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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문샤인 로즈(3) (58/429)



〈 58화 〉문샤인 로즈(3)

‘오리나에게는 잘 먹혔는데 이번에는 안 통하는군.’

울먹거리는 나디아를 끌어안고서 머리를 토닥거려줬다.

“걱정하지 마라. 네 원래 모습이 어떻다고 해도 나는 경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기색을 내비친다면 반대로 경멸하거라.”


“…정말로 후회하시지 않을 거예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 말에 무엇인가를 결심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역시 우려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재차 강조해 왔다.

“정말로, 정말로 무서워하시면 안 돼요?”


대답하는 대신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쯤 되면 오히려 궁금해지는군. 대체 진짜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기에 이렇게까지 경고를 하는 거지?’


후우우우우웅!


나디아가 기합을 모으자 세찬 바람이 불어닥쳤다.


“하아아아아앗!  야생 개방!!”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 부신 빛에 얼굴을 감싸는 리한.


“이, 이건…”

곧이어 골격이 뒤틀리면서 변화한 모습에 당황하면서 말을 더듬었다.


투명한 호박색으로 밝게 빛나는 짐승의 눈동자, 머리카락을 밀어 올리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쫑긋한 귀, 복숭아처럼 둥그스름한 엉덩이 사이에서 뻗어나오며 리드미컬하게 살랑거리는 기다란 꼬리.


“고양이잖아.”


“호랑이예요!”

그의 감상에 발끈하면서 대답했다.

“꼬리와 귀가 까맣잖아. 끄트머리 부분은 심지어 하얗고…어디를 봐도 사랑스러운 수인. 묘인족이 아니냐?”

“묘인족이 아니라 흑호족이거든요! 아니, 그런데 소녀가 사, 사랑스러우시다고요? 무, 무섭지 않으세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귀 끝부터 꼬리 끝까지 완전히 내 취향이다.”

“취, 취, 취향이라니…아, 아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봐주세요. 무서운 호랑이랍니다. 잡아먹을 거예요. 어흥!”


양손을 들어 올리면서 어색한 포즈로 위협해오자 리한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결혼하자.”


“넷?!!”


“아니. 잠시 흥분해서 이성을 잃어버렸군. 일단은 집사부터 되는 게 순서지. 매일 저민 참치와 개다래 페리뇽, 그리고 브러시 손질을 해주마. 나를 집사로 간택해다오.”


“고,고양이 취급하지 마시라니까요! 호랑이예요. 호랑이라니까요. 어흥!”


최강의 나디아가 울부짖었따.

효과는 굉장했따.


리한은 믿을 수 없는 심쿵 대미지에 잠시 그로기 상태에 빠져서 휘청거렸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아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크흠. 뭐, 간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다고 치고. 경멸스럽기는커녕 사랑스러운데 왜 그렇게 걱정했던 것이냐? 귀와 꼬리를 제외한다면 인간하고는 별다른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어째서 내가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지, 진심으로 하시는 소리예요?”


그녀는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어 왔다.

“당연히 진심이지. 결혼하자.”


“으읏?! 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뒤, 뒷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어요. 그래도 정말로 별종이시네요. 보통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멸시와 경멸을 쏟아내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세상은 잘못되어 있어. 짐승귀는 정의다!”

리한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하자 부끄러워하면서 두 귀가 뒤쪽으로 젖혀져 버렸다.


“정말로 제가 혐오스럽고 무섭지 않으신 거예요?”


“인간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아. 이대로 계속 옆에다 두고 지켜보고 싶을 정도다.”

“계, 계속 지켜보고 싶으시다니 그렇게 부끄러운 말씀을 낯빛도 변하지 않고…”


어지간히 부끄러웠는지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발가락을 꼬물거렸지만 싫지는 않았는지 꼬리가 부드럽게 좌우로 살랑거리는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잠시 후.

파지지지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리한은 마스터 코어의 힘을 사용해서 나디아를 인간의 모습으로 돌려주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녀.

“정말로 다시 돌아왔어.”


“돌아오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무리한 변환 시술 때문에 신체에 걸리는 부하와 능력 저하도 사라졌을 거다. 물론, 야생을 전부 개방하는 것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저, 저는…완전한 인간이  건가요?”


“아니. 오히려 인간의 모습으로 야생을 개방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는 게 맞지. 음식물 섭취와 생활 리듬도 수인으로 생활하고 있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하는 편이 좋아. 그래도 누가 수상하게 생각하지는 못할 거다.”

“가축을 습격하고 날고기를 먹으라는 말씀이신가요?”

“수인들은 원래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냐?”

“후후후후. 농담이에요. 하지만 이건…마법이 아니로군요. 후계자님이 아무리뛰어난 배틀 메이지라고 해도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힘을 사용하실 수가 있는 거죠?”


“비밀이다.”


“비밀이라니…”


“수수께끼가 많은 남자는 미움받는 것이냐?”


“따, 딱히 미움받을 요소는 아니지만…”


슬그머니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물어보자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했다.

“읍?”


다시 한 번 입술을 포개자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고 두 눈을 감으면서 받아들이는 나디아.

하지만 리한이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입속으로 혀를 집어넣으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면서 양손으로 세차게 밀어내버리고 말았다.

“역시 안돼요! 아,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요!!”

쾅!!


리한은 벽으로 날아가서 박혀버리고 말았다.


“쿨럭, 아, 아직은?”

“아니. 그, 그러니까 그게. 일단은 오라버니한테 상담한 후에 돌아올게요!”

“상담이라니…”


황당한 대답에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쏜살같이 줄행랑을 쳐버리고 난 후였다.

“젠장. 야생을 개방한 수인족이 가지고 있는 힘을 너무 얕잡아봤군.이렇게 쉽게 놓쳐버리다니…”


몸이 반쯤 파묻어져서 뼈가 몇 군데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마스터 코어의 힘으로 금방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한 전치 6주는 나왔을 만한 부상.

닭을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것처럼 허무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결과였지만 이 사건은 아직 뒷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정말로 아토스를 데리고 돌아온 나디아.

병실에서 벗어나서 장소를 바꾼 세 사람은 집무실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는 삼자대면을 시작하게 되었다.

“으음…”

“흠.”

‘나디아가 대체 녀석에게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한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동생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던 리한에게는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철면피를 깔고 당당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결국 침묵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본론을 꺼낸 것은 아토스.


쿵!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주군! 저의 귀여운 여동생에게 대체 무슨 일을 저질러버리신…쿠학?!!


“아이,참! 그,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오라버니는 정말! 오라버니는정말!!”


퍽! 퍽! 퍽! 퍽!

창피한 질문에 새빨개져서 아토스를 가차 없이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억! 주먹 한 방, 한 방에 피멍울이 웅장해지고 있어. 뼈가 덜덜 떨리고 골수액을 뿜어내는구나. 장하다. 나디아. 이제는 완전히 건강해졌구나. 이 주먹으로 세계를 노려라…쿨럭!”


“오, 오라버니?!”

유언을 남기고 잠시 사후세계로 떠나버렸지만 금방 부활해서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크흠,크흠! 뭐, 그 부분은 아니라니까 굉장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일단은 접어두기로 하시죠. 사실, 이렇게 불려온 이유가 저희 남매의 비밀을 결국에는 알아내셨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만…”

“그래. 두 사람의 정체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흑호족입니다. 저희를 그렇게 싸잡아서 부르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가? 미안하게 되었군. 잘 몰랐다고는 하지만 실례를 저질렀으니까 사과하도록 하지. 앞으로는 호칭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다.”

담담하게 머리를 숙이자 상당히놀라는반응을 보였다.

“아, 아닙니다. 주군! 잠시 시험해보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역시 주군은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시군요.”


“뭐,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니까.”

“휴우. 항상 그렇게 떳떳하고 당당하신모습이 그저 부럽습니다. 역시 주변에 눈치를 보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뭔가 다르시군요.”

“알고 보면 별로 그렇지만도 않은데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아토스는 그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배틀 메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마스터 코어와, 임페리얼 가드의 지원이 없다면 리한은 그에게 한주먹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숨기고 있는 여력을 생각하면 더 절망적인 차이.

“하나만 물어보도록 하지. 네가 벡워스의 용병 길드에서 사용한 무투기는 전력을 발휘했던 것이냐?”


“!!”


놀라는 얼굴을 보고 그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B급 무장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은 퍼큘리어의 힘만이 아니었군.  야생개방이라고 했나? 네 녀석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지금보다 몇 배는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테지. 일대일 대결에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라면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겠느냐?”


“휴우. 주군에게는 정말로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군요. 언제부터 알아차리신 겁니까?”

“벡워스 길드에 일대일 대결로 B급 무장을 쓰러트린 용병이 있다고 들은 직후부터였다. 그만한 사건이라면 소문이 과장되고 부풀려서 퍼져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오히려 누군가가 나서서 수습한 정황이 보이더군. 다들 운이 좋았을 거라고 여기고 그것을 받아들였어. 하물며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너는 돈이 되는 일이 필요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귀족이 싫다고 해도 그렇게 다급한 상황인데 어째서 이런 사건을 자신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상했지. 마치, 눈에 띄기 싫다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뭔가를 숨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

“…처음부터였다는 말씀입니까? 하하하. 진짜로 주군한테는 도저히 당해내지를 못하겠군요.”

아토스는 못 이기겠다는 것처럼 완전히 백기를 들어 올렸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싸움은 제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전력을 발휘한 결과물입니다. 이래 보여도 우리 흑호족에서는 가장 뛰어난 대전사였습니다. 뭐, 그래봤자 인간이 분류하고 있는 무장 랭크에서는 B+정도입니다만…”

“충분히 훌륭하지 않느냐?”

평범한 백작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이 보통 A급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강함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래봤자 우리 흑호족은 언제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2등 국민에 불과했습니다. 빌어먹을 귀족 나리들께서 편리하게 부려대는 사냥개 취급이었죠. 격리구역에 갇혀서 식사도, 이동도, 가족의 얼굴조차 자유롭게  수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신분을 세탁하려고 했던 것이냐?”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길어집니다만…어떤 악마와 계약을맺었다고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안스바흐 백작. 시체 수집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흑마법사입니다. 빌어먹을! 절대로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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