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문샤인 로즈(1) (56/429)



〈 56화 〉문샤인 로즈(1)

“글쎄? 고마워할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야. 후후후후후.”


어째서인지 불길하게 느껴지는 말에 잠시 멈칫하는 그녀였지만 자신이 내린 결정을번복하지는 않았다.

예고했던 것처럼 치료는 30분 정도로 짧게 끝났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땀에 젖어버린 이마를 팔등으로 쓸어올리는 나디아.


분홍색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숨소리와 턱선을 따라서 흘러내리는 투명한 침이 어째서인지 야릇한 분위기를 풍겨오고 있었다.


“정말로 이게 치료행위가 맞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지이이이잉!


클레어가 다시 한번 메디컬 체크 마법을 사용했다.

“확실하게 신체 상태가 어제보다 월등하게 좋아지기는 했네요. 골반과 척추가 바르게 교정되었고 혈액순환과 운동능력, 마나의 흐름까지도 이렇게 원활하게 개선되다니…”

“후후. 그런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술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체질을 개선해주는 것이지.”

“체질 개선이라고요? 겨우 마사지로 어떻게 그런 것까지…”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다. 슬슬 정리하고 해산할 준비를 해라.”

클레어가 하는 질문을 중간에서 끊어버린 리한이 그렇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후계자님. 아토스! 야! 적당히 하고 정신 좀 차려! 끝났으니까 일어나 봐!”


철썩, 철썩!

브리카가 커다란 손을 휘둘러서 뺨을 왕복하며 두드려 때리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두 눈을 떴다.

“어, 어? 어어어어. 맞아. 나디아! 상태는 괜찮은 거냐? 어디 불편하지는 않고?”

“오라버니…”

힘없이 대답하면서 뻗어 올리는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래. 오라버니가 여기에있다!!”

“내일부터는 참관하러 오지 마세요.”

쾅!


마른하늘에 갑작스럽게 날벼락이 쳤다.

“아, 씨. 갑자기 번쩍거려서 깜짝 놀랐네. 내일 비가 오려고 이러는 건가?”


브리카가 창문을 내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충격적인(?)요구를 듣고 휘청거리며 물러서는 아토스.

“뭐, 뭐라고?”

“죄송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부탁드릴게요. 저마다 공개 치료에 참관하시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너무 민망해서…”


“저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후계자님에게 직접 배우기로 했으니까요.”


“나도 그래. 어차피 한가해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참관한 거니까.”

클레어에 이어서 브리카가 대답을 했다.


“부, 부끄러운 것뿐이라면 나는 참관해도 되지 않느냐? 나디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오라비와는 어릴 적에 같이 목욕을 하기도 했고…”

“대체 언제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끈질긴 오라버니는 싫어요!”

쿵!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여동생의 일갈에 무릎을 꿇어버린 아토스의 머릿속에서 같은 단어가 끊임없는 반복 재생으로 울려 퍼졌다.

“머엉~”


힘없이 늘어져 내려오는  팔.


헤벌쭉 벌어지는 입에서 새하얀 영혼 비스무리한 것이 흘러나오며 그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둬버리고 말았다.

“에이 씨. 간신히 고쳐놨더니 다시 망가져 버렸네. 이런 빌어먹을 시스콘 머신 같으니라고.”


우드득-

브리카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어깨를 빙빙 돌렸다.


“고치실 수 있으시겠어요?”

“괜찮아. 괜찮아. 원래 망가진 기계는 적당한 물리력을 반복해서 행사해주면 깔끔하게 고쳐지니까 말이야. 뭐, 가끔 펀치가 너무 세게 들어가서 영원히 망가져 버리는 일도 있지만.  녀석은 튼튼하니까 괜찮을 거야.”

“…가능하면 온건하게 부탁드릴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나디아는 흐트러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정돈하고 리한을 향해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후계자님. 너무 생소한 체험이라서 채신머리없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내일은 치료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은 창피한 일을 경험하고도자처해서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기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내일은 더 거칠고 격렬해질 거야. 차라리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해도 괜찮겠느냐?”


“소,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치료를 위한 행위니까 버텨내야죠. 후계자님께서 애써주시는데, 감사하고 노력해도 모자랄망정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토스의 말처럼 의지가 남다르기는 하군.’


“좋아. 그러면 이만 해산하고 내일 보도록 하지.”

“고생하셨습니다.”


리한은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미련 없이 병실을 나왔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다.

‘후후후후. 정확하게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군. 내일부터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게 나디아와 둘만의 시간을 가질  있겠어.’


느긋하다는 말은 한시라도 빠르게 제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그에게는 별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그가 이렇게 아토스 남매에게 시간을 쏟으며 저택에서 머무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치료라는 것은 단순한 핑계일 뿐.


진짜 목적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서 이번 사안에 관련된 자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제니아의 국경과 항구는 돌로레스에 의해서 철저하게 봉쇄된 상태.

하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는 다르게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에 자신을 지지하는 마르텔 파벌의 가신들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내올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리한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나 이용하려는 자들도 찾아오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차피 감수하기로 한 일.


오히려 적들의 홈 그라운드라고 할  있는 제니아에서 상대하는 것보다 덜 까다로워서, 처리할 수 있는 적들은 여기에서 처리하고 가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이런 자들이 벡워스로 도착할 때까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빨라도 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리한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무조건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수련에 집중해서 강해지도록 노력하자.’

수련법에도 여러 가지가 종류가 있었지만 현재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기본 중에서도 기본, 내공을 쌓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점심과 저녁을 모두 거르고 늦은 밤까지 운기 행공에 몰두했다.

‘역시 양의공으로의식을 분산시키는 것보다는 물아일체가 되어서 집중하는 편이 갈무리 효율이 좋군.’


현재까지 단전에 모인 내공은 약 1년 200일 정도.


제로에서 시작해 겨우 3일 만에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한 것은 틀림없이 괄목할만한성과였지만, 여전히 어디에서 명함을 내밀고 다니기에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무리 못해도 10년의 내공은 보유하고 있어야 금강투합체를 활성화하고아슈킬 가문의 독문 무공인 월환쌍극을 운용할 수 있어. 그래봤자 무장 중에서도 최하로 치는 D급에게도 상대가 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역시 제니아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임페리얼 가드와 마스터 코어의 능력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겠군.’


마스터 코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도깨비방망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이런 잔재주가 통하는 상대는 아무리 잘 쳐줘도 A급 무장 정도까지가 한계였고 그나마도 조악한 수법이 들통나버리면 필패라고 해도  만큼 절망적인 격차를 가지고 있었다.

“하아.”


“괜찮으세요? 주인님.”


운기 행공을 마무리하고 자신을 관조하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해버리는 바람에 한숨을 내쉬자 오리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질문해 왔다.


그녀의 손에는지금까지 자신의 땀을 닦아낸 것으로 추측되는 손수건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계속 옆에서 지키고 있었던것이냐?”


“아, 아니에요! 수련을 방해하지 말고 자유롭게 행동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가끔만 확인하러 왔을 뿐인데…”

꼬르르륵-


당황하면서 대답하는 도중에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얼굴이 새빨개져 버리고 말았다.


“가끔이었는데 밥도 굶으면서 말이냐.”


“으으으으. 하필이면 지금…앗?”


기특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여운 녀석.”

“주인님…”

수줍어하며 연갈색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봤지만 금방 수심에 잠겨서 흐려져 버리고 말았다.

“왜 그러는 것이냐?”


“하루종일 너무 걱정했어요. 아토스님은 괜찮으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으시는데 너무 이상하고 무서워서…혹시나 저를 내버려 두고 멀리 사라져버리시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고 걱정스러워져서…흐윽.”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훌쩍거리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측은해졌다.


‘확실히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가부좌를 틀고 운기 행공을 하는 모습이 이해할 수 없어 보이겠지. 마스터 코어만이 아니라 마법이나 무공, 무엇 하나도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에게는 이상한 세계의 이야기일 테니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람쥐만  몬스터조차 두려워했던 오리나가 마법과 검이 난무하는 세계에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버팀목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미지의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휘둘리지 않을 힘과 자신감이 필요한 법이지.’


그렇게 생각한 리한은 그녀를 끌어안아서 토닥거리며 진정시켜주고 난 후에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무섭다면 나에게 무공을 배워보지 않겠느냐? 오리나.”


“…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야. 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도 모르고 호신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편이 여러모로 좋지 않느냐.”


“하, 하지만 귀족들은 가문의 무공을 타인에게 전수해주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후후후. 그거야 생판 남인 경우에야 그렇지. 물론, 가문의 무공은 가족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전수할 수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백작 가문 정도의 지위가 되면 노블 마크가 수여되는 가신들에게 가르치는 무공이 따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세간에서 열화판이네 뭐네 떠들어 대기는 하지만 무공은 만류귀종이야. 가문에서 제일 강한 무장은 가주보다 평생을 무학에 매진하는 가신들인 경우가 많다. ”


“그래도 저처럼 천한 것에게 어찌…”

“주제넘게 행동하는 것도꼴불견이지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지는군. 나는 처음부터 너에게 노블 마크를 달아줄 생각이었다. 평생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주인님!!”


뛸 듯이 기뻐하면서 달려들려고 했지만 리한은 슬그머니 피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은 주방에 가서 뭐라도 먹고 오도록 하자. 아토스 녀석이 눈치가 있다면 먹을  있는 야식을 준비해 놓았겠지.”

“으으으. 지금은 피하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후후후. 풀어주면 금방 기어오르려고 하다니. 메이드 주제에 건방지다.”


웃음을 터트리면서 대답하기는 했지만 리한의 눈동자는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인간을수련시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중요한 문제는 힘을 어떻게 더 원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만드냐는 것이지.’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에 대한 모든 지식을 당장이라도  원에게 넘겨주고 싶은 리한이었지만, 인간하고는 신체 기관부터가 근본적으로 달라서 적용하기가 힘든 데다가 결정적으로 현재의 지식수준으로는 마나를 모으게 하는 것도 활용시키는 것도 미지의 영역에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더 원이 수련할 수 있는 무공과 내공심법을 만들어내고야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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