가지고 있는 블러드 엘프가 팔짱을 끼고서 그렇게 말하자 작은 엘프가 길길이 뛰었다.
“…”
칼리우스와 부하들은 이런 장난스러운 태도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중절모에 선글라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앵커리지 공화국에서 활약한다는 요원들을 떠올리게 했다.
“크흠, 크흠! 뭐, 맏언니의 실례되는 장난하고는 별개로 잘 부탁드립니다. 월주님.”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하얀 머리카락의 블러드 엘프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로티나님이 우리를 보내셨거든? 너희를 지원하라고 말이야. 제기랄. 진짜로 귀찮아서 뒤져버리겠네…”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검은 단발 머리를 쓸어올리는 다크 엘프에게는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요란한 피어싱과 목덜미에 하트와 날개 타투가 새겨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 폭스하운드가 이렇게 지원을 와주셨다는 말이지!”
마치 골목대장처럼 양손을 허리에 두고 가슴을 쫙 펴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금발의엘프.
하지만 크고 늘씬한 두 사람의 사이에서 땅딸막한 키를 가지고 있어서 작은 햄스터가 의기양양해하는 것 같았다.
“…엘프?”
“자매?”
“뭐야? 반응들이 왜 이렇게 떨떠름해?”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정신을 차린 칼리우스가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쿵!
“시, 실례했습니다! 그러니까 성함이…”
“위에서부터 티오, 루시, 카트리나야. 당연히 누가 누구인지는 알아들었겠지?”
“물론입니다. 카트리나님!”
“티오다. 이런 멍청이, 바보, 똥개, 해삼, 말미잘 같은 녀석아!!”
“마, 말미잘…”
작은 엘프가 방방 뛰면서 성질을 부리자 블러드 엘프가 뒤쪽에서 백허그로 그녀를 자신의 커다란 가슴 사이에 파묻어 버렸다.
“진정해주세요. 이게 다 맏언니가 너무 작고 땅딸막하고 물벼룩처럼 하찮게 보여서 생기는 오해라고요. 이게 다 자연스러운 업보라니까요? 제가 언제나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시라고 200년도 넘게 말씀드렸잖아요.”
“이, 이 디뱡 뎡어리를 뗴혀네!”
“네에? 뭐라고요오오?”
“푸핫! 이 지방 덩어리를 떼어내라고! 아,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거든? 존버는 승리할 거야! 내 성장판 안에 잠들어 있는 떡상 본능을 무시하지 마! 그러니까 치워! 이 빌어먹을 지방 덩어리를 당장 내 머리 위에서 치워버리란 말이야! 즈에에에엔자아아앙!!”
“하으으으윽! 마, 맏언니! 그렇게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어서 비벼대시면…햐아악?!”
퉁!
정수리에 충돌해서 세차게 날아오른 달 덩어리 같은 가슴이 요란하게 교차하며 출렁거리다가 다시 중력에 사로잡히며 낙하해 티오의 머리를 세차게 내리찍었다.
퍽!
“커헉!”
터무니없는 충격에 혀를 깨물고 피를 토해내면서 가공할만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에 철푸덕 쓰러져버렸다.
“맏언니?!!”
“풉, 크크큭. 푸하하하하하! 실화냐? 이거! 세상에 가슴 더블 촙으로 쓰러져 버리는 엘프가 어디에 있어?! 으힛, 으하하하하하하!! 미쳤다, 미쳤어! 이걸 영상기록마법으로 찍어서 동영상 투고 게시판에 올려놔야 하는데…”
“으흑, 으으으으. 쥐엔장! 부조리해, 세상은 너무나 부조리하다고!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까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어째서 카페인 중독에 저런 방구석 폐인인 루시보다도 발육이 안 좋은 거냐고. 으흐흐흑!”
바닥에 엎드린 그녀가 서럽게 땅을 치면서 울음을 터트려 버리자 카트리나는 쪼그려 앉아서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포기하세요. 맏언니. 어차피 이미 한참을 글러 먹으셨어요. 이제 그만 자신을 받아들이시고 땅딸보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가시라고요?”
“그래, 그래. 콩 심은 데서 콩이 난다고 하잖아. 틀림없이 유전자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던 거야. 하하하. 아, 젠장. 니코틴 물이 전부 빠져버렸잖아. 마지막 껌이었는데.”
“으갸아아아아악!! 됐어! 자매고 나발이고 너희들이 제일 짜증 나! 이 빌어먹을 새끼야! 빌어먹을 썩을 동생 년들이 더 주절거리기 전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해? 죽일 녀석이 있으면 어서 처리해버리면 될 거 아니야!!”
위로하기는커녕 박박 긁어대는 자매들에게 분노한 티오가 길길이 뛰면서 성질을부렸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