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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화 〉bad joke(3) (53/429)



〈 53화 〉bad joke(3)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토스. 이건 용병 사이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이 아니야. 도시의 시스템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대사건이다. 저쪽도 작정하고 찾아왔을 테고, 네가 여기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벌하려고 할 거다.”


이 말에 그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어볼 필요도 없지. 무조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라. 오늘은 길드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이야.”


“그렇게 쉽게 넘어갈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함께 나가서 알리바이를 입증해주면 강압적인 수사를 할 수는 없을 거다. 어차피 증인들은 모두 여기에 모여있어. 적당히 입단속을 시켜놓으면 괜찮을 거다. 만약에 발설한다고 해도 법정에서증언해버리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후.”

꿀꺽.


리한이 사악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자 아토스는 자신도 침을 삼키고 말았다.


****

잠시 후.

병사들을 이끌고 아토스의 저택까지 찾아왔던 멜더릭은 예상하지 못한 방해에 부딪혀서 속수무책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젠장! 하필이면 고위 귀족과 하루종일  이야기로 함께 있었다니…유일한 단서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군. 하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


스트레스로 머리를 쥐어뜯는 그와는 다르게 지젤은 옆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골몰하고 있는 것이냐?”


“별일 아닙니다. 대장님. 단지,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지젤. 사건에 관련한 일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상관없으니까 기탄없이 이야기해라.”


이 말에 살짝 망설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토스의 옆에 있던 귀족이 말입니다…”

“흠. 확실히 못 보던 얼굴이었지. 조금 특이한 옷차림도 그렇고 아마도 외국에서  귀족이 아닐까? 하하하! 녀석. 그동안 일만 아는 재미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얼굴을 따지는 타입이었구나?”

“가, 갑자기 무슨 억측을 하시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단순하게 그분의 용모파기가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상과 일치한다고 생각해서 조금 눈여겨 보았을 뿐입니다.”


“화제의 인물이라고?”

생소한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어제 그린 벨트 곳곳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귀족 하나가 나타나서 소란이 벌어졌다고 하더군요. 흥미가 생겨서 조금 탐문해봤는데 처음 모습을 드러낸 르네처라는 양품점에서는 도저히 귀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초라한 차림새였다고 하더군요.”

“으음. 확실히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유희가 아니겠느냐? 일단은 나도 귀족 나부랭이기는 하지만 높으신 분들의 독특한 발상은 따라가지 못하겠으니까 말이야.”


“네, 물론 말씀하시는 것이 타당합니다만 그래도  가지 신경 쓰이는 내용이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문제는 아닌데 이상하게 걸려서…”


“여자의 감이라는 건가? 어디 한번 말해보아라.”


“어쩌면 그 귀족이 테르할 제국의 출신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뭣?! 그, 그게 사실이냐?”

깜짝 놀란 멜더릭이 두 눈을 부릅떴다.

“르빌이라는 점장에게 직접 물어봤으니까 확실합니다. 듣자 하니 왕도 로즈풀에서 유행하고 있는 스타일을 낡아빠졌다고 면막을 줬다는군요. 그만큼 유행이 앞서가는 나라라면 앵커리지 공화국이나 제국밖에 없을 텐데 아시다시피 공화국 귀족이 그런 행패를 부리지는 못할 테니…”

“젠장! 어째서 그것을 빨리 말하지 않은 것이냐? 서둘러야겠다. 이 사실을 지금 당장 남작님에게 알려드려야 해!!”


당황한 그가 걸음을 재촉하자 지젤이 다급하게 뒤따르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갑자기  그러시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냐? 지금 오팔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화국과 제국 귀족들의 동향이란 말이다. 나라의 정치권이 두 파벌로 쪼개져서 싸우고 있는데 이런 민감한 사항은 먼저 이야기했어야지!”

“하지만 파벌싸움이 내전으로 발전할 양상도 아니고 우리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으니까 별로 문제될 사항은 아니잖습니까? ”

“그게 착각이라는 거야! 남작님께서는 이미 공화국파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셨다. 그것도 어제저녁에! 조만간에 베리우스 후작 각하가 주최하는 뱃놀이에 참여할 예정이시란 말이다!”


“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래.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제국 귀족이 벡워스에 나타나서 문제를 일으키다니 공교로운 것도 정도가 있지! 틀림없이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아니. 듣고 보니까 확실히 수상한 점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확대해서 해석하시는 게 아닙니까?”

지젤의 물음에 잠시 걸음을 멈춘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네가 은요호 기관의 무서움을몰라서 하는 소리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왕국에는 파벌이라는 게 없었어. 정통성으로 보면 당연히 앵커리지 공화국에서 선진 문물을 공부하고 돌아오신 제 1왕세자님이 보위를 물려받는 게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치열한 반반 싸움이 되어버렸지. 이게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설마…”


“그래. 로티나, 그 마녀가 개입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지. 웃기는 것은 누구나 그것을 의심하고 있는데도 빌어먹을 증거가 없다는 거야. 열렬한 애국자이신 우리 남작님께서 어째서 지금까지 공화국파에 가입하지 못하고 망설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제니아. 아슈킬 가문의 차기 백작 부인으로 유력한 돌로레스라는 년이 열렬한 제국의 지지자라서 그런 거야!! 젠장, 정통 후계자도 아닌 굴러들어온 년 하나 때문에…”

그렇게 분통을 터트린 멜더릭이 잠시 진정하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아슈킬 가문이 쳐들어오면 우리 남작령은 잠시도 버티지 못한다. 파벌에서 원군을 보내도 도착하기 전에 멸망할 거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말이야…”


꿀꺽.


 말에 그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지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그렇다면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전체가 그자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슬럼가에서 일어난 학살, 혈마법사의 출현, 용병 길드까지 고도의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번 사태의 제 1용의자로 의심받는 특급용병까지 저자의 곁에 있지 않느냐? 어쩌면 제국 귀족을 앞세워서 영지전을 일으킬 빌미를 만들어내려고 할지도 모르지.”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자와 대화해서 뭔가를 더 끌어낼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겨우  정도 단서만으로 여기까지 도달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나 이번에는 네 공이 크다. 만약에 네가 소문을 조사하지 않았더라면 저자가 제국 귀족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 아니냐? 뒷일은 이제남작님께서 처리하실 것이다. 자, 서두르자! 어서 이 일을 알려드려야 해!!”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경비병들이 가져온 말에 올라탔지만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모두 엿들은 작은 벌레가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

“흠. 설마 거기에서 덜미를 잡혀버릴 줄은 몰랐군. 일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주군.”

“후후후.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어쩌면 계획한 일이 한결 수월하게 풀려나갈지도 몰라서 말이야. 그나저나 아토스. 지금 보니까  모습이 상당히 지저분해 보이는구나. 이제는 용병도, 야인도 아니니까 조금  깔끔하게 정돈하고 다니는 것이 어떠냐?”


이 말에 무안한 표정을 지은 그가 자신의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알겠습니다. 주군. 사실은 저도 조금은 신경 쓰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동생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그만…”

“이제는 핑곗거리가 사라졌으니까 좋은 기회군.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오늘 밤에 해결해야 하는 일도 하나가 있다.”


“문제라니요?”


“슬슬 배신자 하나의 처분을 결정하려고 해서 말이야.”


“배신자라고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의 모든 시선이  사람에게로 몰려들었다.

“훗.”

 모습에 짧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주빈석에서 일어난 리한이 용병들이 모여있는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나에게 해야 하는 말이 있을 테지?”


“후, 후계자님! 그, 그러니까 저기 그것이…”

“긴말은 필요 없다. 밤에 서재로 와라.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알겠습니다.”


가이슨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리한이 자리를 떠나자 다른 용병들이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흑색으로 낯빛이 변해버린 상태.

[설마 녀석이 배신자입니까?]


[그렇다.]

“젠장!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이 새끼를 그냥…”


“진정해라. 어차피 녀석은 도망칠 수 없어. 어떤 처분을 내릴지는 변명을 듣고 결정해도 상관없다.”


“아무리 그래도 배신자를…끄응! 주군이 하시는 일이라면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죠. 알겠습니다. 납득하지는 못하겠지만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동안 씩씩거렸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연회가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시각.

리한은 오리나를 스위트룸에서 먼저 쉬도록 내버려 두고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가이슨이 오는 것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잠깐 사이에 10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초췌한 몰골로 다짜고짜 무릎부터 꿇었다.

“죽여주십시오. 후계자님! 잠시 마가 끼었습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쏟아내는 변명을 손을 들어서 멈추게 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시답잖은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 용서를 빌고 싶으면 네가 메시지 스크롤을 사용해서 누구에게 무슨 내용을 일러바쳤는지 소상히 이야기해라.”

‘역시 알고 있었어. 제기랄!’

빼도 박도 못하고 걸려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가이슨은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은 그게…”


그가 자복한 내용은 리한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전형적인 박쥐 행보.

앞으로는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뒤에서는 용병 길드에서 일어난 사건의 모든 전말을 메시지 스크롤을 사용해서 제니아에 전달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돌로레스 일당은 지금쯤이면 내가 벡워스에서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구나.”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쓰레기 같으니라고! 감히 계약을 하고 반나절이 지나기도 이렇게 뒤통수를 때려? 주군. 이런 녀석이 구질구질하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지금 당장 요절을 내버리겠습니다!”

분노한 아토스가 그의 멱살을 끌어 잡았다.

“미,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한 번만 용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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